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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 Nov 25. 2018

사랑하는 당신에게

일기장에 감춰 놓았던 사랑을 드러내겠다

당신과 나는 모두 이 연애가 처음이다. 6주년을 맞이하는 이토록 긴 연애가. 그래서 우리는 어느 시점부터 하루하루가 처음과 같았고, 낯선 순간들이 참 많았다.


우리가 연애하는 시간 속에 쓰여진 일기장엔 당신이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했다. 5번의 봄과 여름,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이했다. 강산도 반 쯤 변했을 동안 당신과 나는 서로 참 많은 모습을 보아왔겠다. 무수한 순간들이 존재했고, 그것들엔 단순히 '희노애락'으로 정리되지 않는 더 섬세한 감정까지 있었다.


지난 기억을, 그 때를 떠올리니 나는 참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의식하는 것 보다 더 많이 사랑하더라. 나는 사랑 받고, 또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그 순간 가슴을 채워오는 뜨거움을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당신도 알았으면 좋겠다. 오로지 내 일기장 속에 갇혀 당신이 알아채지 못한 것들을.



머리를 말아 묶어 놓으면, 당신은 ‘머리 덩어리’라며 손가락을 끼워 넣고 헤집어 놓는다. 남자는 ‘애’ 아니면 ‘개’라는데, 당신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걸까.



'여러모로' 할 말을 잃게 만든다.

함께 일을 하면서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 적응했던 것이 있다.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냉정한 평가와 거침없는 지적, 꾸중이다. 참 자존심이 상했다. 그럼에도 내 입은 내뱉을 말이 없어 굳게 닫혀 있었다. 때때로 논리 없는 말들이 튀어 나왔다. (아니, 때때로 보다 더 자주.) 주워 담을 수 없는 민망함에 더욱 이를 악 물고 일했다. 그 때는 몰랐다. 참 배려없다고 원망했던 그 냉정함들이, 사실은 당신도 많은 망설임 끝에 비로소 용기내어 던진 것들이라는 것을. 당신에게 모진 말을 뱉고 나니, 당신 또한 어려웠을 것에 마음이 쓰인다.

(2017. 6. 13)



'여러모로' 귀여운 구석이 있다.

당신의 말을 빌려 '희한한 소설(=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소설 속 남자 주인공들의 집착과 소유욕에 '환장'했다. 그것이 남자가 드러내는 사랑의 정도라 생각했고, 사랑에 빠진 남자라면 응당 강한 소유욕과 집착을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끄러움이 많은 당신은 내게 그런 소유욕과 집착을 보이는 것 조차 부끄러워했다. 남성이 섞인 모임에 '어허, 남자를 만난다고!'하는 말이 전부였다. 나는 내심 서운했다. 얼굴은 소설 남주가 되지 못해도, 그런 성정만큼은 1%라도 소설과 같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로망을 가졌었다.


그러던 어느날, 오랜 남성 친구와 만나며 당신과 전화를 마치니 그가 물었다.

"원래 그렇게 연락을 자주해? 통화 자주하네."

그제서야 알았다. 어떤 의미에서든 남자를 만나고 있을 땐  유독 전화와 카톡이 많았다는 것을. 그래서 내 주변의 모든 남자 사람들은 당신이 날 혼자 밖에 못 내다 놓는다고 생각했다. 5살이나 어리니 그토록 이뻐보였겠지, 하며.


그날 나는 혼자 히죽히죽 웃으며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한동안 소설을 읽지 않았다.

(실제 일기에는 '한동안 소설을 읽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썼다. 2018. 6. 21)




머리만 푸르고 있으면 가져다가 수염을 만들어낸다. 어차피 수염도 많으면서.




'바라건대' 내 생에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에 당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죽음을 앞둔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모습에 책을 덮고 오열했다. 책에서 말하길, 눈을 뜨고 나면 죽음이 앞에 있을 거랬다. 후회하지 않는 삻을 살아온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거라고.

언젠가 죽음을 앞둔 때가 되었을 때, 당신이 내게 있기에 두렵지 않았으면 좋겠다.

죽음에 관하여 소원이 있다면, 내 생에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에 당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 어떤 소설을 읽었던 것 같다. 기억이 나지 않는 소설 제목. 무엇이엇을까. 다시 읽고 싶다. 2017. 12.17.)





'때때로' 당신이 안타까워, 내가 더 강해져야겠다 다짐을 한다.

이런 저런 물리치료를 받고, 옷가지를 정리하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희야, 나도 있어."

당신도 몸이 아파 한의원에 왔었다. 허리와 골반이 제 기능을 못 할 정도로 망가졌다고 하더랬다. 한의사가.


당신은 참 치열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진정으로 당신은 이 일에 청춘을 다 바쳤다. 당신의 청춘이 녹아든 이 일에, 나 만큼은 짐이 되어선 안된다고 또 한 번 다짐했다.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는다는건 어렵다. 그만큼 스스로 다잡아야 하고, 오랜 습관을 걷어 내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직 그런 훈련도, 내공도 부족한 나는 한의사가 당신에게 내린 그 진단 앞에 스스로 반성해야 했다. 여전히 나는, 당신에게 아직 짐인 듯 하다.


몸이 망가져라 열정을 쏟아내는 당신이 멋있다. 당신이 무얼 하든 멋있다. 내게는 그렇다.

그런 당신의 몸이 좋지 않다 하니 안타깝다. 그래서 부단히 더 노력해야겠다. 당신이 내 옆에서, 나도 당신 옆에서 빛날 수 있도록.

(2018. 11. 20.)




순간 포착된 표정이 귀엽다. 가끔.







'은근히' 보면, 당신은 나를 길들이는 방법을 아주 정확히 알고 있다.

