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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young in season Oct 07. 2020

배를 구웠다.

황금배라는 이름의 가을 시즈닝

추석 직전 농원에서 한창 수확하는 배의 이름은 '황금'



그런데 이 '황금배'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유난히 배의 껍질 빛깔이 옅다 못해 푸르고, 크기도 일반 배보다 작은 것이 특징. 언젠가부터 차례상의 제수로 오르는 과일의 대표가 되다 보니 유독 배는 크기로 값을 매겨왔고, 상대적으로 작은 배는 가치가 떨어져 시장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맛도 우리의 상상과는 조금 다르다. 물이 많고 시원한 것은 동일하지만, 배의 대표적인 석질(서걱이는 거친 조직)이 거의 없고 맛도 새콤 달콤한 것이 특징이다. 단맛이 강조되는 신고배와 달리, 사과 같은 맛이 나는 배라고도 한다. 시중에 흔하게 유통되지 않고, 저장성이 적어 수확기를 빼면 구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도 만약 부모님 과수원에 심겨 있지 않았다면, 이 '황금배'의 맛은 평생 알지 못했을 것이다.


농원에서 배가 올라오면, 바로 본격적인 가을 워크샵이 시작되어야만 한다. 수확철인 9월 중순부터는 나오는 과일의 종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문경에서는 생오미자가 9월 15일 전후부터 9월 말까지, 제주에서도 9월부터는 영귤 수확이 시작된다. 이 영귤은 청귤(어린 감귤)이 아니라 금귤만 한 크기가 다 자란 '영귤(스다치)'이라는 품종의 푸른 귤이다. 오히려 노랗게 익기 전에 따서 푸를 때 가공해서 먹는 과실이다. 이런 열매들은 자신의 맛이 독하고 진하다 보니, 청의 형태로 우려내어 먹기 마련이다. 이때, 시원하고 우아한 단 맛을 더해주기 위해서 이 황금배를 넣고 함께 담가준다. 



특히 오미자나 영귤처럼 산미가 강한 과일의 경우, 황금배 자체가 가지고 있는 산미가 함께 어우러지며 더욱 자연스러운 어울림을 맛볼 수 있다.


다 같이 한 차례 청을 담그고 나면 쉬이 시장기가 돈다. 할 때는 잘 모르다가도, 한 병 담아내기를 마치고 나면 훅 지치기 마련이다.


이럴 땐, 오븐 팬 하나에 양파와 배를 잘라 구워보자.



소금, 후추, 올리브유만 뿌려 오븐에 삼십 분가량 넣어 놓으면 표면이 갈색으로 변하며 먹음직스럽게 구워진다. 안 그래도 단 배를 구웠으니 단 맛은 두배로 응축되고, 묘하게 그슬린 맛이 겹치니 감칠맛이 진해진다.



오븐에서 배가 익는 냄새가 날 때쯤, 후라이팬을 달궈 스테이크용 소고기를 겉면만 굽는다. 굽기 직전에 고기 표면에 하귤 소금을 발라 밑간을 해 주고, 버터와 올리브유를 함께 넣은 팬에서 튀기듯이 앞 뒤를 뒤집어 구워준다. 겉면에 전부 갈색빛이 돌면 양파와 배를 구워 놓은 오븐 팬에 함께 올리고 5분 정도 구워내면 완성.



고기를 자르면 핑크빛 도는 사랑스러운 단면을 볼 수 있는 미디엄 레어. 구워진 배 한쪽과 양파를 올려 먹기 시작하면, 언제 청을 담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꽉 채워 구워낸 오븐 팬이 텅 비어갈 때쯤이면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 배는 어떻게 구웠는가에 대해서.



답은 맛있는 배를 오븐에서 구웠을 뿐이다.


* 만약 추석이 지난 후, 집에 맛없는 배가 남는다면, 이렇게 구워도 좋다. 

단, 약간의 꿀이나 설탕을 둘러주면 훨씬 맛있게 먹을 수 있다.




Grilled Pear Steak Plate

구운 배 스테이크 플레이트


먹다 먹다 남았다면 가을에는 배를 구워보자. 오븐에 구운 배는 표면이 캐러멜 라이즈 되면서 달짝지근하게 불에 그슬린 향기를 갖게 되고, 수분이 빠진 만큼 단맛이 농축되어 생 배와는 다른 매력이 가득하다.

식감 또한 부드러워지는데 이 구운 배가 소고기 스테이크와 탁월한 궁합을 자랑한다.


Ingredient

배 1개

양파 1개

스테이크용 소고기 250g 내외

버터 1 tbsp

올리브유 2 tbsp

배와 양파 밑간: 올리브 오일 2 tbsp, 소금 2꼬집, 후추 2꼬집

고기 밑간: 고기 한 덩어리당 하귤 소금 1 tsp씩


Method

1. 배는 가운데를 잘라 씨를 뺀 다음 껍질 째 웨지 모양으로 12 등분한다.

2. 양파는 껍질을 벗겨 웨지 모양으로 8 등분으로 잘라준다.

3. 오븐 팬에 종이 포일을 깔고 배와 양파를 올린 다음 소금과 후추를 뿌려주고 올리브 오일을 넉넉히 둘러준다.

4. 180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30분간 굽는데 20분쯤 지나면 꺼내서 배를 뒤집어준다.

5. 두툼한 스테이크용 고기의 양면에 하귤 소금을 발라 밑간을 해 준다.

6. 센 불에 프라이팬을 달군 다음 버터와 올리브유를 넣고, 하귤 소금을 바른 스테이크 고기를 올린다.

7. 양면이 갈색빛이 될 때까지 튀기듯 굽고, 옆면까지 갈색으로 익으면 불을 끈다.

9. 30분간 구워진 배와 양파가 든 오븐 팬에 스테이크를 올린다.

10. 프라이팬에 남은 육즙을 오븐 팬에 골고루 둘러주고 180도에서 5분간 구워준다.(미디엄 레어 기준)

11. 오븐에서 꺼내 소고기를 먹기 좋은 두께로 썰고, 구워진 배와 양파를 곁들여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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