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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 Feb 20. 2017

선임기자와 남자친구와 대표님과 미운오빠새끼

놀랍게도 이 넷은 동일인물이다

'학과 CC는 대학 4년을 망친다'는 말은 내 학부시절을 책임진 '진리'였다. 모두가 알 듯 학과CC에는 일종의 부작용 7종 세트가 따른다. (1)나와 연인, 둘 만의 애틋하고 낭만적인 로맨스가 될 것 같은 연애사는 나의 의한, 그러나 만인의, 만인을 위한 드라마가 되고, (2)위험적 존재를 지켜줄 것 같은 상대는 사실 나의 인간관계 확장을 제한하는 매우 강력한 '바운더리(boundary, 경계선)'가 된다. (3)함께 팀 프로젝트라도 하게 되면 연인의 의견에 매우 합당하게 지지하더라도 편파적인 지지로 비춰질 수 밖에 없고, (4)헤어지고 난 뒤에는 가십의 중심에 서서 누군가 한 명이 학교에서 사라져 주길(휴학 혹은 군입대 등) 바라게된다. (5)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떤 여론은 남은 자의 몫이 되며, (6)흑역사로 치부된 민망함과 어색함은 주변 동기들의 몫이 되고, (7)상대의 이름은 영원히 금지어가 되는 것이다.


이 쯤 말하면 "그래도, 좋은 것도 많아.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야."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러나 내 눈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CC는 찬성이나 학과CC는 결사반대'라는 꽤나 야비한 법칙을 만들었지만 결국 CC도, 연애의 어떤 형태도(이를테면 사내연애) 위에서 나열한 문제들을 결코 해결해 주지 않았다. 결국 위에 설명된 7가지의 부작용은 어느 연애의 모양이던지 항상 몇 가지씩 뒤따르는 부작용인 셈이었다. 




학과CC나 사내연애나. 다 그렇지 뭐. 





연애, 그 이름의 역사에 대하여

1. 난 선임이고 넌 쪼렙 신입이다, 인마. (2013.01 ~ 2014.04, 선후임 상태)

주요 사건: 취재 60%, 일(기사작성 혹은 사진편집) 30%, 주간회의 10%

주요 대화: "오빠, 다음 주에 가능한 취재일정이 어떻게 되시죠?", "정면배치 할 수 있는 풍경사진 촬영 부탁드릴게요.", "사진 셀렉(사진기자가 기사에 실을 사진 후보를 선택하는 것) 다시 부탁드릴게요."


나는 CC로 연애를 시작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나는 일종의 사내연애로 시작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같은 대학을 다녔지만 남자친구를 만난 것은 대학 홍보처 소속의 뉴스팀에서였다. 그는 내 선임기자였고, 나는 쪼렙 신입이었다. 그러니까, 그와 나의 관계는 연인이기 이전에 선임과 후임 관계였다. 이렇다보니 일(취재)이 곧 데이트가 됐다. 그러나 일은 일 일뿐, 달달할 수는 없는 법. 주간회의 때는 꼬박꼬박 존댓말과 '기자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고, 취재를 할 때는 철저히 연인관계를 감췄다. 남들 보기엔 평범한 커플이 카페에 가는 것 처럼 보이겠으나, '꽁냥꽁냥' 따위의 낭만은 없었다. 우린 그저 테이블을 공유할 뿐 각자의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각자의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이 당시 가장 큰 문제는 데이트 부족으로 인한 달달함 결핍이었다. 같은 조직에 있다보니 위의 모든 부작용들을 피하고 싶어서 조심하다보니 그 '조심'이 과했던 탓이다. 눈이 하트로 떠지고 목소리에서 꿀이 떨어져도 모자랄 연애 초기에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서로 취재 이야기만 해대니 '뭔 연애가 이래!'하고 불만이 쌓였다. 물론 많은 커플들이 겪듯이 하루가 멀다하게 싸워대는 시기도 거쳤다. 그런데, 전쟁은 많은데 회복이 안되니 힘들었던 시기가 바로 이 시기였다. 안타깝게도, 나는 가장 달달해야할 연애 초반에 그를 '자기야' 보다 '용뇽(애칭)기자님'이라고 더 많이 불렀다. 



연애를 하면서도 나는 달달함은 아는 데 까지 꽤 오래 걸렸다. 




2. 드디어 말했다. "안녕하세요. '여자친구' 제희입니다." (2014.05~2016.11, 학생-직장인 상태)

주요 사건: 국내 장거리 연애 8개월(제희 휴학),  국외 장거리 연애 4개월(제희 해외인턴), '직장인-학생'연애 17개월

주요 대화: "**일에 우리 데이트 할 수 있어?"


