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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선생 Aug 06. 2020

같은 상황, 다른 기억

[책] 살인자의 기억법 : 자식과 아버지의 기억 

 해변의 모든 사람들은 멈췄다. 작은 해변이었지만, 소리마저 정지되었다. 파도소리와 그 파도를 질러 나가는 구조원들의 제트스키 모터 소리, 그리고 거의 지치고, 목이 쉰 듯한 한 남자의 목소리만 울렸다. 해변의 모든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한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해안의 좁은 바다와 넓은 바다가 만나는 곳, 부표로 안전선이 표시되어있는 선을 하얀 색의 유니콘 튜브가 넘고 있었다. 목이 쉰 한 남자가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못하자, 옆에 있던 대학생들이 같이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사람이 있어요! 저기 사람이 있어요! 사람이 있어요!"


 목이 쉰 그 남자와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어렴풋이 들려서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몸짓과 손짓, 그리고 알 수 없는 소리가 섞여서 사람을 구해달라는 구조요청으로 들려왔다. 구조대의 제트스키는 빠른 속도로 하얀 유니콘 튜브로 접근을 해서는 주변을 살피다가 튜브에 아무 것도 없다는 듯이 튜브를 뒤집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도 구하지 않고 해변으로 다시 돌아왔다.


"부표 근처에 사람이 있어요!"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고, 제트스키에 탄 구조요원들을 뒤를 소리가 난 부근을 슬쩍 돌아보고는 다시 제트스키를 달려 부표 쪽으로 갔다. 모든 사람들은 제트스키의 꼬리파도만 주시하며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멀리서 자세히 보니 부표 근처에 사람 머리하나가 보였고, 구조대원들은 그 사람에게 접근해서 물에서 들어올리고는 제트스키에 태웠다. 순간, 사람들은 긴장이 풀려 어깨가 내려갔고, 해변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멀리서 한 남자가 어느 사람보다도 빠른 달리기로 제트보트가 도착한 해변으로 달려왔다. 


 부표에 매달려있던 사람은 6세 아이였다. 구명조끼도 없었다. 아이는 하얗게 놀란 얼굴로 사람들을 쳐다봤고, 숨도 쉬지 않고 달려온 아빠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이의 상태를 살피면서도 연신 울음을 참지 못한 소리를 내며 눈물을 닦았다. 그 아빠 뒤에 달려온 엄마는 아빠의 등짝에 스매싱을 날리고는 아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이는 체온이 떨어져 보이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이상은 보이지는 않았다. 많이 놀라지 않았다는 듯이 별일 없다는 표정으로 주변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119와 구조요원들이 아이의 상태를 찬찬히 살펴보는 내내 아이 아빠는 울음과 사과를 끊임없이 아이에게 하면서 "아빠가 미안해"를 연신 말했다. 아이보다 오히려 아빠의 트라우마가 걱정되어 보였다.  


 나중에 이 사건을 그날 뉴스에서 접하게 되었다. 역파도로도 불리우는 "이안류"가 발생하였고, 그로 인해서 아이를 태운 튜브가 빠른 속도로 떠내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부표를 넘는 과정에서 튜브가 기우뚱하자 아이가 튜브에서 뛰어내려 새로 도입된 다목적 구명장비 "쓰나미 키트"에 매달려서 6분만에 구조가 되었다. 아찔하고 아찔한 순간이며, 아빠는 평생 가슴 속에 아이를 삼키려는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을 것이다. 아이도 그럴까? 구조된 아이의 표정만 봐서는 아빠 만큼의 상처나 기억은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되었다.

  



 4~5살 때였다. 그 날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하고 있다. 4~5살 때였으니 1983년이나 1984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어린 내 손을 잡고 혼잡한 재래시장을 갔다. 어머니와 나는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어머니께서 무언가를 고르시며 나의 손을 놓았다. 나는 별다른 두려움도 없었고, 재래시장 골목을 나와 큰 길이 닿아있는 인도로 갔다. 나는 그저 걸었고, 잠깐 걷다보니 5층의 주공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그 단지의 놀이터가 눈에 들어왔고, 나는 놀이터로 한달음에 갔다.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과 놀 만한 상황이 아니었는지, 그 친구들을 옆에서 계속 바라보고, 혼자서 모래를 가지고 놀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뉘엿뉘엿 지는 해가 보이기 시작했고, 놀이터는 아파트 그늘에 가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하나 둘씩 어디로 갔다. 그네에 자리가 있어서 나는 그네를 타기 시작했다. 한참 그네를 타다보니 주변이 어둑어둑 해졌고,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났다. 그 때, 남색 옷을 입은 경비 아저씨가 나에게 오셨고, 내 손을 잡고 경비실로 갔다. 당시의 경비실은 지금과는 다르게 숙직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있어서, 아저씨들이 몸을 뉘일만한 공간이 있었다. 나는 거기에 앉아서 있었고, 그 아저씨는 수박과 튀김을 나에게 주며 먹으라고 했다. 맛있었다.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수박이 달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내가 잠이 든다는 사실도 느끼지 못하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을 뜨니 아버지가 오셨다. 아버지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연신 경비 아저씨에게 감사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었을 때는 이미 저녁 한가운데 있는 듯 했고, 잠에서 깬 나를 누군가 무등을 태워줬고, 내 주변으로 동네 친척 아저씨들이 잔뜩 있었다. 마치 나는 내가 대장이 된 기분을 느끼며 집에 왔다. 색다르고 재미있는 기억이었다. 이러한 나의 기억을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한숨을 푹 내쉬시며 내 기억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신다. 지금부터 부모님의 기억이다.



