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chrome blues Mar 16. 2022

커피로운 삶.

커피로 취미생활(2) - 일상이 커피로 가득찬 이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는 남이 내려주는 커피다. - 잠실에서 카페와 커피교실을 운영하고 계신 커피 은사님. 


   주말 아침. 삐그덕거리는 몸을 가까스로 일으킵니다. 평일의 노고가 몸에 쌓였다거나 전날 마신 술 때문 일 겁니다. 눈떠본 뒤 그나마 살만하다면 운동하러 나갈 테고, 죽기 일보 직전이라면 침대에서 느물거리며 뒹굴거리겠죠. 평행 우주와 같이 아침의 나에겐 무수한 갈래의 선택지가 펼쳐집니다. 그러다 톨게이트 마냥 하나의 세계로 모여들죠. 아아, 커피. 커피가 필요합니다. 밖에 있을 때라면 카페로, 집에 있을 땐 찬장으로 향합니다. 이보다 지독한 습관 또는 애정 행각이 또 있을까요? 어쩌다 이렇게 빠져들었을까요?


Q. 당신과의 첫 만남 

   커피 하면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제가 처음 마신 기억은 솔직히 생각나지 않아요. 수많은 하루와 마찬가지로 특색있게 반짝거리진 않더군요. 근데 어머니께서 드시는 풍경만큼은 익숙함을 뛰어넘어 뇌리에 단단히 박혀있습니다. 커피메이커로 내린 뒤 물을 타서 보리차처럼 연하게 희석시켜 드시는 모습. 고양이와 집이 그려진 머그잔에 담아드셨죠. 책상에 앉아 즐겨 드시던 그 장면 눈에 선합니다. 공부하실 때라던가 책장을 넘기실 땐 늘 머그잔과 함께 셨거든요. 대학 시절엔 도서관에서만 예닐곱 잔은 족히 드셨답니다. 그런 걸 보면 저의 커피 사랑은 모계 유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굳이 본인이 마셨던 순간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아보자면 허세가 키워드입니다. 에스프레소란 애가 사약 같고 쓰대요. 근데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은 걔만 마신단 소문은 또 어디서 주워 들었습니다. 어디 가서 커피 아는 척 좀 하려면 에스프레소를 마셔야 할 느낌이 오지 뭡니까. 중3, 또는 고1이었을거에요. 카페에 갈 기회가 생겼을 때 까먹지 않고 주문했습니다. 호기롭게 따로 마실 물도 필요 없다고 사양했죠. ‘요런 애 또 왔네’란 표정의 직원이 아직도 잊히질 않네요. 남들은 아메리카노로 시작해도 사약 같다고 무슨 맛으로 마시냐고 반문한다는데 전 농축액으로 때려 부었죠. 


   당혹감. 솔직히 처음 먹을 땐 이게 뭔가 싶었어요. 눈을 질끔 감자 눈물이 찔끔 흘렀죠. 그 후론 카페 모카나 라테를 자주 마셨는데 점차 아메리카노만 찾게 되더군요. 참고로 전 ‘얼죽아’, 얼어 죽어도 어지간해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랑합니다. 


Q. 언제부터 내려마시게 되었나요? 배우셨나요? 

   앞선 글에서부터, '난 취미로 커피를 내려마셔요.'라고 주장하고 있단 말이죠. 그럼 언제부터 이런 취미가 생겼는지 밝혀야 인지상정입니다. 근데 처음엔 오로지 돈 때문이었어요. 대학생땐 오로지 카페인'만' 필요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습관처럼 물 대용으로 마셨는데, 이게 아무리 학관에서 아메리카노를 사 마신다고 해도 주머니 사정상 꽤나 지출이 컸습니다. 자판기 커피는 다들 아시잖아요. 맛있긴 한데 입만 텁텁해지고 살찌는 기분. 핫식스나 레드불은 몸이 아팠어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마시면 아픕니다. 옭죄는 기분. 결국 커피가 딱이라 조금이라도 싸게 마실 방법을 찾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렸죠. 그 끝에 캡슐커피가 있었습니다. 거의 십년 전이니 그때만해도 네스프레소는 지금처럼 맛있질 않았어요. 적당한 다른 브랜드 제품을 구했죠.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데 커피빈에서 판매하던 캡슐과도 호환되는 기계였습니다. 


   백 퍼센트 만족스럽진 않더라도 확실히 직접 내려마시는 쪽이 그나마 저렴하더라고요. 그러다 이 삼 년 뒤 콜드 브루로 넘어갔습니다. 한창 콜드 브루 붐이 일던 시절이었어요. 거기에 편승했죠. 지금이나 그때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는 '얼죽아'라 콜드 브루가 취향에 맞았거든요. 캡슐보단 원두 쪽이 더 저렴하기도 하고 맛도 그럴싸했습니다. 다만, 원두를 직접 사다 보니 종종  드립 커피를 도전해보곤 했는데요, 그렇게 맛없을 수가 없었습니다. 쓰기만 하고 평소 마시던 커피와 전혀 다르기도 하고. 몇 번 정도 원두를 사며 카페 주인 분들께 팁을 여쭤보긴 했는데 도통 잘못된 이유를 못 찾겠더라고요.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내리는 드립 커피는 참 맛나 보이고 무언가 하루를 평온히 여는 느낌이 들었는데. 왜 내가 내리는 커피는 이 모양인가?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 졌고, 무엇에 홀린 듯 몇 달 동안 배웠습니다. 그리고 커피에 대해 개안했죠. 삶 속에 녹아들었습니다. 일상의 꽤 많은 부분과 여러 취향의 습관들이 커피로 인해 변화했습니다.  


