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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 Apr 30. 2020

7년의 연애, 그리고

 

2013년 1월 끝자락에 간신히 매달려 시작된 연애는 어느덧 일곱 번의 사계절을 지나 다시1월에 왔다. 지난 6년간 시간과 감정을 공유하던 우리는 물리적 공간까지 공유하기를 결심했다. 1년이 더 지나, 시간과 공간을 모두 공유하던 우리는 앞으로의 삶과 인생을 공유할 것을 맹세했다. 공식적으로. 





당신의 가족이 됨에 열렬한 환영을 받아 더 없이 행복한 신부였음에 확신한다.

결혼식의 시작은 이랬다. 작년 가을 무렵 나와 남편은 결혼식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둘 다 본가가 대전이었기에, 결혼식 장소는 자연히 대전으로 결정했으나 서울에서 대전을 오가며 결혼을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아 어쩌지 못하고 있었던 것. 마침 그 무렵 시어머니께서 조심스럽게 결혼식 계획을 물어보셨는데, 결혼 준비가 쉽지 않아 걱정이라는 고민을 들으시고는 선뜻 예식장을 먼저 알아봐 주실 것을 제안하셨다. 


어머님의 도움은 감탄, 그 자체였다. 여러 사회 활동으로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운영하신 경험과 노하우의 저력을 가감없이 보여주셨다. 대전 내 손꼽히는 예식장과 호텔들을 직접 방문하고, 상담을 받아보시며 누구보다 꼼꼼한 기준으로 최고의 장소를 정리해 공유해 주셨다. 후보 별 전체 시설의 수준, 주차 수용 정도, 웨딩홀의 공간감과 조명, 음향시설, 식사의 수준까지. 게다가 상담을 받아보시며 예식 가능한 날짜와 비용 및 할인 정보, 서비스 내용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셨다. 이후 드레스와 메이크업을 진행할 전문숍을 알아봐 주셨고, 방문 예약까지 직접 잡아주셨다. 언제나 최종 선택은 나와 남편의 몫으로 남겨두시며, 우리의 선택을 존중해 주셨다. 


나는 지금도 어머님께서 도와주신 모든 것들을 잊지 못한다. 아니, 앞으로도 잊지 않을 작정이다. 내 결혼식인데, 내가 직접 준비해야 하는 것인데 어머님께서 더 애쓰시고 마음 쓰신 것 같아서 죄송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머님께 도움을 청하고, 염치없이 도움을 거절하지 않은 것은 이기적이게도 행복감 때문이었다. 언제나 한 걸음 더 내다보시며 나의 부족한 결혼 준비를 이끌어주시고, 때로는 나보다 더 설레하시는 모습이, 마치 나를 열렬히 환영해 주시는 것 같아서. 내가 아들의 아내가 되고, 며느리가 되는 것을 진정으로 기쁘게 맞이해 주시는 것 같이 느껴져서 계속 나는 어머님께 어리광 피우며 의지했다. 그래서 더 감사하고, 행복했다. 







서툰 당신이 청혼마저 서툴어서,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하나 둘, 결혼 준비를 어느 날 설거지를 하며 머리 속으로 결혼 준비 내용을 떠올리고 있었다. 문득, 나는 아직 청혼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가 먼저 청혼한 사실이 없는데, 결혼 날짜를 정하고 결혼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난 날, 청혼은 반드시 내가 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한 기억이 분명 또렷히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프로포즈를 '받고' 싶었다. 남편이 들으면 어이없어하겠지만. 사실 이미 결혼 준비가 많이 진행됐기 때문에 이제와 프로포즈를 한다고 한 들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나랑 결혼해 줘서 고마워"하는 말 한마디를 기어코 듣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알량한 자존심이었다.


"반지!! 나만 없어, 반지! 프로포즈 왜 안해줘?! 나도 반지 껴줘, 반지!!"


