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남자와 위로, 두 번째
일에 지친 남자를 보는 건, 제법 그럴싸해졌다. 이전보다 쉬워진 것도, 어떤 요령을 터득하게 된 것도 아니다. 그나마 이 남자의 힘듦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그래. 당신, 많이 힘들구나. 하고. 더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아직도 '예민한 남자 위로하는 법'을 고민하고 있다. 처음 고민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 여전히 새롭게만 느껴진다. 누가 남자는 '단순한 동물'이라고 했나. 사기꾼자식.
이 남자의 예민 주기는 빨라졌다. 어떠한 종류의 프로젝트이던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그의 어깨는 무거웠고, 잠은 줄어 들었으며, 생각과 고민도 많아졌다. 그 옆에서 나는 마치 게임하 듯 이전보다 훨씬 더 어렵고 까다로운 '예민한 상태' 레벨에 직면했다. 미션 최종 몬스터 같은 이 남자가 진화했다. 이번 단계는 어떻게 깨야 하나.
그래도 나아진 것이 있다면, 힘듦을 알아 챌 수 있게 된거다. 일하고 있는 이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힘들다 말하지 않아도 표정과 행동에 묻어 나는 힘듦이 보였다. 철야 작업도 불사하는 일정에 몸이 고단했고, 그를 찾는 요란한 전화에 한숨이 짙어졌다. 그래. 당신, 많이 힘들구나. 몸도 마음도 다 지쳤구나, 하고. 툴툴대지 않아도, 예민하게 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예민함 폭발의 징조를.
상대의 힘듦을 그대로 바라 보는 것. 은근히 쉬운 듯 하면서도 참- 쉽지 않다. 계속해 힘들어 하고, 지쳐하는 그가 안타까웠고, 눈이 떠지지 않는 아침을 탓하는 모습이 속상하다. 당장 뭐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때때로 내가 해 줄 수 있는게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결국 그가 이겨내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차오르는 답답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의 피곤함과 힘듦, 어떤 예민함을 눈치챘을 때 곧바로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저 한 동안 그를 지켜 봤다. 왜 힘드냐 묻지 않고, 무엇을 더 해주려 당장 애쓰지 않고, 그저 힘든 상태 그대로를 바라 봤다. 이 남자의 힘듦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래서 이 남자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관찰하고 인지하는 것, 그것이 힘듦을 바라보는 첫 단계 연습이었다.
지난 연애 동안 섣부른 위로에 대해 834가지 부작용을 겪었던 덕일까. 이 남자의 상태를 관찰하고 나면 나름대로 힘듦의 종류와 단계가, 그리고 진짜 이 남자가 원하는 나의 행동이 걸러졌다. '일과 남자와 위로'에서 말했던 '상황 맞춤형 위로'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안타깝게도 연애가 지속되면 지속될 수록, 이 남자를 겪으면 겪을 수록 내가 고려할 수 있는 예상 상태는 더욱 더 많아졌다. '답은 아는데, 육체적으로 힘든 상태', '답은 아는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상태', '답도 모르겠고 정신적으로 돌아버릴 것 같은 상태. 체력은 37% 정도 괜찮음', '답도 없고, 몸도 힘들고, 그냥 숨고 싶은 상태', '몸도 마음도 다 좋은데 답을 1도 모르겠는 상태' 등등등. 사실 남자는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어느 순간부터 이 남자의 상태가 복잡하면 복잡할 수록 재빨리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강박감을 내려 놓기 시작했다. 이 전에는 남자친구의 상태를 완벽히 파악하고 그게 맞는 위로를 해야 한다는 일종의 '여자친구 의무감'에 휩싸여 있었는데, 그걸 내려 놓았다. 다양하고도 미묘한 상태 차이를 정확하게 짚어 낼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미묘하고 다양하게, 그리고 아주 풍성하게 위로와 격려를 해 줄 성정이 못 됐다.