내가 뉴스팀을 그만두고 난 뒤에야 비로소 언제, 어디에서든 '자기야'라고 부를 수 있었다. 남친의 친구들 앞에서 무심결에 '자기야'라고 했을 때 들려오는 야유소리는 가슴을 더 짜릿하게 만들었고, 캠퍼스에서 다른 동료기자를 마주쳤을 때 잡은 손을 놓지 않아도 됐다. 이 남자와 연애를 시작한지 1년 3개월이 지나서야 CC의 모든 달달함을 아주 자유롭게,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순간도 잠시(겨우 2달!!!), 내가 휴학하고 본가로 내려가게 되면서 장거리 연애가 시작됐다. 운전으로만 2시간이 걸리는 거리였기에 1달에 1번 데이트를 하면 다행이었다. 그러다 해외 인턴을 다녀오고 나니 남자친구는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를 맞이한 것은 감정 자체가 대학 청춘의 낭만이 됐던 그때가 아니었다. 가까이 있어도(본가에 있을 때 보다) 여전히 얼굴 보는 것 조차 힘든 학생-직장인 관계가 날 음흉하게 반겼고, 나는 한 동안 당황스러워했다. 이 때, 남자친구가 참 많이 힘들어 했다. 연애 사상 역대급 전쟁은 모두 이 시기에 발생했다. 






3. 어느 날, 남자친구는 내 보스가 됐다. (2016.12 ~ 현재, 고용-피고용 상태) 

주요 사건: 근무시간 80%, 퇴근 후 업무 이야기15%, 정신 놓은 데이트 5%

주요 대화: "오늘 회의했던 ** 행사건 말인데...", "**프로그램을 기획해 보는 것은 어떨까?"


사내연애, 그러니까 나의 경우, 몸 담고 있는 스타트업 대표와 연애한다는 것은 CC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나의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이 관찰되는 기분이며 말 한 마디, 행동거지 하나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부작용 7종 법칙 중 (1)번과 (3)번을 항상 의식하고 있어야 했다. 


학부 수료 후, 남자친구의 사업을 돕게 되면서 '업무 내용'이 차지하는 대화 비중이 95%에 달했다. 업무시간은 물론, 퇴근 후에도 우린 계속해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아무래도 남자친구의 최대, 최고의 집중거리고 나에게도 그렇기 때문일거다. 어느 순간엔 '우리 대화에 일 이야기를 제외한다면 무엇이 남을까?'하는 아쉬움, 혹은 회의감마저 들었다. 


일과 연애를 애써 분리해 보려 했지만, 노력만큼 쉽지 않았다. 주말에도 일을 놓지 못하는 남자친구의 상황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되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그와 점점 가까이에 있고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할 수록 나는 점점 더 목소리를 잃어갔다. 옆에서 뻔히 보면서 데이트 하자고 투정대는 것이 스스로 어리게만 느껴졌다. 어쩌면 시간이 지날 수록 남자친구를 더 이해하기는 커녕 불만과 투정이 여전한 모습이 그를 질리게 만들까봐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은 사무실 밖에선 여자친구로써 마땅히 그럴 수 있음에도. 





선임기자, 남자친구, 대표님, 그리고 미운오빠새끼 

연인 관계가 다양한 모양으로 조금씩 변해 가는 시점에서 많은 커플들이 아주 치열히 싸우게 된다. 이를테면, 학생과 직장인의 연애로 변화했을 때는 "일이 바빠서 그러니 연락을 자주 못해도 이해해줘" VS "카톡 하나 보낼 시간도 없어?"하는 대립구조가 되고, 같은 조직 내에서 연애를 하게 되면 "네가 잘못한거잖아" VS "그래도 당신은 날 더 이해해 줄 수 있잖아"하는 대립구조가 된다.(불만인 쪽은 남자와 여자 모두 가능하다) 


이 과정을 몇 번 겪으며 깨달은 것은, 한 쪽의 상황만 변했다 할지라도 실제로 그것은 연인관계에 매우 큰 변화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이, 관점이, 우선순위가 바뀌었는데 그를 바라보고, 기대하는 것이 이전과 같을 수 없는거다. 결국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익숙해진 기준들(연락의 빈도, 표현의 정도, 데이트 횟수 등)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해외 인턴에 다녀온 뒤 직장인이 돼 버린 남자친구를 받아 들이기가 힘들었다. 차라리 장거리 연애였으면 이해라도 될 것이('멀리 있으니까'하는 매우 간단한 이유로), 대중교통으로 1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임에도 그토록 보기 힘든 것에 당황했다. 연락은 어찌나 안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주말임에도 주말이면 지쳐 쓰러지는 남자친구가 야속했다. 







안타까운 것은 이 문제들이 어느 연인이던 간에 절대 피해갈 수 없는 모두의 고민이라는 것이다. 데이트가 자유로운 학생시절에 머무를 수 없기에, 여러 상황 속에서 발견하는 가치관이 차이들을 서로 타협하고 배려해 나가는 것만이 연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흘러가는 시간은 또 다른 상황들을 가져올 테니까. 그렇게 남자친구는 내게 '선임기자'에서 '남자친구'가 됐고, '대표님'을 거쳐 '미운오빠새끼'가 됐다.(미운오빠새끼는 어떤 상황에도 끊임없이 사랑받고 싶고 관심 받고 싶은 내 투정 정도라고 생각해 두자)


결국 우리는 상대가 변하지 않더라도, 시간이 가져오는 변화에 맞춰 서로에게 기대하는 기준들을 새로 업데이트 시켜야 한다. 그 과정에는 서러움이 있고, 눈물이 있을 것이며, 수많은 싸움과 대화가 있다. 그럼에도 이해부족으로 인한 다툼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거다. 아무 것도 재지 않고, 따지지 않고 감정만 보고 연애에 임하기엔 꽤나 잃을 것이 생겨 조금 이기적인 어른이 되어 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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