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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Feb 22. 2024

나는 당신의 무엇입니까?

혼자서 할 수 없지만, 둘이서도 못하는 게 또 결혼아니겠나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러게, 무엇으로 살려나.


   소설의 제목을 읊조리며 있어 보이는 척하기는 쉽다만 경험담을 통해 답을 구해보려니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멍하다. 출발조차 할 수 없이 제자리에 발이 묶인 기분. 그래도 작년 동안 얻은 교훈은 하나 있었다. ‘결국 사람은 혼자 살 수만은 없구나.’란 점이었다.


   ‘어차피 혼자 사는 세상.’이라거나 ‘천상천하 유아독존’ 같은 말. 더불어 사는 인생을 얘기하는 말들도 많지만 혈혈단신을 뜻하는 말도 의외로 많다. 가끔씩은 그게 맞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기도 하고. 근데 작년 한 해만큼은 무리다. 그 마음 고이 접어둘 수밖에 없다.


   2023년은 그  어느 때보다 매우 정신없는 한 해였다. 새해를 눈앞에 두고 사랑하는 이에게 프러포즈했으며, 연초부터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보통은 웨딩 플래너를 끼고 도움 받는다던데 어쩌다 보니 둘이 알아서 준비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구할 생각조차 안 했는데, 서울이라던가 수도권 같은 생활권에서 벗어나 지방에서 하게 되다 보니 자연스레 고려치 않았나 싶다. 무식한 게 용감하다고 무작정 좌충우돌 뛰어다녔는데, 그런 것치곤 험난치 않고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11월 초의 결혼식. 많은 일이 있었지만 무탈하게 식을 치렀으며, 감사하게도 큰 싸움 없이 온 과정을 이끌어갔다.


무사 무탈하게 신혼여행. 잠깐, 트래킹.


   식장을 구한다거나 웨딩 촬영, 드레스, 청첩장 등등. 이야기보따리를 풀자면 한도 끝도 없을 이야기이다만. 한 해의 회고 겸 돌이켜보자면 ‘관계’에 대한 생각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MBTI를 맹신하는 편은 아니다만 INFP의 삶을 살고 있는 입장에서 인간관계는 여간 어렵고 껄끄러운 것이 아니다. 살짝 집돌이 성향도 있거니와 워낙 혼자 노는 쪽이 좋아서. 친구가 적다는 사실이 한 번도 불편했던 적이 없었는데. 결혼이 다가올수록 이게 참 부담되었다. 하객이 없으면 뭐 어떠나 싶다가도 그래도 또 너무 없으면 좀 그렇지 않나 싶었다. 근데 KTX로도 두세 시간은 들여야 결혼식장까지 도착하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 와달라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청첩장을 주면서도 겸연쩍고 누구에게 줘야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이해 해주려나 싶었다.


나만 INFP면 억울하니 당신의 MBTI 역시 INFP. 하객 걱정은 그렇게 두 배.


   그뿐이랴. 주례 없는 예식으로 진행하여 어려운 산 하나 덜었다만 여전히 사회나 접수, 축가를 맡아줄 친구가 필요했다. 또한, 먼 곳까지 와주신단 친구나 직장 동료, 아버지 지인 등을 위해서라도 대절 버스를 운행했어야 하는데, 운행 간 보통 인솔자를 세운단다. 와주는 일만으로도 고마운데 버스 탑승자 중 인솔자를 세우고 생면부지의 하객들을 챙기라 해야 하다니. 물론 맨입으로 치를 생각은 없었다만, 도와달라 부탁하는 말을 꺼내는 자체가 고역이었다.


관계.

 

  한 달에 한번 정도 약속을 잡을까 말까 한 삶에 만족하다 일주일에 두세 개씩 약속을 잡고. 겸연쩍게 청첩장을 내밀고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만나는 이마다  반갑고 즐거운 시간이었다만,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평소에 원체 사람을 잘 만나질 않다 보니 ‘이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연락을 드려야 하는가’란 근본적인 질문 자체로 이미 고민이었으니까.


   간만의 연락에도 반갑게 받아주신 당신들. 얼굴을 마주하고 축하를 받았다. 먼 길이래도 괜찮다며 생각지도 못하게 참석을 약속해 주는 이들과 급한 선약이 있다며 진심으로 미안해하던 당신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정말로 난 혼자가 편하고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오늘은 오롯이 혼자 만들어낸 게 맞으려나.


   그들에게 난 어떤 인연이고 관계이기에 주말 중 하루를 택해 청첩장을 받으러 몸소 나와주고 내 일처럼 기뻐해주며 결혼식을 방문해 주었는지. 사회를 봐주기 위해 준비해 주고, 축가를 연습하고. 미리 도착해서 접수처에서 열심히 손님을 받고 축의금을 정리해 주면서. 기꺼이 대절 버스 인솔자를 맡아 고생해 주고, 잠깐 얼굴을 비추기 위해 하루 전 날 미리 내려와 호텔에서 잠을 청하고.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 역시 당연함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만, 완벽한 타인에 가까운 당신들은 어떠한 인연의 발로에 있어 이렇게 또 은혜를 입는지 모르겠다.


   하객으로 참여했을 땐 ‘자리를 빛내주신’이란 표현에 딱히 감흥이 없는 엑스트라였지만. 결혼식의 주연이 되고 보니 한 자리 자리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들의 정성이 느껴졌다. 참석지 않았더라도 카톡 한 줄, 전화 한 통에서 느껴지는 당신들에도 역시 감사했고. 여태껏 ‘관계’에 품고 있던 스스로의 선입견이 스스럼없이 녹아내린 순간이었다.


얽히고 섥힌.


   홀로 나와 스러지는 생애라만. 혼자 살다 얽히고설킨 우리들의 생애는 어떻게 흘러가는 걸까.  혼자일 때가 편할 순 있을지라도, 만남과 인연은 은하수처럼 밤하늘에 박히어 서로의 거리를 느끼고 군집을 이루어 각각의 관계를 밝힌다. 생애 가장 중요했던 한 해를 당신들 덕에 무사히 치러낼 수 있었다.


   올해는 또 이전으로 마음으로 회귀하여 혼자 또는 둘이 편한 생애를 살지라도. 문득 2023년의 나날들을 떠올릴 날이 온다면 당신들의 고마움에 눈이 부시고 말문이 막히지 싶다. 이젠 더 이상 ‘혈혈단신’이란 단어를 이전처럼 편하게는 사용할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둘이서 행복한 삶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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