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퍼의 기원은 두 지역이다. 젠트리 계급과 왕족의 실내화로 개발된 영국과 동네 사람들을 위한 편안한 활동화로 개발된 노르웨이.웃기게도 한쪽에선 지배계층을 한쪽에선 피지배계층을 위한 신발로 같은 신발이 개발 되었던 것.
귀족과 왕족의 신발로 시작된 영국의 경우 1874년 젠트리 계급과 왕족을 위한 실내화로 처음 슬립온 슈즈가 개발되었는데, 이후에 조지 6세가 Raymond Lewis Wildsmith의 신발을 신으면서 런던에서 유명세를 타면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물론, 이 유명세를 눈여겨본 런던 내의 다른 신발 공방에서 이를 이용하고자, 같은 모델을 제작하며 로퍼가 아닌 해로우The Harrow 또는 베네티안 슬립온 슈즈Venetian Slip-on shoes라는 이름으로 팔기 시작했다.
브루노 말리에서 나온 베네티안 슬립온 로퍼
이와는 다르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로퍼, 특히 페니 로퍼는 노르웨이의 한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인 Aurland 출신인 Nils Gregoriusson Tveranger가 제작한 Aurland shoe가 그 주인공. 13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신발 제작을 배우고 20살에 자신의 고향 노르웨이의 Aruland로 귀국한 그는 북미 원주민의 모카신에서 영감을 얻어 이 Aurland Shoe를 만들어내었다.
개발한지 얼마 안되어서 Tveranger의 Aurland shoes는 빠르게 동네 특산품이 되었고, 1930년도 에스콰이어지에까지 이 Aurland shoe를 신은 노르웨이의 농부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올라갈 정도의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이 사진 이후로 사냥과 낚시를 위한 작은 관광 마을에 불과했던 Aurland는 어느새 '노르웨이 모카신Norwegian Moccasins'이라는 이름으로 Aurland shoes를 미국으로 수출하는 곳이 되었다.
누가 봐도 한적한 시골마을인 이곳이 Aurland(출처: Tripadviser)
하지만, 이 노르웨이 모카신을 수입만 하던 미국에서 1930년도부터 해당 신발을 자체적으로 제작하고자 했다. 이를 처음 시작했던 지역이 뉴햄프셔. 여기에서 처음 '로퍼'(게으름뱅이라는 뜻의 Loafer와 동일하다. 끈을 묶을 필요 없이 신는 신발이라 끈을 묶는 수고조차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를 위한 신발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라는 이름을 붙여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후 1934년에 지금도 유명한 G.H.Bass사에서 Weejun(Norwegian의 wegian에서 따온 이름이다.)이라는 이름 아래에 현재의 페니 로퍼를 만들어내기 한다.
Weejun의 가장 기본적인 로퍼, Larson
이 페니 로퍼는 Aurland shoes대신 순식간에 미 전역에 유행을 불러왔고 남자라면 시원하고 캐주얼한 여름을 나기 위해 꼭 한켤례는 지니고 있어야 할 필수적인 신발이 되었다. (정작 노르웨이가 있는 유럽에서는 페니로퍼가 크게 유행을 끌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1950년도부터 로퍼의 고급화가 시작되며 편안한 캐주얼 신발이 아닌 정장에 어울리는 '구두'로 취급되다가, 1966년에 등장한 구찌의 홀스빗 로퍼(Horsebit Loafer)를 할리우드 스타들과 월스트리트의 회사원들이 착용하기 시작하면서 로퍼는 단정한 구두와 편안한 캐주얼 사이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그런 신발이 되었다.
미묘한 차이가 만들어내는 분위기
노르웨이의 한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신발은 이제 남성 제화의 빠질 수 없는 하나의 스타일이 되었고, 그만큼 쉽게 보거나 구매할 수 있다. 사실 로퍼 자체가 너무나 익숙해진 요즘, 어떤 하나의 스타일을 신으라는 추천 보다, 평상시의 복장이 뭔지 물어보고 그 복장에 어울리는 로퍼를 추천하는 것이 옳다. 당신의 스타일에 따라 페니 로퍼를 신어도 되고, 태슬이 달린 로퍼를 신어도 되며 혹은 구찌의 시그니쳐 홀스빗 로퍼를 신어도 상관없으니까. 다만 로퍼의 생김새에 따라 단정해 보이거나 휴가를 떠나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데, 이 기준은로퍼의 윗부분이 얼마나 착용자의 발등을 덮느냐(이 부분을 vamp라고 부른다)와 라스트가 얼마나 날렵한가에 따라 달라진다.쉽게 말해, 로퍼의 전체적인 실루엣이 본래의 구두와 비슷해질수록 단정해진다는 것.
