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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생귄 Jun 17. 2021

현실과 환영 사이의 간극

평행한 두 세계展 5.7~8.8, 성곡미술관


2020.6.16_광화문 근처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이창원 전시에 다녀왔다.



"우리 시대는 보이는 표면은 화려한 데 비해 이것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그 내부는 가려져 있다. 나는 그 현상의 실제 구조가 보이게끔 만들고 싶다. 사람들이 현상의 근원을 알 수 있도록, 작품의 내부 구조를 훤히 드러내는 것이다. 보통 예술가라면 작품의 아름다운 부분만 보여주려 하지만 나의 경우, 작품의 실체가 '고작 이런 거였어'하는 식이다."                           

                                                             -이창원, 전시 리플렛 작가와의 Q&R 중


평행세계_시간을 가로지르는 손, 2013 혹은 평행세계_낙원, 2017


 동굴벽화를 떠올리게 하는 빛의 이미지가 벽에 쏘아올려진다. 흰 벽면들을 가득 채우는 이미지는 무수한 사람의 손, 소와 물고기와 같은 짐승들이다. 이것들은 인류가 예술을 시작한 때를 거슬러 올라가면 자주 언급되는 동굴벽화에서 흔하게 보는 형상이다.


 빛그림에 이끌려 다가선 작품 앞에서 관객은 오려진 다양한 신문기사를 볼 수 있다. 거울 위에 오려진 신문은 핀조명에 의에 반사되고, 거울이 강하게 반사한 이미지가 벽에 프로젝션된다. 보았던 이미지 몇몇은 봉준호와 도널트 프럼프의 손이었고, 인권위원회에 항의하는 용삼참사 유족의 손이었다. 건강한 들소를 상상케했던 이미지는 구제역 때문에 축사에 쓰러진 소 이미지의 반영이었다.

 동굴벽화로 돌아가면, 내가 존재한 현실(reality)을 나의 존재가 사라진 후에도 어떤 다른 존재가 보기엔 환영(illusion)일 수 있을 그림으로 남겨놓은 것은 왜일까? 사라졌지만 그 때에 존재한 현실이 있었다는 것을 증거해 놓고, 그것을 생각하는 다른 존재에게 기억되기를 바라기 때문일까?


 이창원의 <평행세계_시간을 가로지르는 손>, <평행세계_낙원>은 빛의 이미지를 다른 증거물과 함께 제시하며 그 이미지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지, 어디에 위치한 것인지 맥락을 파악하기를 요구한다. 아름다운 환영으로만 남지 않고, 그 이미지가 튀어나온 현실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이다.

 빛에 매료돼 집요하게 탐구했던 그는 빛이 자체로 빚어낼 수 없는 이미지를 투과하고, 반사하는 지지체, 재료들을 다양한 조각의 매체로 실험해 왔다. 다른 작품에서도 실험 과정을 볼 수 있다.




작품전면_(상단)약속의 징표, 2014, (하단) 무제, 2014
작품후면_(상단)약속의 징표, 2014, (하단) 무제, 2014














(작품전면)기여화광, 2016
(작품후면)기여화광, 2016
(detail)기여화광, 2016, 레코드판처럼 돌아가는 광고지 원판을 비추고 있는 조명

 <기여화광>은 아파트 분양, 입시학원, 쇼핑몰 광고 등 색색의 전단지를 잘라서 턴테이블에 올릴 레코드판처럼 만들어 턴테이블 위에 올리고, 움직이는 광고판에 핀조명을 쏘아 반사도는 이미지를 활용한 작업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산능성이 실루엣 뒤로 은은하지만 형형색색의 빛깔이 눈을 사로잡는다.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떠올리게 하거나, 지금 마주하는 시공간을 내 내면의 추상의 세계로 이끌 것만 같은 풍경. 하지만 이내 빛이 주는 황홀함은 사라지고 도시의 보도블록 위에도 흔히 뿌려진 광고 전단의 파편이었음을 알게 되는 관객의 기분은 그야말로 갑자기 '맨땅에 다이빙'하는 심정이 된다. 작가의 말이 맞아들어간다. '고작 이거였어?'의 심정이다.

 다양한 광고문구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당 위에 분당'이라는 분양 광고지가 기억에 남는다. 영화 <아수라>에서 박성배(황정민 분) 시장이 "천당 위에 분당, 분당 위에 안남, 부자동네"라며 재개발 사업을 홍보하던 명대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빛의 환영은 전단지라는 현실의 맨살을 느끼게 하고, 그 전단지는 다시 다른 영화의 환영을 부르고, 뉴스에서 재건축, 재개발을 둘러싼 잡음 많은 현실을 소환한다. 다양한 차원의 현실과 환영을 분주히 오가면서 전시실을 나왔다.