 

 어머니는 그 당시 33~34살 정도였다. 나를 데리고 시장에 갔다가 물건을 고르고는 뒤를 돌아봤는데, 아이가 사라졌다. 이름을 부르며 찾는데, 혼잡한 시장통이라 내가 보이지 않았단다. 어머니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눈에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간 곳과는 반대로 나를 찾으로 다니셨고, 모든 애들은 다 나 같이 보였다. 한참을 찾아도 내가 보이지 않자, 어머니는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학교에 계시던 아버지께서는 정신없이 나를 찾으러 오셨고, 동네 모든 가족과 친척들을 불러 모아서 그 일대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당시 80년대에는 유괴사건이 지금보다 많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CCTV나 휴대전화 같은 수단이 없다보니 뿔뿔이 흩어져서 찾는 것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 때 당시를 회상하시던 아버지께서는 눈이 돌아갔다고 표현하셨다. 아이들은 모두 다 내 아이 같은데, 내 아이는 전혀 보이지 않으니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고 하셨다. 최근에 나도 큰 전시장에서 8살짜리 아들이 잠깐 보이지 않아서 찾아다녔는데, 그 잠시 3~4분 동안 당황하고, 두렵기 시작했는데, 4살짜리 아들을 잃은 30대 중반의 부모 마음이 오죽했을까 싶다. 어머니는 자책하시며 자신을 원망하고, 만약 나를 잃어버렸다면 평생 가슴앓이를 하셨을 것이다. 아마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를 찾고 다니셨을 지도 모른다. (자식 사랑이 좀 특별하시다.)


 아버지는 반쯤 자포자기하고 설마하는 마음으로 시장 반대쪽으로 걸어나가셨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걸어다니며 나를 찾던 중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왔고, 그 한 가운데 있던 놀이터가 번쩍 보이셨단다. 그리고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며 홀린 듯이 놀이터에 걸어가서는 근처 경비실을 찾았다고 하신다. 경비실에 가니 내가 누워서 편안히 자고 있었고, 아버지는 기쁘면서도 슬프고, 긴장이 풀리셨다고 했다. 경비 아저씨께 감사합니다를 연신 하시고는 주머니에 있던 월급 봉투를 통째로 손에 쥐어주시고는 나를 데려왔다고 한다. 시장에서 나를 찾던 모든 동네 친척과 가족들은 나를 찾았다는 소식에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 동네에 다시는 가고 싶지도 않았다고 하셨다.




 분명 나와 아버지, 어머니는 같은 상황에 있었다. 하지만, 기억은 전혀 다르다. 아마도 물에 빠질 뻔 했던 아이는 보트가 빠르게 움직이니 신이 났을 지도 모르고, 뒤를 보니 아빠가 멀어져 겁이 좀 났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튜브가 기우뚱 할 때, 부표를 잡는게 안전하다 생각해서 튜브에서 뛰어내렸을 지도 모른다. 매달려있으면서 좀 겁나기는 했지만, 구조요원들이 제트스키를 태워줘서 나름 재미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 아이의 기억도 울며 뛰어왔던 아빠와의 기억과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기억이라는 것은 상황이 같아도 다르게 새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판단하는 근거의 대부분은 기억에 의존해서 이다. 그러나 이 기억은 일정하지도, 고스란히 유지되기도 힘들다. 기억은 기억하는 사람에 의해서 의미가 부여되고 변하게 마련이다. 마치 엄마를 잃어버린 나와 물에 빠졌던 6세 아이처럼 말이다. 그래서 모두가 다른 기억을 가지게 되고, 같은 상황을 다르게 판단한다.  이러한 기억조차 사라지게 되면 어떨까? 책 "살인자의 기억법"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알츠하이머로 인해서 자신의 기억을 점점 잃어가고, 그 기억 조차도 사실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힘든 상황으로 변해간다.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도 전혀 다른 기억으로 가지게 되고, 그 기억을 근거로 판단한 현실 또한 이상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즉, 현재 상태에 대한 이해가 없어지는 것이다. 단순히 과거의 사실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황에 대한 이해가 없어지고,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미래 기억"도 사라지게 된다. 즉, 기억의 소멸은 현재와 미래의 왜곡을 발생시킨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모든 인간은 기억의 소멸, 즉 망각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판단하는 근거들이 가변적이고 계속해서 망각에 의해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뇌는 일정 스트레스 이상을 견디기 위해서는 망각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한다. 망각에 의해서 뇌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새로운 기억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망각은 계속 일어나기 때문에 현재와 미래에 대한 왜곡은 발생하게 되고, 이는 현재의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망각에 의해서 인간은 행동과 생각이 변화하고, 새롭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인간은 현재와 미래의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것이다. 어찌보면 모든 인간은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사라져가는 기억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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