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종족과 싸운 건 지구인의 패착이었다. 귀가 크고 눈이 빨간 외계 생명체가 달 기지를 습격했을 때만 해도 일이 이처럼 꼬일 거라 생각한 지구인은 한 명도 없었다.
달에서 떠나라. 그럼 모두 살 수 있다.
달 종족의 말을 지구인은 무시했다. 외려 특공대를 우주선에 실어 달로 보냈다. 협상단으로 위장한 특공대의 공격 장면이 지구로 생중계되었다. 근데 바닥에 쓰러진 건 전부 특공대원이거나 인질로 잡혀 있던 달 기지 사람들이었다. 화면을 느리게 돌려보니 총알이 휘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달 종족이 염력을 쓴 것 같았다.
지구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미사일을 우주선에 실었다. 그리고 대기권 밖에서 달을 향해 쏘았다. 설마 이것도 휘어지겠냐 했지만, 휘어졌다. 휘어져서 지구를 때렸다. 때린 곳이 다행히도 사막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린 지구인은 평화사절단을 파견키로 했다. 실상은 핵폭탄을 달로 가져가서 터뜨리는 자폭사절단이었다.
절체절명의 미션 수행에 선뜻 자원한 지구인은 셋. 30대 남성 우주비행사, 50대 여성 핵물리학자, 60대 여성 전직 부통령으로, 모두 달 기지에서 죽은 인질들의 가족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으나, 3인의 자원자를 향한 상찬들에 묻혔다. 성대한 환송식 후에 3인조가 탑승한 다단로켓이 불을 뿜었다.
가파른 곡선 궤적을 그리며 치솟은 로켓은 일렁이는 작은 불꽃으로 아스라해졌다. 그 불꽃을 바라보는 지구인의 가슴속에선 불안과 기대가 함께 타올랐다. 여기선 눈물을, 저기선 탄성을 자아내는 가운데, 120킬로미터 상공을 통과한 로켓은 1단 엔진 분리, 2단 엔진 점화, 우주선을 감싼 금속 덮개 분리 과정을 순조롭게 이어나갔다.
11분 뒤면 2단 엔진을 떼어내고 지구 저궤도를 선회하다가 달로 향하게 됩니다.
방송에 패널로 나온 전문가의 설명을 듣는 동안, 사람들은 버섯구름이 솟는 달을 떠올렸다. 그것을 그래픽화한 영상이 인터넷을 달궜고, 3인조와 죽은 가족의 모습을 매칭한 사진이 좍 퍼졌다. [벅차다], [슬프다], [달 종족을 몰살하자] 따위의 댓글들이 폭주했다. [가족 복수극에 웬 오바질?] 같은 어그로는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런 분위기를 바꾼 건 200킬로미터 상공에서 발생한 2단 엔진 분리 실패였다. [이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올라왔고, 로켓의 추락 지점을 예측하는 속보가 떴다. 그리고 3인조에게 임무를 맡기는 데 반대했다는 내부자의 증언이 방송을 탔다.
[어쩜 섣부른 구출 작전으로 가족을 죽게 만든 복수를 세상에 하려는 건지도 모른다]는 음모론이 힘을 받았다. [달 종족이 염력으로 로켓을 망가뜨렸다]는 음모론도 제기되었지만, 3인조가 영웅에서 역적으로 떨어지는 걸 막진 못했다.
당혹과 분노와 절망으로 혼란스런 지상을 향해 시시각각 추락하던 로켓은 한순간 눈부신 빛의 투망이 되어 상공을 덮었다. 그것은 지구 반대편 하늘에도 뻗칠 만큼 거대하고 찬란한 자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