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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선생 Mar 18. 2020

식구지심(食口之心)

뜻 : 밥상 차리는 사람의 마음

 나는 요리를 한다. 요리를 시작한 때는 군대 제대 후 자취하면서부터다. 어머니께서 자취방으로 직접 공수해주시는 음식이 죄송스럽고, 라면의 조미료 냄새가 슬슬 거슬려질 무렵부터 요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시작했던 음식은 칼질을 적게 하는 음식들, 즉, 손이 적게 가는 음식들이었다. 주로 김치찌개나 계란말이, 계란찜 등의 간단한 음식들이었다. 생존을 위한 요리였던 만큼 오래 두고 먹어도 덜 질리는 음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나의 요리인생은 시작되었다.




 "인터넷 선생님"을 모시고, 생존 요리를 터득해가며 살아가던 중 파스타를 좋아하게 되었다. 과거 남자끼리는 절대 같이 가서 먹지 않는 음식, 그래서 소개팅이나 미팅 장소에서 여자에게 대접하며 먹었던 음식, 파스타. 맨날 '토마토소스 스파게티'만 먹다가 우연히 '봉골레 파스타'를 먹고는 파스타의 맛에 빠지게 되었다. 굵은 면을 좋아하고, 매운 음식에 약한 나에게 짭조름하며 고소한 파스타는 딱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가격과 그 양에 있었다. 당시 파스타의 가격은 보통 1만 원 내외였기 때문에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에게는 가성비가 낮은 음식이었다. 게다가 서빙되어 나오는 접시는 크지만, 그 양은-남자 기준으로- 너무 단출했다. 크게 3~4번 포크질을 하고 나면 행방이 묘연해지고, 식당에서 나오며 반드시 다른 무언가를 먹어야 할 것 같은 포만감(?)은 파스타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집에서 혼자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 레시피를 검색하며 기본적인 파스타를 만들었다. 그 맛은 물론 차이가 있었지만, 가격 대비 양에서는 만족스러웠다. 계속 만들다 보니 파스타 요리실력도 많이 늘었다.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시작으로 바지락과 모시조개를 이용한 봉골레 파스타, 생토마토와 토마토 페이스트, 페퍼론치노를 이용한 토마토소스 파스타, 생크림과 달걀, 치즈를 이용한 크림소스 파스타, 반찬으로 먹는 명란젓을 이용한 명란 파스타 등 여러 파스타를 요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다른 요리에 대한 범위도 넓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사랑하는 아이가 생기면서 내가 만드는 음식의 범위는 계속 늘어났다. 맞벌이로 늦게 오는 아내를 위해서 요리를 도맡아 하다 보니 저녁마다, 주말마다 '오늘은 뭐 먹지? 아이에게는 뭘 해줘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음식에 대한 고민을 하는 중심에는 항상 나의 가족이 있었다. 여러 재료를 손질하면서도 아이가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크기인가, 먹으면서 불편하지는 않을까를 고민한다. 국이나 찌개를 끓이며 맑은 국물을 좋아하는 아내를 떠올리고, 간을 맞추면서도 아이와 아내의 입맛을 떠올리게 되었다. 조리를 하면서도 식구들이 언제쯤 먹을 것인가, 음식이 식거나 불지 않도록 타이밍을 생각한다. 어떠한 그릇에 담아내면 맛있게 보여서 입맛을 돋워 즐겁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리고 식구들이 음식을 먹는 내내 신경을 쓴다. 너무 많이 맛을 봐서 구분도 안 되는 음식의 간이나 너무 뜨겁거나 차지 않을 음식의 온도를 신경 쓴다. 음식의 주인들이 만족하며 입안의 음식을 씹을 때,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막상 혼자 집에 있을 때는 아주 간단한 음식-계란 비빔밥, 고추참치 비빔밥, 라면 등-을 먹게 된다. 나를 위해서 누군가가 요리해주기를 바라면서 대충 먹게 된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나 자신은 더 이상 고민과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적어도 음식에서 만큼은. 어머니께서는 항상 밥상을 한 가득 차리시고는 "만들다 보니 입맛이 없어져서 많이 못 먹겠다."며 가족들에게 많이 먹으라 하신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시고 "간을 많이 봐서 맛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며 맛있게 먹는 가족들을 그저 바라보신다. 나만을 위해서 요리를 하던 20대의 나는 그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40대에 들어선 지금, 가족들을 위해서 요리를 하는 지금, 그 말이 사랑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새삼 깨닫게 된다. 집에서 직접 끓여서 한 냄비씩 자취방에 공수해 주시던 육개장 생각에 가슴 한 켠이 뜨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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