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트렌드가 된 스페인 음식과 지중해 식단 그리고 스페인 의료제도
마늘과 고춧가루를 연상케 하는 빨간 파프리카 가루, 올리브기름에 보글보글 볶는 모습만 보면 영락없이 한국의 고추기름이나 고추로 하는 양념 볶음을 생각나게 한다. 그런데 이 양념은 스페인 요리의 기본이 되는 요리의 첫 번째 단계, 소프리또(sofrito)이다. (물론 생채소를 이용한 샐러드 외의 음식 조리법으로 말하자면 말이다.)
올리브기름에 마늘과 파프리카 가루를 자글자글 볶다가 그 위에 당근, 호박, 토마토 등의 다른 채소를 넣어 볶은 다음, 육수를 붓고, 끓는 육수에 쌀을 넣어 익히는 대표적인 요리가 우리가 알고 있는 파에야(paella)이다. 채소를 넣으면 채소 파에야, 해물을 넣으면 해물 파에야, 고기를 넣으면 고기 파에야.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파에야가 스페인 사람들의 입맛을 대변한다.
세계인들도 인정하는 스페인 요리. 현대 음식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는 스페인 음식에는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 스페인 현지인들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스페인 음식, 지중해 음식’, 그 자긍심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스페인은 지중해의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지역적 특성으로 다양한 식재료가 난다. 지중해에서 나는 해산물, 생선에서부터 내륙의 육류 저장 음식과 가공 음식까지 다채롭다. 게다가 유럽의 음식 저장창고라고 할 수 있는 스페인 지중해 연안에는 다양한 채소와, 열대와 온대에 아우르는 과일이 난다. 참고로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Islas Canarias)는 아프리카 서사하라와 같은 위도에 있는 크고 작은 7개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이다. 이곳에서는 열대 지방에서 나는 바나나가 유명하고, 스페인 동남부 지방에서는 망고, 아보카도, 키위 등의 열대열매와 동시에 온대에서 나는 사과, 감, 복숭아, 수박, 포도, 수박, 멜론, 딸기 등이 계절이 바뀌는 시기마다 다양하게 난다. 또한 여름이 덥고 건조하여 오렌지와 귤의 생산지로 유명하기도 하다.
이런 다양한 식재료 덕분인지 현대 스페인은 나름대로 미식가의 나라라고 정평이 나 있다. 19세기에는 프랑스 음식이 세계 미식의 선구자로 떠올랐다면 현대는 스페인 음식이 대세다. 2018년 세계 50대 최고 레스토랑 순위에도 스페인은 최상위를 차지하며 여전히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참조: http://www.theworlds50best.com) 또한, 이 순위 안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도 빠지지 않고 매년 등장하는데, 이들 나라의 공통된 특징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중해에서 나는 식재료를 이용해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중해식 식단, 세계 인류 문화유산
아니, 음식도 인류 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된다고? 처음에 이 소식을 접했을 때는 참 특이하다 싶었다. 유네스코가 음식문화를 무형유산에 처음으로 등재시킨 것은 2010년으로 '프랑스 미식 문화'와 '지중해식 식단', '멕시코의 전통요리', 북크로아티아의 '생강빵 제조기술' 이 동시에 올랐다.
세계인이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로 음식 문화가 포함된다는 게 그때까지는 생소했다. 하지만, 그것을 지키고 재해석하며 발전시켜야 할 목적은 인류의 유산이라는 것. 그 당시 나에게 생소했지만 그 가치는 짚고 넘어가면 좋을 듯하다.
일단 지중해 음식(Dieta mediterranea)은 말 그대로 지중해 사람들의 음식으로 특히 포르투갈, 스페인, 남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몰타, 모로코, 튀니지 등의 나라에서 기본적으로 먹는 음식 유형을 이상화(理想化)하여 일정한 형태의 음식 유형으로 통합한 식이요법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 지중해 식이요법 혹은 식단을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은 1948년 역학(疫學) 전문가인 Leland G. Allbaugh에 의해서다. 그는 크레타 섬 주민들 삶을 관찰하며 미국과 그리스 음식의 다른 점을 과학적으로 접근하였고, 2차 세계대전 후에는 미국의 생리학자(生理學) Ancel Keys는 7개국(이탈리아,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네덜란드, 핀란드, 미국, 일본)을 상대로 관상 동맥 심장 질환, 혈중 콜레스테롤 등을 비교 분석하였다. 그가 내린 결론은 남유럽과 일본의 시골에서의 식단이 건강한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이었다. 그 이후, 이 지중해식 라이프 스타일을 담은 식단, 혹은 지중해 식이요법이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중해 연안 나라의 공통된 요소는 무엇일까?
