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이육 Feb 18. 2023

친한 동생이 취직을 했다고 한다

 친한 동생이 취직을 했다고 전화를 해왔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단기 인턴으로 잠깐 일하는 동안 인연을 맺은 친구다. 처음 만난 지 벌써 2년 반이 넘은 인간관계. 그 시간 동안 나는 같은 회사에서 두 번의 이동을 경험했다. 친구는 지방의 작은 회사를 다니며 틈틈이 이직 공부를 했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메이저 공기업에 합격했다. 여유시간이 별로 없이 연수원에 입소해야 한다, 그래도 합격 소식을 나에게 먼저 알리고 싶었다, 그런 이야기를 건네오는 친구에게 최대한 빨리 만나자고 말을 건넸고, 친구는 다음날 점심 내가 근무하는 깡시골을 찾아오는 것으로 대답하였다. 

 시골에서 도시로 가는 것보다 시골에서 시골로 찾아오는 길이 더 고된 법인데, 그 길을 헤치고 친한 동생이 찾아왔다. 반차를 내고 20분 거리의 항구로 향했다. 이 깡시골까지 찾아왔는데 그래도 맛있는 걸 먹여야 할 것 같아서, 장어탕 한 그릇을 사줬다. 전날 술을 많이 마셔서 속풀이로 딱인 것 같다며 친구는 맛있게 한 그릇을 비웠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항구 앞을 몇 바퀴 산책했다. 그러고 나서는 이런 시골에 어울리지 않는 카페에 앉아 아인슈페너를 한 잔씩 시키고는 앉았다. 그러는 동안 두서없는, 시답잖은, 내가 좋아하는 그런 대화들을 나눴다. 직장생활과 병행한 취준이 힘에 부치기 직전이었는데 취업이 돼서 정말 다행이라는 말, 합격발표가 나고 평소 읽고 싶던 책을 들고 카페에 가서 세 시간 정도 책을 읽었는데 뭔가 후련하고 쫓기는 것 없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이야기, 이제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처럼 이상한 허드렛일은 안 해도 된다는 이야기 등, 여러 모로 훈훈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 후에는 친구의 여러 고민들을 들었다. 정말 힘들게 들어간 직장인데 마음에 안 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기존 직장을 다니면서 예전처럼 - 인턴 시절처럼 - 손익을 따지지 않고 일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손해 보기 싫은 자신만 남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여전히 낯을 많이 가리는 자신이 연수원에 입소해서는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지, 4년여의 알량한 경력을 가진 나 스스로의 개똥철학을 두서없이 풀어놓았고, 친구는 경청했다. 주제 없는 개똥철학을 풀어도 묵묵히 들어주는 상대가 있다는 건 좋은 일 같다.

 몸 조심히 연수원 다녀오라고 작별인사를 했다. 집에 도착해서는 너의 합격 소식도, 두서없는 대화도 모두 좋았고, 발령지에 배정을 받게 되면 다시 만나자고 메세지를 보냈다. 어쨌든 슬플 일만 남은 삶이지만, 그래도 좋은 소식이 들릴 여지는 여전히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