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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선생 Aug 11. 2020

교사인가, 형사인가?

학생부 교사의 딜레마

 나는 8년째 학생부 교사다. 다른 사람들이 다 기피하는 부서 1순위, 학생부. 흔히 학생부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학교에서 불리는 정식 명칭은 주로 '생활안전부', '학생생활부', '안전생활부' 등으로 불리고 있다. (편의상 학생부라고 부르겠다. )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에 안전이라는 이름이 명칭에 들어가면서 학생 안전에 관한 업무가 추가되었다. 사실 지금의 학교에 오기 전에는 학생부는 생각도 못해보던 일이었다. 다른 두 학교에서 진로상담부와 학년부 기획 업무를 했지만, 학생부는 주로 체육선생님들이 주로 하는 부서라 나 같은 사회교사는 생각도 못해 본 부서이다. 그러한 학생부에서만 8년 차를 보내고 있다. 그것도 5년째 학교폭력 담당교사, 2년째 학생부장을 하며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과거의 학생부는 학생들이 두려워하는 선생님들만 모여있던 곳이었다.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면 학생부에 끌려갔다가 나오는 학생들은 -조금 과장해서- 거의 초주검이 되어서 나왔다. 체벌이 합법적이던 시절이었지만, 체벌의 강도가 거의 폭행의 수준이었기 때문에 학생부 교무실은 무섭고 살벌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시대의 학생부는 많이 다르다. 체벌은 이루어질 수도 없거니와 폭언이나 욕도 안된다.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실수를 하면 오히려 죄인이 되는 시대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을 상대하기가 많이 어려워졌다. 하지만, 학생들과의 관계가 좋아지는 부분은 많이 있다. 대부분의 일을 대화나 상담으로 풀어가고, 학생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노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이해를 해주고, 대화를 잘 받아들인다면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학생들이 너무 예의 없고 버릇없게 행동할 때는 '매가 약이다.'라는 생각이 떠오를 때도 있다.



 

한 번은 A라는 친구가 전자담배를 몰래 피우다가 걸렸다. A가 전자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다른 친구가 보고 신고를 했고, 나는 출동했다. A는 내 모습에 놀랬고, 전자담배를 숨겼다.


"전자 담배 피웠니?" 내가 물었다.

"아니요, 안 폈는데요?" A가 말했다.

"다 알고 왔어. 주머니에 있는 거 꺼낼래?" 나는 A가 순순히 줄 것을 요구했다.

"아무것도 없는데요?" A는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주머니 뒤져도 되니?"

"내 주머니를 왜 선생님이 뒤져요?" A는 한껏 불편해하며 이야기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2개의 방법이 있다. 하나는 윽박지르고, 협박을 해서 주머니에 있는 전자담배를 꺼낼 때까지 야단을 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학생에게 설명을 하는 방법이다. 전자의 방법은 학생이 겁을 먹는다면 전자담배를 꺼내게 할 수 있지만, 학생이 끝까지 버틴다면 교사와 학생의 감정이 모두 상하고, 교사의 모양새도 우스워지게 될 수도 있다. 후자의 방법은 시간은 걸리지만, 의외로 학생들에게 먹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자기 고집이 강하고, 거친 학생들일수록 이러한 방법이 효과적이었다. 후자의 방법은 작게는 교칙에서 시작해서 크게는 헌법까지 들이댄다.


"우리 학교 학생생활규칙 제14조 2항에 의거하면 학생의 사생활의 자유를 보장하게 되어있지만, 다른 학생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칠 경우에는 소지품 검사를 제한적으로 실시할 수 있게 되어 있어. 니가 거부한다면 학부모님 입회하에 소지품 검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되어있어. 이건 헌법 제37조 2항에서 공공복리, 국가안전 등을 위해서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야. 그러니까 니가 소지품을 꺼내기 싫다면, 부모님께 전화드려서 오시면 그때 같이 보도록 하자."


그러고 나면 제 풀에 꺾여서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라는 류의 얘기들이 나온다. 그럴 때 보면 범인 체포할 때, 미란다 원칙을 읊는 형사도 아니고, 내가 아이들하고 뭐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물론, 과거보다는 훨씬 덜 폭력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교사와 학생 간의 대화라고 볼 때, 입맛이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학교폭력 가해학생을 대할 때는 이보다도 더하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상태에서 학교폭력 사안을 조사하다 보니, 절차나 방법이 더욱 형사 같아진다. 조사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할 경우, 변호사나 법률가들이 개입을 하게 되니 더욱 조심하게 된다.


 가해학생인 B가 C를 평소에 괴롭히고 놀리며 지내다가 학교폭력으로 신고당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러한 경우 나는 B에게 상담하자고 이야기만 하고, 학생부 상담실에 잠시 앉혀놓는다. 그리고는 '잠깐만 기다려.'라고 말하고 상담실을 나와서 2~3분 정도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 B는 영문을 모른 상태이기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이 곳에 올 만한 모든 이유를 떠올리게 된다. 불안함이 높아질 무렵, 나는 앞에 앉아서 학생에게 낮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던진다.


"내가 왜 부른 것 같아?"


 이 한 마디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막연한 질문에 대한 오만 가지 생각들이 교차를 하며,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를 고민한다. 대부분의 대답은 "모르겠는데요."이다. 그러면 한 번 더 생각하도록 막연한 한 마디를 던진다.


"C 알지?"


 이 상황에서는 잘못이 있는 학생들은 대부분 불안한 눈동자가 여기저기를 방황하거나 자포자기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이미 학생은 반 이상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상태인 것이다. 그 후에는 자초지종을 찬찬히 물어보며 상황에 대해서 들어보고, 야단과 충고를 번갈아 가면서 학생이 잘못을 뉘우치게 만든다. 물론 처리 절차는 앞에서 이야기 한대로 법률과 절차에 따라서 실행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겪게 되면서 나는 다시 한번 괴리에 빠지게 된다.


'나는 교사일까, 형사일까? '



 이러한 일을 8년 정도 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학생들도 나를 어려워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처음 교사를 시작할 때, 학생들에게 가깝게 지내며 친밀감 있게 지낼 수 있는 교사가 되려고 했었다. 지금도 그 모습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여전하다. 하지만, 학생들과 매번 규칙을 들이대며 이야기하고,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서 이야기하도록 만들다 보니 초임 교사 때의 마음은 저만치 가버린 것 같아서 마음이 힘들다.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역할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가치관과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말 못 할 답답함이 너무도 크다.  


6년 전에 학생부를 벗어나 다른 부서에서 일할 때, 우리 반 애들이 나에게 '선생님, 전보다 많이 웃으니까 좋아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때 알았다. 내가 많이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딱딱하게 인상 쓰고, 무섭게 이야기하고,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모습. 유쾌하고 즐거운 모습이 나의 모습이었는데, 몇 년 만에 이렇게 변했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회한이 남았다. 그래서 그 후로 전교생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외우려고 노력하고, 지나가면서 그 친구의 생활에 대해서 한 마디라도 건네고, 할 얘기가 없으면 쓸데없는 농담이라도 던졌다. 그러면서 학생부 교사의 딜레마를 조금씩 풀고 있다. 지금도 나 자신에게 되뇌이고 있다.


'나는 아이들과 많이 웃고 싶은 교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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