일단, 지중해식 식단은 지중해의 풍경과 음식, 식탁 등을 두루 떠올릴 수 있다. 신선한 채소와 농작물의 수확, 병조림이나 보관하는 방법 등의 전통을 바탕으로 만든 음식 유형 및 이 모든 기술과 지식 등을 일컫는다.
지중해 연안의 기후나 날씨 덕으로 이곳에서는 식물이 아주 잘 자라준다. 실제로 발렌시아(Valencia)에는 오르따(horta)라는 큰 평야가 있는데, 대부분 신선한 채소를 심는 경작지로 일 년 이모작이 가능하다. 한 해에 두 번 양파를 심고 수확할 수 있다니 다른 채소는 말하지 않아도 쉽게 상상할 수 있겠다. 그만큼 이곳 사람들의 채소 소비는 빠르고 매일 새로운 식재료를 제때 공급한다는 소리이다.
지중해 식단의 또 하나의 특징은 조리하는 경우에 동물성 기름보다는 식물성 기름인 올리브기름을 더 애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올리브기름은 이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식재료다. 올리브 생산지도 지중해 지방이 최대 생산지이다. 스페인이 세계 총생산량의 44%를 이루고, 이탈리아 및 그리스, 터키, 시리아 등이 그 뒤를 잇는다. 한국에서도 요즘은 가정에서 많은 이들이 올리브기름을 사용한다고 들었다. 올리브유는 심장병과 암 예방에 도움이 되는 올레산(oleic acid) 성분이 80% 정도가 있고 산화가 잘 되는 리놀렌산(linoleic acid) 함량이 적다고 한다. 그래서 아주 건강한 기름이다. 실제로 이곳 사람들의 올리브 섭취 모습을 보면, 아침 토스트에 소금을 솔솔 뿌리고 올리브기름을 한 번 둘러 그렇게 간단하게 먹기도 하고, 튀김으로도 올리브기름을 사용하고, 흰밥을 했을 때도 올리브기름을 둘러 먹기도 한다.
그만큼 이들에게는 올리브기름은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식재료이다. 올리브기름에서부터 올리브 열매 절임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올리브를 이용하는데 다방면에서 사용되고 있어 없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신이 내린 아주 유용한 선물이 아닌가 싶다.
또한, 생선도 한몫한다. 지중해 연안의 남유럽과 북아프리카, 터키 등지의 주요 식단에는 정어리, 참치, 안초비 등의 생선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포도주 역시 빠질 수 없다. 남유럽은 북유럽에 비해 맥주보다 포도주를 더 선호한다. 포도주 세계 생산량을 자랑하는 스페인과 프랑스, 그 밖의 지중해 연안 나라들도 이 포도주는 식사 시간에 빠질 수 없는 음료다. 스페인 현지인들은 이 포도주가 혈액순환에 큰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으며 매일 한 잔씩 마시면 좋다고 한다.
지중해 음식의 또 하나의 특징은 제철 음식이다. 여름에는 신선한 채소를, 겨울에는 콩과 시리얼 종류, 추운 계절에는 높은 열량의 육류까지 다양하게 섭취하는 장점이 있다. 북유럽보다 식물성 음식을 많이 섭취하고 버터 양념이 아닌, 자연스러운 자연의 맛을 더 중요시하므로 소금과 식초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저장을 위한 향신료도 아주 중요한 식재료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여 조리해 먹기 때문에 건강한 음식이라는 개념으로 전 세계인들이 함께 지키고 보존할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고 보면 되겠다.