물론 전체적인 실루엣뿐만 아니라 로퍼가 지니고 있는 디테일에 따른 분위기의 차이 역시 존재한다. 위에서 말한 Weejun의 페니 로퍼가 아이비리그 학생들이 착용하며 학생의 가벼운 이미지가 강하다면, 태슬 로퍼는 본디 태슬이 달린 구두에서 시작되어 조금 더 단정한 이미지가 더 강한 것처럼 로퍼를 위에 첨가된 디테일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곤 한다. 그래서 크게 3가지, 페니(Penny), 태슬(Tassel) 그리고 벨지안(Belgian)으로 나눠서 알아보고 해당 디테일이 어울리는 스타일을 정리하겠다.
왼쪽부터 G.H.BASS, Alden, Journey West의 로퍼
아이비리그의 캐주얼, 페니 로퍼(Penny Loafer)
G. H. Bass의 Weejun에서 제작한 로퍼에서 시작된 페니 로퍼는 위에서 말한 대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로퍼'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본래 로퍼에서 페니 로퍼로 바뀐 이유는 다양한데, 아이비리그의 학생들이 당시 공중전화기의 통화 가격이 2 페니여서 양쪽에 페니를 넣고 다녔던 것에 유래했다는 것과 밴드 가운데에 있는 공간에 페니를 넣으면서 자신의 발걸음에 행운을 빌었다는 것. 유래가 무엇이 되었든, 신발의 이 밴드 사이에 페니를 넣음으로써 Aurland Shoes, Loafer는 그 본래의 이름을 벗어나 Penny Lofaer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건 변함이 없다. 이름과는 별도로, 로퍼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구두 중 가장 오래된 스타일이기에 가장 클래식하지만, 그 기원이 노르웨이의 노동계층이 신었던 편안한 신발이라는 것과 아이비리그 학생들이 편하게 자주 신었던 모델이라는 그 특성상 캐주얼함을 조금 더 갖고 있다.
아이비리그 청년들의 페니 로퍼 착용의 예. (출처: Ivy Style)
점점 옷의 격식이 사라지고 가벼워지는 현재의 트렌드와 가장 어울리고, 또 누구나 쉽게 시도할 수 있는 가벼운 로퍼 중 하나인 페니 로퍼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추천할 만한 신발이다. 청바지, 슬랙스, 반바지 가리지 않고 다 어울리는 제품이니까. 다만 타이까지 메는 정장을 입었을 경우엔 페니 로퍼는 최대한 지양하자. 날렵하고 발등까지 올라오는 기성 구두와 비슷한 실루엣의 페니 로퍼라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닌 둥그런 라스트의 페니 로퍼라면 타이와 함께한 정장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신사의 방울, 태슬 로퍼(Tassel Loafer)
패션 브랜드부터 구두 공방까지, 당시에 존재하는 남성 제화와 관련된 모든 곳에서 20세기에 등장한 이 새로운 구두인 로퍼에 다양한 시도를 했었고 실패와 성공을 거듭했다. 태슬 로퍼 역시 이 시도의 성공작 중 하나인데, 여기엔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배우의 입맛이 함께 들어가 있다.
현재의 태슬 로퍼를 만들어낸 장본인, 헝가리 출신의 할리우드 배우 폴 루커스(Paul Lukas/출처: 위키피디아)
헝가리 출신의 배우, 폴 루커스는 자신에게 1943년 오스카상을 쥐어준 라인강의 감시(Watch on the Rhine)를 독일에서 촬영하는 동안 자신의 마음에 드는 구두를 하나 구하게 된다. 그 구두는 단순히 끈이 있는 신사화였으나 구두끈 끝에 태슬이 달려있는 모델이었다. 이 구두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제작하고 싶었던 그는 뉴욕에 있는 Farkas & Kovacs라는 구두 공방에 가져가 의뢰를 맡겼는데, 아쉽게도 결과물은 자신의 발에 맞지 않았고 그는 이를 더 잘 만들어보고자 본래 신발의 왼쪽은 뉴욕의 Lefcourt, 오른쪽은 로스앤젤레스의 Morris Shoemakers에 맡기게 된다. (당시에도 협업을 하던 두 곳은 합쳐져 현재 북미 최고의 구두 제조사 Alden이 된다.) 이 두 곳은 본래 신발이 갖고 있는 끈을 없애고 당시 한창 미국 국내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던 Weejun의 로퍼와 합쳐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내는데 그 모델이 다름 아닌 현재의 태슬 로퍼다.
1950년에 Lefcourt & Morris의 신제품으로 등장한 태슬 로퍼는 당시 유행하던 페니 로퍼에 비해 구두와 더 가까운 실루엣과 모습으로, 조금 더 단정한 로퍼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페니 로퍼보다 조금 더 단정하고 날렵한 실루엣, 그리고 무엇보다 신상이라는 특성에 젊은 아이비리그 학생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냈고 단 몇 년 만에 Lefcourt & Morris(현재의 Alden)는 이 태슬 로퍼를 다양한 가죽으로 양산하며 현재의 태슬 로퍼의 자리를 이룩하게 된다.
