2016.10.06 ~ 2016. 10. 13 에펠탑과 노트르담성당
오래된 이야기가 됐다.
무려 3년 전이다.
몇 장의 사진과 그때 느꼈던 기분만이 희미하게 남았다.
한국에 돌아와 먹고사니즘을 하다 보니
내 찬란하고 아름답고 연약한 여행의 기억이 바래지고 있다.
(BGM. 당신의 평화는 연약하다_주윤하)
일본인 중에는 파리를 여행하다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이 매해 평균 12명에 달한다고 한다.
영국 BBC 역시 "해마다 일본 관광객 중 10여 명 정도가 정신병에 걸려 일본대사관을 통해
본국으로 송환된다"고 밝혔단다. 심지어 '파리 증후군(Paris syndrome)' 이라는 말도 생겼다.
https://www.insight.co.kr/news/138088
뇌피셜을 해보자면...
억압되고 정제된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당황한 건 아니었을지.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분위기에
상상 속 '파리'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게 보였던 게 아니었을지.
유럽인들을 각 국 특성에 맞춰 설명한 유머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법에 '된다' 고 적혀 있는 것 외에는 모두 '안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고,
프랑스에서는 법에 '안된다'고 적혀 있는 것 외에는 모두 '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한다.
나는 자유롭고, 억압되지 않은 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시도때도 없이 떠드는 사람들을 구경하는게 재미있었다.
여행 중 1/4이 파리였다.
그리고 일주일이 조금 넘는 그 시간 동안 최대한 파리지앵인 척 흉내냈다.
(말 한 마디 못하는 주제에 파리지앵이 될 리는 없으니 '봉쥬흐~' 하면서 다녔다)
자전거를 빌려 센 강을 달렸다.
보증금 150유로를 걸어야 하기에, 못 받으면 어쩌나 몹시 불안했지만
꼭 해보고 싶었다. (다행이도 나중에 보증금은 받았다)
아래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본 풍경들
잘 보고, 먹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
자전거를 탄 것 외에는 정처없이 걸어다니는 날들이었다.
파리의 구석구석.
소소하고 낯선 풍경들이 사랑스러웠다.
너나할 것 없이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에서
역시나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문구점으로 수제 공책을 사러 가는 길.
배짱이다 아주. 찾아 오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그래도 그게 나쁘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음이 너그러워져서 일지도 모른다.
1930년부터 수제노트를 만든 문구점.
이곳은 숲 소유주가 숲의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1925년에 설립했다.
섬유는 소나무 껍질로 만드는데, 100% 재생 가능하다. 이곳에서 주로 쓰인다는 크라프트지(미표백지)는
www.lacompagniedukraft.com 에서 구매 할 수 있다.
겉표지를 딱딱한 크라프트지로 할 건지, 부드러운 가죽으로 할 건지.
위로 넘길 건지, 옆으로 넘길 건지.
크기는 얼마나 크게 할 건지.
속지는 크라프트지(갈색 미표백지)로 할 건지, 표백된 흰 종이로 할 건지 직접 선택한다.
이렇게 선택하는 옵션의 조합은 3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가격은 사악하다.
내가 선택한 옵션을 기준으로 현재 가죽 커버는 49.92유로, 속지는 9.08유로.
소숫점 두 자리까지 가격을 정해서, 합하면 59유로가 되게 해놨다.
오늘(2019년 4월 22일) 시세로 노트 한 권에 7만 5천 원이 넘는 셈이다.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평생 한 권만 가질 수 있는 노트니까. 오래오래 간직할 것이다.
만약 색다른 장소를 산책하고 싶다면 이곳으로 가자.
파리에는 벼룩시장이 흔하다.
비싼 명품이 많기로 유명하면서도 벼룩시장이 활발하다니.
물건을 잘 만들어서 오래 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꿈보다 해몽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그들의 삶을 잘 모른다.
어쨌든 중요한 건,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그 자리에 서서 물건이 가진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다는 거다.
내가 간 곳은 일요일 오전의 Vanves Flea Market(방브 벼룩시장)'.
파리 남쪽 끝 14구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파리 3대 벼룩시장이다.
나는 보는 것 만큼이나 먹는 것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엥겔지수 100%에 도전하며,
궁금한 건 일단 입에 넣었다.
길고 우여곡절 많은 여행 도중에 빠진 살은 이때 다시 다 채웠던 것 같다.
파리에서 떠나기 전날 밤 있었던 일이다.
몸이 으슬으슬 안좋았는데도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겠다는 일념 아래
Le Relais de I'Entrecote (르 를레 드 앙트르코트)로 향했다.
사람들은 많았고, 나는 뻘쭘함을 숨긴채 파리지앵의 당당한 걸음으로 식당에 앉았다.
내 왼쪽에는 게이 커플이 앉았고, 내 오른쪽에는 부부가 앉아있었는데
부부가 무슨 일인지 말다툼을 하는 모양이었다.
(단어나 문장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왜 그런지 다 알 것 같았다. 느낌적이 느낌이랄까... 그런 게 있다)
아내가 남편에게 막 화를 내고 있었고,
남편은 항변하는 모양새였다.
궁지에 몰린 갑자기 남편은 웨이트리스를 불렀다. 그리고 상황을 설명했다.
상황을 살피던 웨이트리스는 노련하게 웃으며 아내의 편을 들었다.
그리고 아내를 달랬다. '남자들이 다 그렇잖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웨이트리스는 내게도 동의를 구하는 듯한 눈빛과 말을 건넸다.
나는 눈웃음을 싱긋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남편은 내 왼쪽에 있는 게이 커플에게도 말을 건넸다.
그들 역시 논쟁에 끼어들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여섯 명이서 나누고 있었다.
이 혼란스러움은 뭐지.
남편은 멋쩍게 웃었고, 아내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아서인지 미소를 지었다.
그 경험이 좋았다.
전두엽이 고도로 발전한 사람들의 성숙한 문화 처럼 느껴졌다.
우리나라 지하철 1호선 혹은 시골 버스를 타다보면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이런 모습을 종종(?) 보여주시는데,
공감 능력은 물론, 상황을 적절하게 풀어가는 어휘도, 적절한 눈치도
모두 놀라운 것이지 않은가.
아... 사진 정리하다보니 다시 가고 싶다.
서울에서 찌들어 산 지 너무 오래 됐다.
마지막 사진은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850년 역사를 그대로 안고 서 있던 대성당이 화재에 휩싸이다니.
영원할 줄 알았던 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 때 느끼는 충격.
마음이 쿵 하는 그 감정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안녕 파리. 안녕 노트르담 성당.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