2019년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나라 블룸버그 글로벌 건강 지수(Bloomberg Global Health Index)의 결과를 보면 스페인이 1위, 그리고 이탈리아가 2위에 올랐다. 많은 이들이 왜 이들 나라 사람들은 건강할까? 궁금해한다.
지중해의 스트레스를 완화해주는 좋은 날씨, 올리브기름, 신선한 채소, 생선, 육류 등의 골고른 영양 균형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많은 이들이 그 원인을 분석한다. 물론, 그밖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의료체계도 한 몫한다.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도 참 훌륭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체계를 갖추고 있는 스페인 시스템을 여기서 한번 짧게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스페인의 의료제도
스페인의 의료체계는 공공의료제로 전 국민에게 무상으로 병원 문턱이 열려있다. 1차 가정의, 2차 진료소, 3차 특별 병원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국민이 내는 세금이 모든 이에게 혜택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불편한 점도 있다. 하지만 국민 대부분 대단히 큰 만족도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의료제가 최고라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처럼 스페인 사람들도 스페인 의료체계를 세계에서 최고라고 자부한다. 단순한 질병이나 증세 호전 치료는 오래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도 있지만 큰 병이나 수술, 응급 상황 등에서는 무상으로 빠르게 치료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응급 헬기 구조나 응급 구조차도 국가 부담이라 어디서 어떻게 다쳐도 병원비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스페인의 병원은 공립 및 국립 병원이 대부분이며, 의사와 간호사는 공무원이다.
약품 구입에서도 마찬가지다. 국가나 주 정부에서 지정된 약품의 40-60%, 어린이의 경우 100%까지도 지원해주기 때문에 약값 때문에 큰 스트레스가 없어 보인다. 한마디로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다는 스트레스는 없다.
또한, 스페인은 세계에서 가장 장기 기증이 가장 많은 나라다. 모든 국민이 예비 장기 기증자로 지정된 opt-out 시스템 때문이다. 사망 시 가족의 동의가 없다면 누구나 장기 기증자이다. (실제로는 병원에서 환자와 다양한 소통을 하면서 장기 기증의 동의를 끌어내고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추정의 동의를 기반한 제도는 1979년부터 시행되었으며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서 관리되고 있다. 국가에서 엄격하게 장기를 관리하고 필요한 환자에게 (공공의료제로) 제공하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장기를 팔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다. 만약 살아있는 장기 기증자가 기증하겠다고 나서도 기증자의 건강과 심리 상태 등을 법관의 심판 하에, 의사의 견해 하에 여러 단계를 거쳐 적법성을 확인한 후에야 가능하다.
이렇듯 스페인 사람들은 안정된 의료 제도 위에 건강한 음식과 좋은 기후, 낙천적인 국민성 등으로 하여 건강한 것이 아닐까 싶다.
다시 음식으로 돌아와......
지중해의 전형적인 식사 풍경은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햇살 좋은 날, 야외에서 식탁을 펼치고 대규모로 식사하는 모습이다. 식사 전통이라고 할까? 이들에게 ‘함께 식사하는 문화’는 굉장히 중요하다. 식사를 같이하면서 사회적 관계를 돈독히 하고, 식사를 통해 친구와 가족의 정을 나눈다. 따지고 보면 식사가 일상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에 음식을 나누면서 관계를 유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사 시간도 여유롭다. 식사를 하면서 그동안 못 해온 소통도 하고, 정보도 교환하는 이들이 무척 부럽다. 한국은 일인 가족이라는 신개념의 용어가 대중적으로 많이 사용되는데, 사람 사이의 소통을 중시하는 이곳의 밥 먹는 문화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소속감을 더하기 때문에 정신 건강에는 최고가 아닌가 싶다.
물론, 건강의 요소는 아주 다양하다. 그래서 ‘스페인식’이라는 단일한 요소를 고집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분명 스페인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우리가 살펴보고 배울 수 있는 부분이다. GDP가 비슷하다고, 지금은 추월했다고 가끔 스페인이 우리보다 못하다는 선입견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요소는 무엇인지, 하나하나 우리가 고쳐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그들에게서 어떤 답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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