아이디어 스케치, 드로잉, 사진기록, 1999-2021 중
아이디어 스케치, 드로잉, 사진기록, 1999-2021 중


 이창원의 이번 전시는 20여년 간의 작품 궤적을 따라갈 수 있는 것으로 성곡미술관에 의하면 일종의 중간회고전이다. 설명한 것처럼 '맨땅에 다이빙'하는 느낌의 작업만 있는 게 아니다. 어떻게 그가 빛을 다루게 되었는지 2000년 초부터 해 온 거울판 반사를 활용한 아이의 장난같은 실험들, 물감으로 그리고 프린트 해 커팅한 이미지를 판넬에 올려 반사광과 그늘짐을 이용한 작품들, 커피와 찻잎을 재료로 해 다른 종류의 반사광 느낌을 주면서도 향까지 있는 이미지가 되는 작품들도 있다.


자화상, 2003, 잉크젯프린트, 나무, 조명
(detail)자화상, 2003, 확대해서 깨진 픽셀들이 보일 정도의 열화한 이미지 띠들이다.


 특히 철제나 나무 판넬을 촘촘히 짜서 만든 프레임에 이미지를 얹는 초상 시리즈 중 눈에 띄는 것은 <자화상>이다. 가까이서 보면 정육각의 픽셀이 보이는 띠들이 판넬마다 붙여져 있는 열화한 이미지다. 줄줄이 자른 이미지 띠를 나무살 사이로 붙이면 수직의 흰판에 반영되는 빛이랄 수도, 그림자랄 수도 있는 빛의 환영이 더욱 그럴싸해 보이는 초상을 만든다. 흰 배경과 얼굴이 클로즈업된 증명사진의 형식을 취하되, 은은하게 빛나는 광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보고있자면 이게 정말 작가의 얼굴이고, 여기에 그의 분위기가 담겨있구나 싶은 생각에 이른다.

<남자와 화분>, 2003, 2021재제작, 나무 판넬 위에 말린 찻잎을 올려 만든 작품.

 2전시실에선 커피가루와 찻잎을 부착하지 않아 일종의 설치(그리고 전시마다 철거를 반복할) 작품을 보게 되는데,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마스크를 뚫고 오는 커피향을 맡을 수 있다. 커피가루를 사용해 만든 대작 <대한제국의 꿈>(2019, 400*800)보다는 우려내지 않은 말린 찻잎으로 만든 <남자와 화분>쪽에 마음을 뺐겼다. 말린 찻잎의 형태는 커피가루보다 일정하지 않아서 찻잎 자체의 형태나 반사광이 좀 더 거칠지만, 차라는 특성과 달큰하면서도 구수한 향 때문에 그게 또 어딘가 누긋하게 느껴지는 맛이 있어서다. 차를 재배하고 말리고 덖는 과정, 누군가와 차를 나누기, 우려진 차가 뱃 속에 들어가면 속부터 올라오는 차향 여운 등 '차'라는 매체 자체가 주는 여러가지의 관계성이 머릿 속에서 펼쳐지기 때문이었다.


 여러가지 드로잉과 작가노트가 전시되어 20여년에 걸친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 볼 수 있다는 점, 그 결과물이 실제로 전시장에 다수 있어서 그 행로가 점이 선으로 연결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던 전시였다. 작가에게서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 여전히 어떤 종류의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시대정신을 발견하고, 작품을 제작하고 싶은 마음을 볼 수 있었다.(시대정신이란 말은 오늘날 참 어색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 단어가 떠올랐다.)


 빛의 선명하지 않은 리플렉션을 이미지로 구현했으므로, 결국 이 이미지들은 지지체들에 의해 조각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런 작품들은 사진으로 담기엔 감상과 이해하기가 역부족이고 직접 가서 봐야한다. 인스타그램에 클로즈업으로 업로드 돼, 어느 정도 작품 분위기를 알겠다 싶은 디지털 이미지의 사진이나 회화 전시와는 다르게 꼭 전시장에 가서 봐야한다.




. 전시장에 구현된 형태는 아니었으나 처음 이미지의 작품처럼 플라스틱 판과 조명을 이용한   없는 별자리를 만드는 작업, 신화적인 작업을 만들겠다는 머릿  디세뇨일 드로잉들이 마음을 끌었다. <패러럴_스타즈> 현되어 있는 작업인지, 앞으로 있을 작업인지 나중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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