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수없음 Apr 22. 2019

[여행] 프랑스 (3)_영원한 건 없다

2016.10.06 ~ 2016. 10. 13 에펠탑과 노트르담성당



오래된 이야기가 됐다. 

무려 3년 전이다. 

몇 장의 사진과 그때 느꼈던 기분만이 희미하게 남았다. 


한국에 돌아와 먹고사니즘을 하다 보니 

내 찬란하고 아름답고 연약한 여행의 기억이 바래지고 있다. 

(BGM. 당신의 평화는 연약하다_주윤하)


일본인 중에는 파리를 여행하다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이 매해 평균 12명에 달한다고 한다. 

영국 BBC 역시 "해마다 일본 관광객 중 10여 명 정도가 정신병에 걸려 일본대사관을 통해 

본국으로 송환된다"고 밝혔단다. 심지어 '파리 증후군(Paris syndrome)' 이라는 말도 생겼다. 


https://www.insight.co.kr/news/138088 


뇌피셜을 해보자면... 

억압되고 정제된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당황한 건 아니었을지.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분위기에 

상상 속 '파리'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게 보였던 게 아니었을지. 


유럽인들을 각 국 특성에 맞춰 설명한 유머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법에 '된다' 고 적혀 있는 것 외에는 모두 '안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고,

프랑스에서는 법에 '안된다'고 적혀 있는 것 외에는 모두 '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고 한다. 


나는 자유롭고, 억압되지 않은 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시도때도 없이 떠드는 사람들을 구경하는게 재미있었다. 


여행 중 1/4이 파리였다. 

그리고 일주일이 조금 넘는 그 시간 동안 최대한 파리지앵인 척 흉내냈다.

(말 한 마디 못하는 주제에 파리지앵이 될 리는 없으니 '봉쥬흐~' 하면서 다녔다)  


프랑스의 'Velib(밸리브)' : 자전거를 빌려준다. 서울 '따릉이' 처럼 


자전거를 빌려 센 강을 달렸다. 

보증금 150유로를 걸어야 하기에, 못 받으면 어쩌나 몹시 불안했지만 

꼭 해보고 싶었다. (다행이도 나중에 보증금은 받았다)


아래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본 풍경들




잘 보고, 먹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 

자전거를 탄 것 외에는 정처없이 걸어다니는 날들이었다. 

파리의 구석구석. 

소소하고 낯선 풍경들이 사랑스러웠다.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인다. 줄 설 자신이 없었다. 나는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가는 걸 과감하게 포기했다
그냥 사람들을 봤다.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을.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보면 공원을 발견할 수 있다
독일에서 산,  새운동화


루브르박물관 뒷쪽(?)으로 걷다보면 나타나는 공원
공원에서 멍을 때리다가 뒤를 돌아보면 상점가가 나타난다
포스터도 붙어 있다
아무래도 미술품을 파는 상점인 것 같다
울지 마라 여인아
뒤에 아저씨한테 사진 찍어도 된다고 허락 받았다





구경하다 보면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지고, 모두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 된다
지저분하고 더럽다고 소문난 프랑스의 지하철. 냄새가 좀 나긴 난다. 그래도 못 참을 정도는 아니다



너나할 것 없이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에서 

역시나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문구점으로 수제 공책을 사러 가는 길. 

배짱이다 아주. 찾아 오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그래도 그게 나쁘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음이 너그러워져서 일지도 모른다. 


두 시간 정도 헤맨 끝에 찾은 비밀던전의 입구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풍경. 빨간 길이 보이면 성공이다
양쪽으로 빽빽하게 잡화점들이 들어서 있다
과거의 모습과 현재 모습. 역시나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단다
가죽으로 만든 수제 문구용품
도착했다. 이곳을 찾고 싶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문구점
그래도 화개장터 처럼 '있을 건 다 있고 없는 건 없다'
노트는 2층으로 올라가야 만들 수 있다
노트의 크기, 소재 등을 직접 고른다
커버를 열어 종이를 끼우고 나사로 고정한다. 심플하다
이니셜도 새긴다. 사진은 허락 받았다


1930년부터 수제노트를 만든 문구점. 

이곳은 숲 소유주가 숲의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1925년에 설립했다. 

섬유는 소나무 껍질로 만드는데, 100% 재생 가능하다. 이곳에서 주로 쓰인다는 크라프트지(미표백지)는 

www.lacompagniedukraft.com 에서 구매 할 수 있다. 


겉표지를 딱딱한 크라프트지로 할 건지, 부드러운 가죽으로 할 건지. 

위로 넘길 건지, 옆으로 넘길 건지. 

크기는 얼마나 크게 할 건지. 

속지는 크라프트지(갈색 미표백지)로 할 건지, 표백된 흰 종이로 할 건지 직접 선택한다. 

이렇게 선택하는 옵션의 조합은 3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가격은 사악하다.

내가 선택한 옵션을 기준으로 현재 가죽 커버는 49.92유로, 속지는 9.08유로. 

소숫점 두 자리까지 가격을 정해서, 합하면 59유로가 되게 해놨다. 

오늘(2019년 4월 22일) 시세로 노트 한 권에 7만 5천 원이 넘는 셈이다.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평생 한 권만 가질 수 있는 노트니까. 오래오래 간직할 것이다. 