모처럼 여유로운 카페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다. 어디냐는 물음에, 근처 카페라고 하니 얼마 후 아이패드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나비처럼 다가와 벌처럼 강하게 쏘아 내게 준 것은 손목시계였다. 언젠가 쇼핑하며 '요즘 시계가 너무 갖고 싶어'하고 말하며 매대에 진열된 시계를 구경했었다. 그 때 네게 '나도 네가 시계를 차고 다니면 이쁠 거라고 생각해'라고 말했는데 이렇게 냉큼 시계를 안겨 줄 줄은 몰랐다.


저녁에 엄마가 말하길, 오후에 전화가 와서는 제희에게 어울리는 시계가 무엇이냐 물었다고 했다. "심플하면서도 고급진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그 어려운 말을 당신은 참 익숙하게 해 내었다.


신종 족쇄냐 물으니, 족쇄 채우면, 얌전히 채워 질거냐 반문했다. 농담에 농담으로 받아치는 것도, 이젠 능해졌다. 언젠가 달달함이 부족하다고 투정 부렸는데, 이렇게 훅 다가와 달달함을 한껏 주고 가는 당신을 보면 나를 길들이는 방법을 아주 정확히 꿰고 있는 듯 하다. 조금은 옆구리 찔러 절 받는 기분이긴 하나, 이 달달함을 절대 마다하지 않겠다.


(난데없이 족쇄를 선물 받은 날. 2018. 11. 18.)





'때때로' 당신은 아빠와 같아서, 나는 눈물이 부끄럽지 않다.

당신은 내가 가족과 지내는 모습을 좋아한다. 당신을 옆에 두고 엄마와 수다 떠는 모습을, 때때로 아빠에게 전화 걸어 뻔뻔하게 애교 부리는 모습을, 그리고 동생에게 징징대는 모습을. 그런 나를 보고 사랑 받으며 커온 사람을 알았다 했다.


치열하게 아빠와 싸웠던 나의 10대, 하루가 멀다하게 엄마의 속을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었던 나의 과거를 당신을 알지 못한다. 어쩌면 당신이 그간 봐온 나의 모습은, 어쩌면 그동안 속 썩여온 것을 속죄하고 반성하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때때로 나는 스스로 무너져 내릴 때 당신 앞에서 '힘들고 어렵다'하며 응어리진 마음을 쏟아 낸다. 그럴 때면 당신은 쉽지만 어렵게 조언했고, 벽이 없되 선을 넘지 않으며 적절히 도움을 주었다. 그것은 아빠가 내게 하던 것과 같았다.


자신감, 자존감, 자존심도 모두 잃고 마냥 한없이 바닥을 칠 때 아빠는 그 절망 마저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넘치도록 해 주었고, 가족 몰래 나를 끌고 나와 “너 참 힘들었겠다”하시며 소주 한 잔 사 주시고는 내가 기어코 울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때가 되면 홀로 일어 설 수 있을 만큼만 단단한 지지대를 세워 주었다. 어떻게든 일어 서고 나면 “넘어져도 좋으니 다시 뛰어 보라”했다. 그것이 아빠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자, 나를 키워낸 방법이었다. 아빠는 내 눈물에 연약하지 않았고, 나의 성공과 실패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였고, 나는 그런 아빠 앞에서 마음껏 울어도 되었다. 아빠 만큼은 나를 기다려 줄 것이라 믿었고, 또 내가 다시 일어서고 말 것을 알았기에.


놀라우리만큼 그 모습을 닮은 당신이 마치 아빠와 같아서, 나는 당신 앞에 쏟아내는 눈물이 부끄럽지 않다. 그래서 나는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당신 앞에서 솔직해 질 수 있고, 나 다워 질 수 있다. 사랑하는 이 앞에서 오로지 나 다울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내게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내지 않아도 된다 해서.


(2018. 1. 28.)




2013년 캠퍼스 벚꽃길에서.




당신도 몸서리 치게 느껴 주길 바란다.

5번째 겨울을 맞이했다. 이 겨울이 지나고 나면 당신이 심어준 매화 나무는 작년 보다 더 짙은 향을 내며 꽃을 피우겠다. 매화는 눈과 서리를 두려워 하지 않고, 언 땅 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워 낸다. 그래서 당신이 많고 많은 꽃나무 중에 매화를 심어준게 아닐까 한다. 눈과 서리를 무서워하지 말자고. 눈이 온 땅을 덮고, 그 위에 서리가 단단히 굳어져도 꽃을 피워 내자고.



지나고 보니 그 어느 하나도 의미 없는 순간이 없었다. 그 한 순간, 하루를 헤쳐 나가며 우리는 더욱 성숙해지며 무르익고 있었다. 눈과 서리를 견디는 법을 터득하고 있고, 제법 맞이 할 줄도 알았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하고 있더라.



나는 매일이 멀다하게 당신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쏟아낸다. 열렬히 쏟아내는 사랑에 당신의 마음이 간질이고, 명치 그 어디쯤에서 아릿하게 저며옴을 느끼길 바란다. 저릿한 그 낯선 느낌에 온몸이 부르르 떨리고, 간지러움에 몸을 떨다 비로소 사랑을 깨달아 주길 바란다. 그렇게 당신은 내게 사랑 받고 있다고. 내게 사랑 받는 당신은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며, 누구보다 강력한 아군을 가진 사람이라고.











당신은 내가 해 준 밥이 좋다 했다. 맛도 좋고, 무엇보다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아서 속이 편하다고. 그 때 마다 속으로 삼킨 말이 있다.


“이렇게 요리도 잘 하고, 방 청소도 야무지게 잘 하고, 빨래는 더더욱 잘하고, 그리고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하고.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이미 당첨된 복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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