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비일기2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선 Nov 10. 2021

아빠가 뽑은 육아 휴직과 군 생활의 공통점

[492일] 군 생활이 더 쉬웠어요

요즘 군대 꿈을 자주 꾼다.(소파에서 계속 자서 그런가)

그 때문인지 문득 그때와 지금 내 사는 모양새가 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난 김에 육아 휴직과 군 생활의 공통점을 정리해 봤다. 물론 100% 개인적인 상념에 기반했다.


1. 우선 외롭다

군인이 외롭다는 건 누구나 알고 또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피 끓는 청춘이 울타리에 갇혀서 시커먼 남자들하고 2년을 뒹굴다 보면 외로움은 나라사랑카드에 쌓여 매일 저녁 전화통을 붙잡게 만든다.(그러고 보니 요즘 군인 동생들은 공중전화 앞에서 줄 서지 않아도 되겠구나)


아빠의 육아 휴직도 외롭다. 

엄마 육아 휴직과 뭐가 다르냐고 따질 수 있겠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아빠가 육아 휴직을 내면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모두의 주목을 받는 반면 엄마 육아 휴직은 상대적으로 보편화되었다.

이게 왜 외로움과 관련이 있냐면 개인적으로 나는 외로움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 마음을 충분히 공감해줄 사람이 없어
누구에게도 속에 있는 말을 할 수 없을 때
외로움은 찾아온다.

같은 남자라도 할 수 없는 얘기가 있다. 

아직 장가도 안 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힘든 내색도 한두 번이지 그들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은 우리를 조금씩 멀어지게 한다.

심지어 같은 애 아빠들도 정확히 날 이해하진 못한다. 꼭두새벽에 회사에 나가 밤늦게 집에 들어와서 애 얼굴 한두 시간보다 잠드는 우리 불쌍한 아빠들은 본인이 가장 불쌍한 줄 알고 있을 테다. 그러나 휴직 중에 끊임없이 찾아오는 경력에 대한 고민, 남들보다 뒤처진 듯한 기분은 그들과도 공유할 수 없고 오롯이 나의 몫이다.


육아 동지인 아내에게도 할 수 없는 얘기가 있다. 

아내로 인해 서운한 감정이 생길 때다.

예상했지만 아이가 생기면 아내에게 최우선은 아이가 되고 남편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가졌던 신혼의 애틋함은 안타깝게도 육아로 인해 누적된 피로와 쏟아지는 잠들로 인해 추억으로 남게 된다.

심지어 아이가 침대를 차지해버려 거실이나 작은 방으로 쫓겨나 각방을 쓰는 부부도 꽤 많다.(나처럼)

예전처럼 불꽃같은 사랑을 기대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손만 닿아도 정색할 것 까진 없지 않나...)

선배들이 이런 얘기를 할 때 부부끼리 대화 좀 하라며 놀리며 충고하던 나를 그들이 어떻게 봤을지 지금은 짐작이 된다.

'이새퀴... 너도 곧 당해봐라.'


가장 가깝지만 돌아서면 누구보다 멀게 느껴지는 사람, 아내에게 서운할 땐 정말 혼자 속으로 삼키는 일밖에는 방법이 없다.


2.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대학 신입생 시절, 시간은 언제나 내 편이었다.

차고 넘치는 시간을 PC방에서 보내든, 술집에서 보내든 그건 온전히 나의 의지에 따를 뿐이었고 가끔은 시간이 남아돈다는 배부른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입대를 하니 나의 시간은 국가의 것이었고, 간부의 것이었고, 선임의 것이었다. 나는 송두리째 빼앗긴 나의 시간이 너무 억울해서 취침 시간에 잠을 안 자고 매번 연등을 신청해서 일기를 쓰고는 했다.

*연등 : 밤 10시 취침 시간 이후 1~2시간 정도 병사들의 자기 계발 시간을 배려해주는 것이나 대부분은 TV 시청으로 활용한다.


휴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 아쉬움이 참 많이 남는다. 그동안 뭐 하나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은 어찌 이리 빨리 지나갔는지 원망스럽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무얼 배웠을까 고민해보니 딱 하나였다.

'내 시간의 소중함'


육아 휴직을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여유 시간에 자기 계발이나 이직 준비를 하라는 충고를 더러 한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군대 있을 때보다 내 시간이 적다고.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난 후 찾아오는 짧지만 고요한 나만의 시간. 지쳐 잠들기도 하고 밤새워 넷플릭스를 보기도 했고, 공부 좀 해보겠다고 졸린 눈 비비며 책을 보거나 영어 스크립트를 찾아 읽기도 했다. 그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싶은 게 육아 노동자의 심정이다.


어린이집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낮 시간에 여유가 좀 더 생긴 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카페에서 이렇게 글을 쓸 시간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생각보다 어린이집을 보내기 전과 후 체감하는 내 개인 시간의 차이가 크지 않다. 부랴부랴 아이를 등원시키고 난 후 늦은 아침을 먹고 잔뜩 쌓인 설거지를 한 후에 책 좀 볼라 치면 벌써 하원 시간이 다가온다. 정말 신기하다. 회사에서는 그렇게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려도 시간이 안 가더니. 확실히 시간은 상대적이다.


3. 그래도 끝이 있다

돌이켜보면 지옥 같던 군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한 건 매일 같이 체크하던 남은 군 생활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니 뭣 같아도 2년만 참으면 다시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보초를 서던 밤이면 제대해서 뭐할지 생각하는 낙으로 버텼던 것 같다.


반면에 육아는 당연히 끝이 없다. 아이가 장성해서 독립할 때가 되면야 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건 너무 먼 훗날의 이야기니까.(오긴 올까?)

 

그러나 육아 휴직에는 끝이 있다. 

1년이면 1년, 6개월이면 6개월. 언제고 끝은 나게 되어 있고 1) 원래 있던 직장으로 돌아가거나 2) 다른 회사 또는 직업으로 이직하거나 3) 육아에 전념하는 결정을 할 수도 있다.

무슨 선택을 하든 육아 휴직에는 끝이 있다.


그리고 모든 끝이 있는 것들은 추억과 그리움을 남기기 마련이다. 아마도 훗날 (아니 복직하면 바로 일 수도) 지금 이 시간들을 그리워하고 또 아쉬워할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어디 육아 휴직과 군 생활의 닮은 점이 이것뿐이랴.

몸이 상한다, 돈이 없다 등등 찾아보면 닮은 것 투성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상쇄할 만큼 다른 부분이 하나 있다.

하나는 내가 선택하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내가 선택했다는 것.

어쩌면 옛말에 애를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는 건 본인이 선택한 일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어렵게 육아 휴직을 선택하고 그 책임을 다 하는 모든 부모들에게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겐 너무 조용한 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