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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나무 Apr 01. 2016

엄마도 울어도 되니.

뱃속 아가야 엄마 잠시 울어도 되니


  토요일 아침이다. 간만에 아무 일정이 없는 주말이다.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7시면 눈이 떠진다. 화장실에 다녀오지 않으면더 이상 잘 수 없는 시간이다. 임신 후 나의 숙면을 책임지고 있는 쿠션에서 힘들게 몸을 일으킨다. 몸 전체를 감싸고 지탱해주는 U모양 쿠션이다. 잘 잔 것 같아도 침대에서 일어날 때에는 허리가 너무 아프다. 양손으로허리를 받치며 화장실로 간다. 할머니가 된 기분이기도 하다. 화장실에 다녀오면 쿠션 대신 남편 속에 눕는다. 어깨 사이로 머리를 밀어 넣고 왼쪽으로 몸을 틀어 눕는다. 몸 전체를 남편의 오른 쪽에 밀착한다. 딱 들어맞는 그 느낌을 좋아한다. 평일에는 십분, 이십분 이렇게 누워있다가 출근준비를 한다. 오늘은 한 시간 두 시간도 이대로 있을 수 있는 날이다. 그래서인지 생각이 많아진다.


아직 잠이 깨지 않는 남편에게 오빠만 믿으면 되는지 묻는다. ‘나 사실 너무 불안해.’라는 문장을 입 밖으로 꺼냈다. 동시에 눈물이 터진다. 한 번 열리니 잠길 줄 몰랐다. 숨을 잘 쉬기 어려울 만큼 울음이 계속 된다. 내가 흐느끼고 있는것인지 뱃속의 꿈꿈이가 움직이는 것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엄마도 울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내가 지금 울고 있다는 것을 뱃속에서 다 느끼고 있으려나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멈춰지지 않는다. 한참을 남편에게 딱 붙어 울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받으며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국비 지원 6개월 과정이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난 후로도 3개월 정도는 수입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제 아빠가 될 사람이 모험을 선택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 것인지 환경 조사는 마친 것인지 물었다. 회사에서 윗 사람에게 들은 질문들을 남편에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나를 안심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다음 날 출근해서 다시 남편을 생각했다. 내가 남편이라면 어떨까. 그는 아이가 태어나면 마흔이다. 삼십대 중반에 가까울 때까지 공부를 했다. 그리고나서 그 공부와 관련 없는 일을 몇 년간 했다. 성장 욕구를 채워주기 힘들고 비전도 약한 일이다. 안정적인 일을 하기에 내세울만한 경력이 없다. 나라면 너무 막막하고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것 같았다. 어제 내게 그 얘기를 하던 남편의 얼굴을 떠올렸다. 간절해보였다. 나의 추궁에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설렘도 분명 있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진로를 선택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남편은 지금껏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보지 못했다. 마음이 아팠다. 남편과 물리적 거리를 두고 나서야 생각할 수 있었던 것들이다. 남편이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린다면 반가울 것 같다. 내 의견대로 일단 지금은 곧바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몇 개월 하다가 그 일이 안정되면 그 후에 배우고 싶은 것을 병행하겠다고 했으면 좋겠다.


며칠 뒤 다시 얘기를 나누었다. 처음보다 마음을 열고 들었다. 남편은 눈을 반짝이며 얘기했다. 얼마나 하고 싶은지, 얼마나 잘 할 것같은지, 어떤 쪽으로 기회를 만들어가고 싶은지. 5년쯤 후에는 미국에 가서 살 수 있는 방법도 찾고 싶다고 했다. “우리 미국 가서 사는 거예요?” 직장상사 모드에서 철없는 아내의 모드로 전환했다.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남편이 그리는 꿈을 그대로 믿고 지지해주고 싶다. 그래서 그 꿈이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당장 몇 개월의 불안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나에게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오빠만 믿어도 되냐고 물었지만 한 편에서는 아기 낳고 예상보다 빨리 복직을 해야 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두었다. 하지만 자고 나면 다시 불안이 밀려든다.


