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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Sep 18. 2015

벌써 800일

출근해서 무심코 컴퓨터를 켰는데, 화면에 '800' 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 벌써?' 전 직장을 떠나 지금 이 곳에 둥지를 튼 지 오늘로 800일째 되는 날이었던 것이다. 만 2년이 훨씬 넘은 시간임에도 돌아보면 '순간'이라는 말밖에 달리 표현 할 길이 없다. 학창 시절에 연인들은 100일 때 지인들에게 100원씩 내놓으라고 종용을 했다. 갑자기 그런 추억을 떠올라서 친한 지인 몇 명에게 "야! 800원 주라" 라고 메세지를 보냈다. 여하튼 이 모든 것들도 언젠가는 추억이 되겠지...


 2년이 넘었지만, 첫 이직의 힘듬만 기억에 남는다. 그것은 경험의 부재와 이미 가지고 있던 것들과의 이별에서 비롯 되었다. 그것은 나이 어린 20대에 겪었던 경험의 부재와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리고 8년의 시간동안 쌓아 놓았던 기득권을 모두 버리고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늘 힘에 부쳤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었기에 스스로에게 위로를 가했다. "인생 살면서 언제가 한 번은 이직을 하지 않겠어? 치킨집이든 핫도그집이든 말이야!" 웃음이 나왔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지킬 박사가 자신을 상대로 약물 실험을 했던 것처럼 나는 내 자신을 바라 보면서 인간 심리를 공부할 수 있었다. 인간은 간사하다. 더울 때는 추위가 그립고 추워지면 따뜻함을 찾아 떠나려 한다. 인간 본능 아래 깊숙히 숨어 있는 간사함은 쉽사리 정복되지 않는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놈은 '욕심'이라는 먹이를 먹으며 자라고 있었다. 답은 간단했다. 욕심을 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내 마음을 괴롭히는 간사함은 자연히 굶어 죽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정답이었다. 욕심으로 똘똘 뭉친 '질투'와 '집착'을 내려 놓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너무한 것 아냐?' '어떻하지 어떻하지!' 하는 마음을 덜어내고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라는 생각으로 나를 채워 나갔다.


그리고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살아가고자 했다. 6시에 퇴근을 하면서 작은 콩 한쪽을 얻어가는 소박함을 생각했다. 아빠에게 배꼽 인사를 하며 기다릴 아이를 생각했다. 그리고 아내와 저녁을 같이 먹고 아이의 손을 잡고 동네 한 바퀴를 도는 사소한 행복에 감사했다. 늘 지금 이 순간은 다시금 오지 않는다고 되내이고 또 되내었다. 그렇게 내가 꿈꾸던 삶으로 2년을 보냈다. 그 결과 아이는 아빠를 너무 좋아하게 되었고 세상 어디를 가든 '아빠 옆에~' 라는 말만 반복하게 되었다. 


전 직장에 비해 작은 존재감은 간혹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20년 후에 존재할 또 다른 나를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했다. 서툴지만 매일같이 글을 썼고, 악필 교정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회사 도서관에서 이런 저런 책을 빌려다 보면서 작은 지식을 쌓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점점 미래의 나를 그려 나갔다. 모든 지식 분야를 자유자재로 넘나 들며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감동을... 때로는 배꼽 잡고 쓰러지는 재미를 선사하는 강연자의 삶 말이다.


이제는 오래 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 해져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라는 책이 생각난다.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잃으며 살아간다. 잃어 버린다는 것의 핵심에 '행복'과 '추억'이 있다면 그것 이상으로 슬픈 일은 없을 것 같다. 웃든 울든 화내든 이 순간은 지나가고 있고, 또 다음 순간도 금새 사라져 버린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생각해 보아도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감사해라' 라는 말이외에는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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