하염없이 반지를 외치며, 설거지를 하다 말고 주저 앉았다. 그런데, 진짜 그 때는 서러웠다. 내가 청혼하겠다고 약속을 했던지 안했던지 간에 그냥, 서러웠다. 말도 안되는 꼬장에 남편은 황당해서 아무 말도 못한 채 나만 멍하니 쳐다 보았다. 


"니가 프로포즈 해준다고 해서, 나는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렇다. 나는 청혼을 내 입으로 약속한 사람이었다. 아니, 연애 하자고 내가 먼저 말했는데 아무리 내가 먼저 청혼하겠다 했어도 본인이 청혼해 주면 덧나나. 입을 삐죽거렸지만 더이상 떼를 쓰기도 애매하고, 어떻게 프로포즈를 해야 하나 생각하며 다시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났다. 으슬으슬 몸살 기운이 돋아 잠에 파묻혀 있던 아침이었다. 그 때 손가락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아픔에 눈을 떴는데, 남편과 눈이 딱 마주쳤다. 내 왼손 네번째 손가락에 들어가다 만 반지를 붙잡고 낑낑대며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남편과. 그 순간, 눈치없는 핸드폰 모닝콜이 날카롭게 끼어들었다. 


"망했어!!" 


당황스런 눈빛은 절망감으로 물들었다. 남편은 민망한 얼굴을 한 채 침대를 벗어났다. 반지는 여전히 내 왼손 네번째 손가락에 끼워지다 만 채로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남편은 내가 일어나기 전 내 손에 결혼 반지를 몰래 끼워둘 계획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내가 반지의 존재를 알아챘을 때, 맛있는 아침식사를 주며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그러나 사랑스럽게 프로포즈 할 생각이었다고.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감기기운으로 몸이 퉁퉁 부은 탓에 반지가 제대로 끼워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어떻게든 손에 반지를 끼워 넣으려는데 손가락이 아파 내가 깨어 버린 것. 그 와중에 모닝콜까지 시끄럽게 울려대니 영화 <어바웃타임>을 꿈꾸던 프로포즈는 <프렌즈>로 끝나버렸다. 


남편이 떠난 침대 위에서 빨개진 손가락을 바라보며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고 나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이래야 우리답지. 로맥틱은 무슨 ㅋㅋ'하며 반지를 고쳐 끼고는 절망하는 남편을 위로하서 나섰다. 


때때로 표현이 서툰 남편이, 프로포즈마서 서툰 모습을 보이니 여전히 변함이 없는 것 같아 사랑스럽다. 

남편의 바람대로 로맥틱하지 못했던 프로포즈라, 지극히 우리다웠다. 그것보다 더 감격스러운 사실은, 프로포즈를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닥쳐올 파도에 대하여, 기꺼이 맞이하는 담대한 배우자가 되기를.

한 편의 시트콤이었던 프로포즈가 있고 난 뒤, 눈 깜빡할 새에 결혼식이 끝났다. 결혼에 대하여 수많은 생각이 오가며, 나 스스로 한 다짐이 있다. 결혼 서약서로 모든 사람들 앞에 맹세한 다짐이기도 하다.


당신과 함께 이뤄나갈 가정과 그 미래에 대하여 겁내지 않을 것.

우리에게 닥쳐올 파도에 대하여, 기꺼이 맞이하고 현명히 헤쳐나갈 수 있는 담대한 반려가 되고자 노력할 것. 


스스로 마음에 새긴 결심이 시간이 지나도 희미해 지지 않길, 아니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뚜렷해지길 바란다. 


7년의 연애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시작이 막을 올렸다. '연애'가 아닌 '결혼', '연인'이 아닌 '부부'로 우리의 관계는 다시 정의됐다. 당신과 나의 환상적인 콜라보를 기대한다. 






2013년 1월 ~ 2014년 4월 - 대학 선임기자와 후임기자 + 연인

2016년 12월 ~ 현재 - 직장 상사와 직원 + 연인

2020년 1월 ~ 현재 - 직장 상사와 직원 +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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