사실 지켜보는 동안에 이 남자가 먼저 훌훌 털어 버리길 바라는 마음(=기대)도 있었다. 더 드라마틱하게는 위로나 격려 혹은 격렬한 애교 없이도 '그래도 내 옆엔 항상 제희가 있어' 하고, 마법 같은 마음 속 중심이 되길 바라기도 했고. 그래도 어떤 조치는 필요했다. 내 입 밖으로 나와 그의 귀로 들려질 어떤 말이 필요했다. 특별한 말과 행동이 없는 것도 어떤 힘을 갖지만, 드러나는 말과 행동이 주는 그만의 힘이 있기 때문에.
5.5년이 괜한 시간은 아니었던 듯, 터득된 것이 있었다. 진짜 이 남자가 포기하고 싶은건지, 혹은 잠시 투정부리고 힘들어 할 시간이 필요한 건지 알아내는 것. 0과 1 사이 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상태를 가진 그를 단 2가지 상태로 압축해 버린거다.
언젠가 내게 "왜 지금 남자친구가 좋아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꽤 자주 받는 질문인데, 항상 답은 똑같다. "나를 가장 멋있는 여자로 만들어 주거든요." 스스로 한계라 여길 때, "네 한계는 여기가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내가 더 멋있는 여자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주는 남자기 때문에. 나를 존중해주고 내 성장을 누구보다 응원하고 기대하는 남자여서 사랑한다.
그런 이 남자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최근 한 프로젝트가 그를 힘들게 하면서 충격적인 말을 쏟아냈다. "숨어 버리고 싶어. 어디 도망가 버리고 싶어."
항상 무엇이든 척척 잘 해내고, 자신감에 차있던 그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이 때는 정말 말을 잃었었다. 관찰이고 나발이고, 그저 '응? 뭐라고?'하면서 그가 얼마나 힘든 상태에 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덜컥 겁이 났다. 이런 말을 쉽게 할 사람이 아니었는데. 도대체 얼마나 힘들길래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까.
문제의 프로젝트는 가히 살인적이었다. 매우 촉박한 데드라인에, 깊은 연구가 필요한 것들 투성이었다. 체력적으로 고단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일들이 가득했다. 이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디렉팅하는 그에게 모든 단계와 작업이 도전이었다. 팀원들은 디렉션을 기다리며 그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프로젝트 클라이언트는 한껏 부푼 기대로 그를 압박했다. 그를 바라보는 모든 이의 시선이 그를 찔렀고, 숨을 막았다. 프로젝트를 잘 끝내야 한다는 책임감은 강박과 압박으로 변해 그를 짓눌렀고, 이를 버티는 그는 아슬아슬해 보였다.
숨어버리고 싶다던 말을 듣던 그 날. 집에 돌아와 한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항상 그가 작업하는 작업실을 드나 들었고, 팀에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매일을 보던 그였는데 그가 힘들어하는 것을 섬세하게 보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가졌다. 남자친구여서, 그리고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인데 내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서.
사실 어떻게 격려하고 응원해 줄 지 감도 잡지 못했다. "아니야, 오빤 잘 해낼 수 있어!"라고 말 하기엔 그가 느끼는 무게와 힘듦이 너무나 커 보여서 쉽게 말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말 없이 있을 수 없었다. 덩달아 나까지 불안해 하는 것 처럼 보일까봐. 나를 보고 자신 때문에 팀까지 불안하게 만들어 버렸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나 하겠지만, 함께 사업을 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로 인한 남자친구의 힘듦은 연애와 일에 모두 영향을 미치는 이슈다.)
그러고 몇 일이 지났다. 힘들어 죽을 것 같았던 그가 찾아왔다. 나를 보자 마자 안겨서는, "힘들어. 힘들어. 도망가고 싶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했다. 안타까웠다. 속상하고 또 안쓰러웠다. 그의 짊어진 무게를 나눠 가질 방법을 몰라서 미안했고, 그에게 힘이 되어 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더 미안했다.
"다음 달의 오빠가 기대 돼. 아주 많이."
