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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나무 Apr 01. 2016

여름산책

결혼을 결심한 순간


약속이 7개이던 주말이 있었다. 토요일 아침 점심 저녁 밤 그리고 일요일 아침 점심 저녁. 지금의 남편과의 연애가 시작될 즈음 유독 그런 주말이 연달아 있었다. 그 7개의 일정 중 4번째쯤이 이 사람을 처음 만난 모임이었다. 연애할 때도 결혼 후에도 누구와 무얼 하든 잘 놀며 살았다. 하지만 임신을 한 지금은 주말 이틀 중 하루를 놀면 하루는 쉬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니 중기가 되어서야그럴 수 있었다. 초기에는 매일 누워만 있었던 것 같다. 입덧을안 하는데도 세수하고 나면 힘들고 머리 감고 나면 힘들고 로션 바르고 나면 힘들어 나갈 준비를 하다가도 몇 번을 다시 누웠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지금 하루 놀고 하루 쉬는 체력도 감사할 일이다.


토요일이었던 어제는 기차를 타고 춘천에 다녀왔다. 남편은 어디도 다녀본 적이 없다. 춘천도 처음이라고 했다. KT&G상상마당에서부터 공지천을 따라 걸었다. 5월부터 12월까지 별빛 축제가 있다고 하여 찾은 곳이다. 해가 지니 나무에 온통 빛이 켜졌다. 빛으로 만든 조형물이 어설픈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남편과 손을 잡고 이 곳을 걷고 있다는 것이 좋았다. 춘천역에서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니 열한 시 반.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한시까지 뒹굴 거리다 잠이 들었다. 일요일. 자다 깨다 밥 먹다 또 자다 깨니 오후 네 시 반. 주말이 몇 시간안 남았다.


벌떡 일어나 씻었다. 그리고 냉동실에서 스테이크고기를 찾아 꺼냈다. 결혼할 때 받아온 고기다. 엄마에게전화를 걸었다. 냉동실에 8개월간 있었던 소고기. 먹어도 될 것 같다고 이상하면 먹지 말라고 하신다. 이상하면 안먹는 건 당연한 말이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음식이 이상한 것을 잘 눈치채지 못한다. 남편이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거다. 고기를 잔뜩 구워 먹었다.


여섯 시 이십 분 아직 해가 지지 않는 여름이다. 서둘러 집을 나섰다. 밖으로 나왔는데 하늘이 이상하다. 다시 올라가 우산을 챙기고 젖어도 되는 신으로 바꿔 신었다. 어두컴컴했다. 주변의 집과 가게 안의 풍경이 더욱 선명해졌다. 나는 이런 날씨가 마음에 든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자마자 비가 쏟아졌다. 아직 재미있었다. 버스를 타고 광화문으로 왔다. 원래 목적지는 새로 생겼다는 건물이었다. 그 곳을 향해 길을 두 번 건너는 동안 신발 속에 물이 찼다. 도착하고 보니 마땅한 카페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건물 안 공간에 비를 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맞은 편에 보이는 카페로 가야겠다 싶었다. 신호등이 너무 멀다. 일단 교보문고로 들어갔다. 교보문고 안에 있는 카페도 아니다. 1층에 있는 베이커리도 아니다. 다시 아까 봤던 카페로 향한다. 여전히 비가 쏟아진다. 남편 운동화는 밑창이 벌어져 있다. 나는 새 신발을 사면서 남편 운동화는 순간 접착제로 붙여 신기로 했다. 접착제 사는 것을 늘 까먹는다. 비를 피해 빨리 걸으면서도 남편 운동화가 계속 신경 쓰인다. 버스에서 내린 지 삼십 분 만에 겨우 카페에 들어왔다. 남편이 나에게 괜찮으냐고 묻는다. 이 밤에 나오자고 한 건 나다. 비가 오는데도 멈추지 않은 것도 나다. 나는 신발 잠시 벗고 있으면 그만인데 운동화 안에 양말까지 다 젖은 남편은 얼마나 찝찝할까. 남편은 밝다. 운동화가 깨끗해졌단다.


우리 팀에는 심리학 전공자가 두 명이었다. 나이도 동갑이고 사는 동네도 가까웠다. 그녀가 술을 먹자고 했다. 다른 날과 조금 달라 보였다. 그녀는 내가 좋다고 했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한다. 나는 이 회사에 네 번째 심리전공자로 입사했다. 첫번째 사람이 그만두면서 나를 채용했다. 일년뒤 두 번째 세 번째 사람도 회사를 그만두었다. 다섯번째로 입사한 그녀도 가끔 그만둘까라는 말을 했었다. 원하는대로 하라는 나의 반응을 서운해했다. 같은 일을 하던 사람이 그만둘 때 나는 이 일을 계속 하는 것이 맞는가를 생각하는 것에 많은 에너지가 든다. 떠나기를 선택한사람은 이 곳의 단점을 찾아내고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남아있는 곳을 부정하는 것이다. 자신의 결정이 옳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알려주기 위해 그들에게 필요한 절차일 것이다. 나중에서야 그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이런 이해가 있기 전이었다. 그녀가 그만둘까 하며 내 반응을 관찰하는 것 같아 짜증이 났다. 단호하게 말했다. 알아서 선택하고 결과만 이야기 하라고 했다. 그래서나를 좋아한다는 그녀는 모든 것을 다 준비하고 결정한 뒤 건배를 하며 나에게 퇴사를 알리고 있다.


