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의 사람들, 여행에서 마주한 숙연함
2019.6. 제주여행 2
하도에서 이틀 밤을 보냈다. 하도의 바다는 모든 순간 아름다웠다. 빛이 반짝이다 스러지고, 이슬처럼 어둠이 시나브로 내려앉는 그 모든 순간순간 다른 모습으로 바다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바다에 있던 사람들. 그들의 모습에 나는 숙연해졌다.
나는 농부가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밥벌이를 하는 업으로써의 농부가 아니라, 그저 농부가 느끼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농부가 되고 싶다. 애써 풍성하게 만들어 놓은 상추의 줄기를 달팽이가 갉아먹거나, 탐스러운 토마토를 새들이 와서 쪼아 먹을 때, 고추 이파리 아래에 질서 있게 배치된 좁쌀 같은 주황색 노린재 알이 내 눈을 피해 자라나 고추를 못쓰게 만들 때, 알 수 없는 이유로 가지의 짙은 보랏빛 열매에 시멘트를 부어놓은 듯 누런 딱지가 앉을 때, 나는 상심하고 좌절한다. 상심과 좌절로 쓰라린 가슴을 안고 달팽이와 새들 노린재, 그리고 나의 농작물을 망쳐놓는 알 수 없는 그 모든 원인들에 대해 심한 적개심을 느끼면서 천연농약을 뿌려댄다. 천연농약이라고 해봐야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계피를 소주에 우려낸 물과, 사약의 재료로 쓰였다는 자리공 검보라색 열매를 물통에 넣고 흔들어 우려낸 물이 전부다. 천연농약을 전투적으로 분사하며 느꼈던 적개심이 내가 작년 한 해 작은 텃밭을 일구며 느낀 농부로서 가슴이 쓰렸던 순간의 전부다.
아마추어 농부. 나는 농사의 기술은 모르고, 그저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아마추어 농부다. 그러나 프로페셔널 농부를 꿈꾸지는 않는다. 프로페셔널 농부가 느끼는 직업으로서의 고단함에 대해서는 모르고 싶다. 그러니 나는 얌체다. 연애의 처음, 보기만 해도 설레는 좋은 시절을 보내고, 어느 순간 함께 극복해야 할 괴로움이 닥쳐왔을 때 그 괴로움을 감당하기 싫어 연인을 버리고 떠나는 나쁜 년처럼 나는 그저 아마추어 농부에 머물고 싶을 뿐 직업 농부가 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누가 나를 얌체라고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마추어로서 프로의 세계를 엿보게 될 때 경이로움과 존경으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농부 내외가 나란히 앉아서 부추를 잘라 손질하는 모습이 참 정다워 보여 허락도 없이 사진을 찍었다.작년 여름 따가운 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거의 매일같이 사십 분을 걸어 밭에 갔다. 밭에 걸어가는 길에 나 같은 아마추어는 흉내도 못 내는 숙련된 농부의 밭을 지났다. 아마 예전에는 농사를 꽤 많이 지었겠지만 아파트가 들어서고 상가가 생기면서 많던 논과 밭을 팔고 이제는 소일거리로 당신들 먹을 것과, 가외로 장에 내다 팔 것들을 조금 더 길러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밭이 많았다. 평생 농사를 업으로 살아온 그분들의 밭은 정갈하기 이를 데 없이 아름다웠다. 자식들을 길러내고 하루 또 하루 살아가기 위해 정직한 노동으로 세월을 지나온 나이 많은 농부의 밭에는 전문가들에게서 보이는 간결하고 단순하지만 수많은 복잡한 것들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지혜가 있다. 살이의 고단함과 그 고단함을 이겨내려는 전 생애에 걸친 부단한 노동에서 나온 아우라가 아닐까 감히 나 같은 아마추어가 짐작해 볼 뿐이다.
하도에서도 그런 아우라를 발견했다. 바닷가에 벗어놓은 슬리퍼에서. 아마도 세화 오일장에서 샀을 것 같은 고무 슬리퍼는 그렇게 해녀들이 작업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그곳에서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그 기다림이 애잔하게 느껴졌다.
아침부터 장비를 챙겨 들고 와 작업복을 갈아입고 씩씩하게 그 예쁜 하도의 바다로 나가는 해녀들. 이 씩씩한 전문가 집단을 기다리는 것은 고무 슬리퍼뿐만이 아니었다. 작업이 끝날 때쯤 트럭을 몰고 또는 오토바이를 타고 와 바다를 바라보며 이들이 나오기를 걱정스럽게 기다리는 남편들이 있었다.
여행에서 만난 살아감의 모습은 잠시 떠나온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숙연해진다. 나 같은 아마추어가 명함도 못 내미는 척박함과 씩씩함과 지혜로운 노동의 삶 앞에서 나는 '엄살을 피우며 나대고 있었구나' 겸손하게 하도의 아침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