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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솔 Sep 22. 2022

죄송하지만 쓰레기통은 저 쪽에 있습니다.

입사 후 첫 1년 정도는 매일 퇴근길에 눈물이 났다. 사람들의 한숨 사이에, 이메일의 행간에 섞여있는 듯한 무시와 짜증이 견디기 어려웠다. 학생으로서는 겪어본 적이 없는 모멸감이었다.


회사원으로 지낸 십 년이라는 세월은 꽤 길었고, 마음은 무뎌짐과 단단해짐 사이를 수 차례 헤매었다. 어떤 상황에도 눈물은 흘리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자책 대신 남의 탓이, 괴로움 대신에 퇴근 후 맥주 한 잔이 그 자리를 채웠다. 꽤 치명적인 실수를 아무도 모르도록 신속하게 해치운 후 제법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다.


하지만 몰랐지. 그건 어디까지나 '익숙한 모멸감'에 한해서란 걸.


비서의 자리는 '사장실'이라는 어두컴컴한 나무 문 앞에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었다. 조금 급조했는지 다른 업무 좌석과 다르게 복도 중간에 갑작스럽게 들어앉은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화장실에 가려고, 물을 뜨기 위해 내 자리를 둥그렇게 돌아 지나갔다. 나는 없는 사람 같았다.


유난히 사람들이 나를 찾는 순간은 보고를 마치고 나올 때였다. 고생한 날들만큼 보고서는 두꺼웠고, 그만큼 시간은 길어졌으며, 보고를 끝내고 돌아서 나올 때만큼은 그 결과를 떠나 후련해 보였다. 이마에 맺힌 진땀을 닦아내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땀과 시간이 엉긴 종이 꾸러미를 내게 넘겨주었다.


아니, 실은 버렸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열 걸음만 걸으면 거기에 쓰레기통이 있었다.

업무공간의 생김새는 모든 층이 비슷했기에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럼에도 쓰레기를 내게 버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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