   커피와 관련해서 유일한 후회가 있다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지 않은 점이에요. 몇 달 동안 배웠을 때 겸사겸사 했으면 땄을 것 같거든요. 그냥 즐기는데 자격증이 없어도 충분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하라면 못하지 싶습니다. 그래도 맛있는 커피를 추구하고 찾아가는 즐거움은 취미에 멈추어 있어도 행복하답니다.



Q. 어떤 커피가 맛있는 커피인가요? 취미로 삼기 위한 초기비용은요?

   오늘 글의 핵심입니다. 결국 맛있는 커피를 먹기 위한 여정이었으니깐요.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맛있는 커피를 좋아하죠. 원두마다 맛이 총천연색이다 보니 궁금한 원두를 찾아 드립 방식으로 내려마시는 걸 선호합니다. 저 역시 남이 내려주는 커피가 제일 맛있다는 걸 자 알기에 좋은 분위기,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카페라면 더욱 좋겠지만요. 


   가끔씩 라테류가 당길 때가 있지만 어지간해선 드립 커피나 아메리카노, 혹은 에스프레소가 취향입니다. 집에서 드립, 에스프레소, 라테 모두 가능하긴 한데 드립이 절대적인 지분을 차지합니다. '다도'라는 측면에 맞닿아있기 때문인지 내리는 과정에서부터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더라고요. 


   드립에도 여러 도구와 방식이 있습니다.  근데 같은 원두라도 내리는 방식이나 도구, 물 온도, 원두 그라인딩 굵기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 됩니다. 물론 내리는 사람 손맛에 따라서도 달라지고요. 가끔은 수학 공식같기도 하고 어쩔땐 인문학적 유희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보통 '하리오'라는 추출 도구를 사용할 때 실패가 적어서 많이 사용합니다. 드립에 소요 시간이 적게 들어 대부분 카페에서는 하리오를 사용하고요. 


하리오 드리퍼.


   며칠 전 기사로 스타벅스 커피값이 7년 만에 인상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간 4,100원이었다더군요. 제일 저렴한 아메리카노가 그 가격일 거예요. 비싸다면 비싸고 싸다면 싼데, 직접 내려마시기 시작하면 웬만한 카페보다 저렴합니다. 드립 커피 기준으로 하면 도구만 마련되면 원두에만 비용을 쏟으면 되는데요, 200g 원두가 15,000원 내외입니다. 드립으로 따지면 대략 10번 정도 내릴 횟수예요. 그러면 대충 1,500원 꼴 정도 되네요. 한 삼사 년 전만 해도 딱 여기까지만 말해도 손수 내려마시는 커피의 장점은 끝났어요. ‘와, 동네 커피도 삼사천 원은 금방인데 절반 꼴이네?’ 정도 나오죠. 근데 뭐 요새는 백 다방이라던가 메가 커피 등등 저렴한 친구들도 많이 생겼잖아요? 이제는 가성비만으로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요즘엔 누군가에게 홈커피의 장점을 말 한땐 경험과 맛까지 설명한답니다. 


   보통 '다도'라고 하죠. 보통 녹차를 우릴 때 가장 많이 붙는 단어인듯해요. 차를 우려내기 전의 마음가짐과 자세, 내리는 일련의 과정과 음미하는 방법. 이는 드립 커피에도 통용될 수 있다 믿어요. 커피를 내리는 동안 그 평화로움을 사랑하거든요. 로스팅한 지 한 달 이내의 원두가 가장 좋습니다. 갓 로스팅한 녀석보단 최소 삼사일은 되어야 불필요한 맛이 사그라들고 본연의 맛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뒤로는 원두를 적당한 굵기로 갈고 끓인 물을 주전자에 넣어 잘 추출합니다. 기호에 맞게 내린 커피를 살짝 맛본 뒤 물을 타거나 얼음을 섞습니다. 기지개 한 번 피어주고. 커피 잔에 코를 가져다 댑니다. 


   ‘커피’라고 하면 모름지기 떠올릴만한 맛들이 있으실 거예요. 뭔가 쌉싸름하고 약간 고소하고 묵직한 맛. 근데 생각보다 커피의 맛은 다양하답니다. 요새는 커피를 가면 종종 원두를 골라주셔야 한단 말을 듣습니다. 보통  ‘산미’가 있는 원두와 ‘바디감’이 있는 원두 중 택일하란 선택지를 물어보죠. 앞서 말했던 고소하고 쌉싸름한 친구가 후자 쪽입니다. 그러면 전자 쪽은 무엇일까요? 과일향, 꽃향 등등. 보통 사과라던가 자두, 베리류처럼 상큼한 신맛을 떠올리면 됩니다. 생각보다 커피의 맛은 다양하거든요.  


   배스킨라빈스 31을 생각해봅시다. 아이스크림이라는 범주 내에서 예상할 수 있는 맛이 펼쳐집니다. 근데 엄마는 외계인이라던가 레인보우 셔벗, 사랑에 빠진 딸기, 초코 나무 숲 등등. 세부적인 맛은 다 다르잖아요? 커피도 그렇습니다. 혹시 믿지 못하시겠나요? 커피가 거기서 거기지 그렇게까지 다르겠냐고요? 카페인 섭취를 빼고서라도 조금만 더 집중해보세요.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라테, 카푸치노 등등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맛들도 있지만, 원두 그 본연의 맛에서부터 달라지는 큰 차이를 한 번 느끼기 시작한다면 빠져나올 수 없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