내가만난 회색 호주

 

서른 셋. 호주에 갔다. 내가 사는 곳과 정 반대의 날씨를 가진 큰 자연이 상상되는 나라였다. 11월을 선택했다. 이 곳이 추워지려하니 그 곳은 따뜻하기를 기대했다. 여름 옷을 챙겨 비행기를 탔다. 시드니에 도착하자마자 하버브릿지와 오페라 하우스가 동시에 보이는 곳으로 갔다. 눈이 부셨다. 바다가 빛을 받아 반짝였다. 땀도 살짝 났다. 내가 상상하고 원했던 공기였다. 다음날 비가 왔다. 쌀쌀해서 가디건을 입고 나섰다. 회색의 하버브릿지가 비 오는 날씨와잘 어울렸다. 미술관을 구경했다. 작품을 구경하다가 비 오는창 밖을 구경했다. 좋았다. 다음 날에도 비가 왔다. 그래도 볼 것이 있겠지 하고 두 시간을 걸려 블루마운틴에 갔다. 웅장한 자연을 보는 것으로 기대했던 곳이다. 세자매봉을 볼 수 있는 곳에 도착했다. 하얀 안개 말고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스무 살 때 십 만원 정도하는 기차를 타고 융프라우에 도착했을 때 본 풍경과 같았다. 다음 날에는 비가 더 많이 왔다. 바지가 젖었다. 그 다음 날에도 계속 비가 왔다.


블루마운틴에서 본 전부


비가 오니까 기차를 타고 멀리 가보자. 시드니에서 3시간이 걸리는 kiama에 가보기로 했다. 기차 시간에 맞춰 역으로 갔다. 선로 공사로 인해 연착이었다. 어둡고 공기는 퀴퀴하고 의자도 하나 없는 지하 플랫폼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겨우 기차를 탔다. 아직 중간 밖에 가지 않았는데 기차는 더 이상 운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공사로 선로가 끊긴 상태이고 버스로 목적지까지 이동해야 했다. Kiama에도착하니 비가 멈췄다. 이 곳까지 오는 동안의 우여곡절은 잊고 즐기자 싶었다. 먼저 근처 식당으로 갔다. 피쉬 앤 칩스를 시켜 테라스에 앉았다. 다시 쏟아진다. 안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짜증이 난다. 내가 어디까지 즐길 수 있나 시험하려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비가 와도 좋은 이유를 찾고 비가 와도 여행을 계속 하니 이 하늘이 지금 나를 뭘로 보고 이러나 갑자기 화가 났다. 시드니는 1년 중 비 오는날을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나는 1년 중 열흘을 겨우 마련해서 이 곳에 왔다. 내가 있는 시드니는 손을 꼽을 필요 없이 매일 비가 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혼자 속으로 신경질을 내며 점심을 다 먹었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그쳐 있었다. 금방 또 비 오겠지 뭐. 자존심이 상해서 좋아하지 않고 버텼다.

처음 마주한 화창함

조금 걷다가 골목을 돌려고 하는데 저 쪽에서 햇빛이 조금 보였다. 빛을 조금 따라가니 쨍쨍한 햇빛과 나무 바다가 펼쳐졌다. 머리와 상관없이 입이 웃고 있었다. 입이 찢어질 듯 웃음이 나왔다. 바다를 향해 달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날씨가 너무 좋다며 괜히 말을 걸었다. 신이 났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걷고 의자에 앉아 한참을 바라봤다. 행복했다. 시드니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다시 비가 왔다. 괜찮다. 그 다음 날에도 비는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여름옷만 챙겨왔었다. 얇은 옷을 여러 개 껴 입고 레깅스와 가장 두꺼운 가디건은 매일 입었다. 비가 들이치고 추워서 몸이 떨려도 테라스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우산 쓰고 공원을 걸었다. 잠깐씩 해가 비출 때 그 순간을 만끽했다. 맨리 비치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비가 멈추고 해가 났다. 껴입고 온 칙칙한 옷 대신 형광분홍색 원피스를 사 입는 것으로 환한 날씨를 자축했다. 하지만 조금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또 금새 비구름이 따라오고 있었다. 그래도 하늘과 점점 사이 좋게 지내며 시드니 여행은 끝이 났다.


비와 함께 즐긴 시드니

남편의 실직과 새로운 도전. 불안한 미래. 남편과 뱃속 아기에 대한 사랑도 함께 뒤엉켜 웃었다울었다 하는 며칠을 보냈다. 그러다 시드니가 떠올랐다. 그때 그 곳에서의 사진을 하나씩 열어본다. 그 곳의 하늘이 나를 안아주는 것 같다.
   꿈꿈아, 혹시 또 눈물이 나면 엄마 조금 울게. 하지만 매일 울지는 않을게. 사랑해.

비구름과 햇살이 오가던 시드니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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