그녀는 당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했다. 오늘 그녀 때문에 내가 힘들테니 나를 데려다 주라고 한다. 나는 동료를 떠나 보내는 것에 익숙했다. 가는 길에 행운을 빌어주고 나는 왜 이 곳에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 나의 절차다. 아마 집으로 혼자 걸어가며 그 절차를 밟았을 것이다. 나에게 무슨 일이 있다고 해서 멀리 있는 남자친구를 부르는 성격은 아니다. 시간이 늦었다거나 피곤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상황은 아예 만들고 싶지 않다. 평일 밤 열시 에 삼성동에있고 신림동 집으로 귀가해야 하는 내 남자친구를 분당으로 부를 때에도 나는 계속 말렸다. 그가 왔다. 양복 바지에 셔츠를 입고 한 손에는 서류 가방을 어깨에는 바이올린을 메고 있었다. 땀이 나고 있었고 숨차 보였다. 그녀는 그에게 자기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지금 말했으니 마음이 복잡할 나를 집에 데려다 주라고 불렀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집으로 갔다.


그 곳에서 우리 집 까지는 걸어서 40분 정도가 걸린다. 아파트 단지 내 공원들로만 이어져있다. 평소에 혼자 걷기 좋아하는 길이다. 그 날도 걸어서 가고 싶었다. 그에게 가방이 무겁지 않은지 너무 덥지는 않은지 물었다. 괜찮다고 한다. 가방은 가볍다고 한다. 같이 걷기로 했다. 손을 잡고 앞을 보며 걸었다.


많은 얘기를 했다. 내가 이 곳에서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지, 입사 후 세 명의 동료가 퇴사할 때 내가 어땠는지. 같은 이유로 떠나는 그들은 왜 가는 것인지, 그럼에도 나는 왜 이 곳에서 일하는지를 이야기 했다. 나에게 하는말들이었다. 내일도 모레도 계속 출근 할 나를 설득하기 위한 말들이었다. 가끔씩 옆을 보면 그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계속 걸어도 되는지 물었다. “그럼요, 그래서요 그 다음은 어떻게 됐는데요.” 내 이야기를 얼른 계속 하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독백이라고하는 것이 더 어울릴 대화가 절정을 지나갔을 때쯤 신호등 앞에서 멈춰 섰다. 차도 앞이라 걸어오던길보다 환했다. 옆을 봤다. 아까 볼 때보다 땀을 더 흘리고있었다. 바이올린을 메고 있던 등이 흥건히 젖어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살짝 들어보았다.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회사 짐을 정리할 것이 있어 챙겨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파란 불이다. 걸으며 그는 또다시 나보고 이야기를 계속하라 재촉한다. 더 이상 그 대화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건 옆에서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이 사람이었다. 벤치에 짐을 내려놓게 했다. 안았다. 땀이 났다며 안지 말라고 한다. 한참을 꽉 안고 있었다. 이 사람에게는 지금 내 마음과 내 이야기가 중요했다. 자신의 덥고 무거운 불편함 정도에는 전혀 방해 받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누구에게나 결혼을 결심하게 된 순간이 있다면 나에게는그 여름 밤 의 산책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이 마음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면 충분하다는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사랑이 변해도 이 산책과 그 밤의 진심을 기억해두자 싶었다. 아니 사실 언제든 그 마음의 그와 함께 하고 싶었다. 내가 그의 마음을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지금 그는 양말과 운동화가 흠뻑 젖은 채 세시간째 카페에 함께 있다.


“내가 나오자고 했는데.”

“나도 나오고 싶었어요. 일요일이잖아요.”

“비 엄청 오는데도 내가 계속 간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다시 집으로 가기는 뭐하잖아요.”

“저기도 내가 가보자고 했는데.”

“나도 한 번 가보고 싶었어요.”

“다 젖어서 찝찝하지 않아요?”

“괜찮아요 다 말랐어요.”


거짓말이다. 하나도 안 말랐다. 하지만 괜찮다고 하는 말은 진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불편함을 크게 불평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불편함 보다는 지금 중요한 것에 더 집중할줄 아는 사람이다. 함께 나와 카페에 앉아 각자의 시간을 갖는 이 순간의 소중함이 그에게는 더 중요하다. 그래서 괜찮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그가 나는 참 좋다.

몇주 전부터 일요일 저녁에 카페에 나오는 기분이좋다. 주말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커플들이 보인다. 함께한 주말 시간 동안에 대한 행복과 아쉬움이 섞인 얼굴이다. 지금은 밤 열 시. 남자가 여자 집에 바래다 주고 가든 각자의 집으로 바로 헤어지든 집에 가면 열한 시. 씻고 누우면 열두 시. 늦어져도 전화로 목소리를 듣고 자겠지. 그들의 주말 끝을 괜히 혼자 상상해본다. 나는 남편과 손을 잡고 같은 집으로 간다. 각자 씻고 정리하고 준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한명이 침대에 누워 있으면 다른 한 명도 잠시 후에 온다. 각자의 시간을 갖지만 어디서 뭐를 하는지 훤히 보인다. 부르며 찾을 필요도 전화할 필요도 없다. 자연스럽게함께 하는 이 공기가 좋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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