고르고 고른 말이었다. 그가 지난 날에 내게 해 주던 말들 중 나를 가장 기쁘게 하고 힘이 나게 했던 말들을 골랐다. 나의 성장을 기대하는 것 만큼이나 이 남자도 자신의 성장에 욕심 내는 남자였다. 그래서 고른 말이었다.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분명 오빠는 더 성장해 있을거야. 더 좋고 훌륭한 프로젝트들을 해 낼 수 있을 거고, 그렇게 더 실력있고 멋진 메이커가 될거야."
이 말이, 이 남자에게 진짜 마법처럼 힘이 되길 바랬다.
관계가 깊어질 수록 직면하는 것들의 깊이도 깊어진다. 서로 드러내고 나누는 힘듦이나 종종 부딪히는 다툼의 깊이 같은 것들이. 마치 함께한 시간만큼 어른이 되어가기 때문이랄까. 학생 때의 고민과 직장인이 되고 난 후의 고민이 같은 종류의 것이라 할 지라도 내용과 무게가 다른 것과 비슷하다.
얼마 전 이 남자와 함께한 시간이 벌써 5.5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남자와 연애를 계속 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때가 불과 얼마 전 같은데. 새삼 5.5년의 시간을 느낀 것은 다른 차원의 레벨로 다가온 '예민한 남자 위로하기' 미션 때문이었다. 이 남자에게 현명하고 유쾌한 여자친구이고 싶었는데, 어느새 보니 '좀 더 믿을 만 한' 마음 속 중심이 되고 싶어져 있었다. 연인관계에서 보다 더 깊이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랬다. 내가, 그에게.
쉬워보이는 말이지만 '마음 속 중심'이라고 하는 것은 내게는 굉장히 숭고하고 신성한 느낌이다. 어쩌면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그려오던 '사랑'의 진짜 모습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약함과 부족함을 거침없이 드러내도, 항상 믿고 응원해 줄 수 있는 것. 더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흔들릴 때, 강하게 버티어 서 있어 주는 것. 나를 밀어 부쳐 '할 수 있다' 하지 않고, 충분히 힘들어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려 주는 것. 이런 것들이 내가 상상해오던 사랑이었고 위로였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남자를 위로하는 방법은 달라져 있었다. 두려웠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전보다 더 깊이 마주하게 되는 그의 힘듦에, 나는 과연 함께 감당하고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 평가하고 있었을지도. 아니, 사실은 내가 더 조용히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뿌리가 깊은 나무가 더욱 견고하게 버티고 서 있는 것 처럼. 앞으로 맞이할 수많은 프로젝트에 힘들어 할 이 남자를 위로하고 응원하려면 내가 더 견고하게 서서 기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었다. 더 큰 책임감이 내게로 왔다.
에필로그1
얼마 전 함께 화장품 매장에 갔다가 마사지 크림을 보고는 눈이 초롱초롱해 졌다.
"이게 뭐야?"
"얼굴 마사지 하는 거."
"이거 사주면, 나 마사지 해줘?"
그 뒤로, 남자친구는 틈만 날 때 마다 마사지를 요구하는 그루밍족이 됐다. 스팀타올로 마무리도 해 줘야 한다.
에필로그2
시도 때도 없이 안마를 해달라고 어깨를 들이대는 남자다.
고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걸 알아서 어깨를 들이 댈 때 마다 곧 잘 꾹꾹 눌러 줬다.
그러던 어느날, 셀프 물리치료를 하겠다며 부황 같이 생겨 꿈틀꿈틀 움직이는걸 가져왔다. 난 그걸 한의원 밖에서 본 적이 없다.
"다리에 할 거야. 다리가 아파."
그의 다리에 털이 너무 많아 부황 같은게 붙어 있질 못했다.
에필로그3
요즘 강아지 타령이다. 반드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단다. 그것도 대형견으로.
대형견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다나.
"그럼, 내가 좀 더 개처럼 굴어주면 안될까?"
그는 눈물을 글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