Alden사의 Original Tassel Loafer (출처: Brogueshop)
태슬 로퍼의 본래의 원형이 브로그 슈즈였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태슬 로퍼는 페니 로퍼보다 약간 더 단정하고 예의 바른 느낌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장 혹은 재킷과 슬랙스의 조합 같은 단정한 옷이나 혹은 예의를 갖춰야 하는 곳에 끈이 있는 구두가 아닌 로퍼를 신고 싶다면 태슬 로퍼를 신어보자. 페니 로퍼가 주지 못했던 단정한 느낌과 차분한 느낌 모두를 당신에게 쥐어줄 것이다.
벨기에에서 날아온 편안함, 벨지안 로퍼(Belgian Loafer)
벨지안 로퍼의 시작은 벨기에 출신의 미국 패션 사업가 앙리 윌스 벤델(Henri Wills Bendel)의 조카 앙리 벤델(Henri Bendel)로 부터 시작되었다. (오타가 아닌 같은 이름이다.) 미국 여성들에게 샤넬을 가장 처음 소개해준 사업가의 조카, 앙리 벤델은 삼촌의 사업을 물려받으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내고자 했다. 그는 이를 하기 위해 벨기에의 이제헴(Izegem)이라는 도시에 300년간 신발을 제작해온 신발 공장 두 곳을 인수하고 여기서 명인들과 함께 전통적인 신발 제작법, Turnshoes 공법을 활용한 신발을 개발했다. 그래서 나온 신발이 다름 아닌 '벨기에의 로퍼'. Belgian Loafer다.
Belgian Loafer의 모습(출처: Belgian shoes)
타고난 사업가였던 조카 앙리 벤델은 이 벨기에 신발을 자신의 삼촌이 세운 명품 판매 가게에 진열하여 뉴욕 내에 위치한 부자들에게 판매하기 시작한다. 워낙 자신들만의 좁은 사회가 촘촘하게 형성되어 있던 이 부자들 사이에서 벤델의 새로운 로퍼는 엄청난 유행을 불러일으켰고, 켤례당 400달러 이상 하는 이 신발을 가죽 별로 갖고 있는 사람이 나올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다. (물론 이 유행은 미국 그것도 뉴욕 내에 거주하는 부자들 사이에서의 유행이었기에 크게 대중에게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
이 정도는 쉽게 가능하다. (출처: Chicmi)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 인터넷 상에 Pitti Uomo(정식 명칭은 Pitti Immagine Uomo,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리는 남성복 박람회) 혹은 길거리에서 벨지안 로퍼를 신은 남성들의 사진이 노출되며 벨지안 로퍼는 순식간에 경쾌하고 센스있는 남성의 신발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부 Pitti Uomo의 사진들.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급격하게 퍼진 벨지안 로퍼는 현재 다양항 계층의 많은 이들에게 또 다양한 스타일로 소화되고 있다. NOAH의 창립자이자 슈프림의 디렉터였던 브랜든 바벤지엔은 이 로퍼를 빈티지 티셔츠와 청바지에도 신지만 턱시도에도 신을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정해진 특출 난 이미지가 없다. 쉽게 말하자면 당신이 신는 대로 그 스타일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갈 수 있다는 것. 물론 그렇기 때문에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만큼 스타일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있어야 어색함이 없이 신발을 신을 수 있다는 거니까.
만약 당신이 로퍼와 별로 친하지 않다면, 페니 로퍼, 태슬 로퍼를 지나 다양한 디테일의 로퍼를 충분히 즐겨보고 친해진 후에 벨지안 로퍼를 신어보자. 그때쯤이면 나에겐 어떤 느낌이 어울리는지 잘 알게 될 테니까. 만약 지금 당장 이를 신어 보고자 한다면, 작은 리본이 발등 부분에 달려있는 가장 기본적인 벨지안 로퍼부터 시작해보자. 될 수 있다면 색은 밝고 화려하게 하여 신발에 모든 시선을 집중시키겠다는 의도로.
로퍼를 구매한다면 당신이 알아두어야 할 것
로퍼를 구매할 때 꼭 생각해야 하는 것 한 가지, 로퍼를 살 때는 꼭 방문 실착을 하거나 해당 제품 판매자와 제품 상담을 마친 후에 구매해라. 귀찮아도 꼭.
모두가 알다시피 로퍼는 끈이 없는 슬립온 모델이다. 스트랩이 달려있는 구두 모델(몽크 스트랩) 역시 로퍼와 마찬가지인 슬립온 모델이지만, 이 경우 말 그대로 '스트랩'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느슨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로퍼의 경우 자신의 발등이 높거나, 발볼이 넓거나 아니면 전체적으로 두툼한 발이라면 한없이 쪼여오는 구두 때문에 구매 후 몇 번 착용을 못하고 당근 마켓으로 가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발이 칼발이 아니라면 어떤 구두 샵이던 가능한 한 매장을 방문하여 실착을 하거나 자신과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의 리뷰를 보고 정보를 최대한 모 은 다음에 구매를 하자. 가장 좋은 방법은 판매자와 제품에 대한 상담 후에 구매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