만약 색다른 장소를 산책하고 싶다면 이곳으로 가자. 


건물에 적힌 글자를 구글 지도에 치고, 건물이 보이는 방향으로 쭉 걷는다
계단을 올라 산책할 수 있는 공원으로 들어간다
나는 옥상에서 아래를 보는 걸 좋아하는데,
이곳에선 풍경이 바뀌는 것까지 볼 수 있다
오래된 건물 뼈대 위로 붉은 벽돌을 덧대어놓은 느낌이 신선했다
이 집에 사는 사람은 왠지 착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상상
시간이 지난 후,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파리에는 벼룩시장이 흔하다. 

비싼 명품이 많기로 유명하면서도 벼룩시장이 활발하다니. 

물건을 잘 만들어서 오래 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꿈보다 해몽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그들의 삶을 잘 모른다.  


어쨌든 중요한 건,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그 자리에 서서 물건이 가진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다는 거다. 


내가 간 곳은 일요일 오전의 Vanves Flea Market(방브 벼룩시장)'. 

파리 남쪽 끝 14구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파리 3대 벼룩시장이다. 


할머니가 열심히 설명하시고, 할아버지가 옆에서 거든다



나는 보는 것 만큼이나 먹는 것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엥겔지수 100%에 도전하며, 

궁금한 건 일단 입에 넣었다. 

길고 우여곡절 많은 여행 도중에 빠진 살은 이때 다시 다 채웠던 것 같다. 



방브 벼룩시장을 구경하고 나서 먹은 에스프레소, 바게트, 그리고 몽클레어
프랑스의 흔한 동네빵집.jpg




루브르박물관 옆 미술 상점 근처의 젤라토 가게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는 유명 레스토랑 'CHARTIER(샤르티에)'
달팽이 요리 에스까르고, 골뱅이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느낌이랄까. 맛있었다. 냠냠
오리 콩퓌, 내 입엔 별로... 그냥 스테이크 먹을 걸 



양고기를 거칠게 굽는 아저씨... 내 고기 타요 아저씨 (동동동)
동네 마트의 흔한 푸드코트, 세상 맛있던 양고기 스테이크




숙소 앞 중국집
졸린 눈을 부비고 일어나 한 그릇 때린 우육면




정치인,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는 'BRASSERIE LIPP(브라스리 리프)', 헤밍웨이가 '무기여 잘 있거라'를 탈고했다고...
식전 요리로 먹는다는 푸아그라
 오바마 대통령이 먹었다는 'Choucroute(슈크루트)', 프랑스식 족발인데 좀 느끼하다






고기에 맛 들인 뒤, 숙소에서 직접 만든 식사. 세상 꿀맛...




눈에 보여서 들어간 초콜릿 가게





샹젤리제 거리 근처, Le Relais de I'Entrecote (르 를레 드 앙트르코트) 가는 길
고기가 두 번에 거쳐 나온다. 따뜻할 때 먹으라고. 자상해...


파리에서 떠나기 전날 밤 있었던 일이다. 

몸이 으슬으슬 안좋았는데도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겠다는 일념 아래 

Le Relais de I'Entrecote (르 를레 드 앙트르코트)로 향했다. 


사람들은 많았고, 나는 뻘쭘함을 숨긴채 파리지앵의 당당한 걸음으로 식당에 앉았다. 

내 왼쪽에는 게이 커플이 앉았고, 내 오른쪽에는 부부가 앉아있었는데 

부부가 무슨 일인지 말다툼을 하는 모양이었다. 

(단어나 문장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왜 그런지 다 알 것 같았다. 느낌적이 느낌이랄까... 그런 게 있다) 


아내가 남편에게 막 화를 내고 있었고, 

남편은 항변하는 모양새였다. 

궁지에 몰린 갑자기 남편은 웨이트리스를 불렀다. 그리고 상황을 설명했다. 

상황을 살피던 웨이트리스는 노련하게 웃으며 아내의 편을 들었다. 

그리고 아내를 달랬다. '남자들이 다 그렇잖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웨이트리스는 내게도 동의를 구하는 듯한 눈빛과 말을 건넸다. 

나는 눈웃음을 싱긋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남편은 내 왼쪽에 있는 게이 커플에게도 말을 건넸다. 

그들 역시 논쟁에 끼어들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여섯 명이서 나누고 있었다. 

이 혼란스러움은 뭐지. 

남편은 멋쩍게 웃었고, 아내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아서인지 미소를 지었다. 


그 경험이 좋았다. 

전두엽이 고도로 발전한 사람들의 성숙한 문화 처럼 느껴졌다. 


우리나라 지하철 1호선 혹은 시골 버스를 타다보면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이런 모습을 종종(?) 보여주시는데, 

공감 능력은 물론, 상황을 적절하게 풀어가는 어휘도, 적절한 눈치도 

모두 놀라운 것이지 않은가.  


아... 사진 정리하다보니 다시 가고 싶다. 

서울에서 찌들어 산 지 너무 오래 됐다. 


마지막 사진은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850년 역사를 그대로 안고 서 있던 대성당이 화재에 휩싸이다니. 


영원할 줄 알았던 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 때 느끼는 충격. 

마음이 쿵 하는 그 감정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안녕 파리. 안녕 노트르담 성당.  




(끝)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 프랑스 (2) - 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