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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비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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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선 Jul 13. 2021

육아는 언제쯤 익숙해지나요?

[372일] 주사위는 던져졌다.

 육아를 하다 보면 유독 힘든 날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아이는 뭐가 그리 짜증이 나는지 하루 종일 칭얼대고, 평소엔 혼자 잘 놀더니 오늘은 이상하게 내내 안겨 있으려 했다.

원더윅스야 워낙에 오락가락하니까 이미 달관을 했는데 이렇게 하루 종일 짜증이 지속되는 건 처음이다.

돌이 지나면 좀 수월해질 줄 알았건만 오히려 힘이 세지고, 자유의지만 늘어서 더 대하기가 어렵다.

 어떤 날엔 좀 수월한 것 같다가 다음 날엔 전날 치를 더한 것처럼 힘든 날이 있다.

이건 뭐 매일 운명의 주사위를 굴리는 기분이다.

대부분의 일은 시간이 갈수록 손에 익고 요령이 생겨 쉬워지는데 육아만큼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쉽다고 느끼면 또 다른 챌린지가 펼치지고, 한 판을 깼다고 자부하면 곧 그다음 판이 나온다.

무인도에 갇혀 몇 판을 쉬고만 싶다.

이번에 빌린 장난감은 다행히 그의 취향에 맞았다.


 요즘엔 아이가 다치는 일이 늘었다.

남자 애라서 그런지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은 본능이 있어 소파, 침대(침대 헤드 꼭대기까지), 심지어 장난감 위에 올라타기도 한다. 문제는 늘 안전하게 내려오진 못한다는 것. 오늘 아침에도 침대에서 떨어져 이마에 시퍼런 멍이 들었다. 아이가 기동력이 생기면 눈을 뗄 수 없다던 선배들의 말이 역시나 옳았다.


 그래서 걸음이 늦는 것에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좀 천천히 커줬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이제 갓 돌이 된 애를 옆에 두고 신생아 때 사진 보면서 "이땐 이뻤는데..."라고 과거를 회상하는 게 자못 웃기기도 하지만 하루라도 어릴 때가 더 예뻤던 것처럼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반대로 나는 전업 육아를 하다 보니 몸을 사리게 된다.

운동선수들이 시즌 중에는 몸 관리하면서 술도 잘 안 마시고 수면 시간도 지키고 하는 것처럼 나도 알게 모르게 신경이 쓰이나 보다. 저번에 고향집에 내려갔을 땐 아버지가 술자리에서

"몸을 많이 사리네."


라고 말씀하셔서 대학 신입생 때 느꼈던 소름을 오랜만에 느껴보기도 했다.


 오늘 술 마시면 내일은 죽음의 육아가 기다리고 있으니 내 생존 본능이 술을 줄이는 것이리라...

육아에는 작전 타임이 없고, 육아에는 휴가가 없으니까.

오죽하면 엄마는 말씀하셨다.

"니들 셋 키울 때 누가 딱 1시간만 봐줬으면 좋겠더라..."


그녀는 아직도 아들이 회사 안 나가고 애 보는 사실이 신기하단다.

그녀의 눈에 비친 아들은 기특한 걸까, 안쓰러운 걸까, 부러운 걸까?


 돌잔치는 아주 간소하게 양가 부모님만 모시고 식사를 했다.

식사 땐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어른들로부터 위로와 격려 혹은 칭찬의 말을 듣지 못한 게 갑자기 서운했다.

골프니 테니스니 그런 시답잖은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와 아내는 우는 아이를 달래고 재우기 바빴다. 비싼 한정식이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고 집에 돌아오니 심지어 배가 고팠다.

솔직히 누구를 위한 돌잔치였나 싶었다.

돌잔치는 누구를 위한 자리인가?


 서운한 마음으로 짐 정리를 하다가 형이 준 선물 가방에 돌반지와 함께 돈봉투를 발견했다. 돌반지 케이스 안에 든 작은 편지엔 돌잔치는 원래 살아남은 아이와 지켜낸 부모가 모두 축하받는 자리라는 말과 함께 돈은 고생한 우리 부부를 위해 쓰라고 적혀 있었다.

역시 최근에 겪어본 사람이 그 마음을 잘 아는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 형아가'

 지금의 이 고단함과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픈 마음을 부디 잊지 않아야겠다.

나도 언젠가 축하와 위로가 필요한 젊은 부모에게 아낌없이 그것들을 나눠줄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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