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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hea Feb 28. 2016

제7화. 나쁜 습관

체육관을 다닌 지도 벌써 몇 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철저한 이성과 나의 여태까지의 신념 그리고 본능과 나쁜 습관이라는 경계선에서 나는 아슬아슬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더 이상 내딛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무언가에 끌리고 있다..


남자를 다시 좋아하기엔 내 자존심이 용서치 않고 여태까지 내가 쌓아온 이미지와 나만의 가치관이 한꺼번에 붕괴되는 수가 있다.


하지만 어차피 끝이 보이는 관계, 시작하는 건 시간 낭비겠지. 당신이 어떻게 내 마음을 잡아당겨도 난 거기에 절대 말려들지 않겠다는 각오.


이런 내 각오를 비웃기라도 하듯 체육관을 들어서는 발걸음은 경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내 시선은 어느샌가 그를 쫒고 있었고 내 행동, 호흡, 손짓, 눈빛 하나하나 그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운동을 마치면 나를 따라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고 신호등을 기다릴  때까지 오지 않으면 조바심마저났다


난 주변 사람들 몰래 하는 이 아슬아슬한 썸 타기를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설렘과 짜릿함, 그리고 밑바닥에 어둡게 자리 잡은 불안함과 냉소가 어지럽게 뒤엉켜 이성적인 판단을 힘들게 하고 있다.


8월이 거의  마무리될 무렵 이제 더 이상 썸이 아닌 연인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우리 둘 사이에 확고히 자리 잡고 있었다


“달혜씨, 이따 저녁에 뭐해요?”


“퇴근하고  운동하러 가겠죠?”


“그러면 오늘만 운동 제낍시다! 우리 칵테일 한잔 하러 가요”


“조금  꺼림칙한데요, 우리 둘 다 동시에 빠지면 웃길 거 같아서요”


“괜찮아요, 정 뭐하면 달혜씨는 간단하게 마시고 운동하러 들어가도 좋아요~”


“일단 그럼 퇴근하고 만나요”


저녁 8시쯤 중앙동 처음 가보는 바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커플들이 오는 데는 아니고 여자들이 상주해있는 걸 봐서 접객용 술집 같았다


분위기가 영 이상해 간단하게 마시고 나갈 참이었다


“뭐 아무거나 시켜요, 저는 칵테일 잘 몰라서요..”


“그래요, 그러면 전 준벅 마실 께요, 달혜씨는요?”


“저기요, 여기 준벅 하나랑 스크루 드라이버 한잔 주세요.”


“달혜씨, 사실 오늘 제 생일이거든요, 근데 생일 챙겨본 적 없는데 오늘은 그냥 달혜씨랑 같이 있고 싶었어요”


“기연 씨.. 저번에도 말했듯이 전 남자가 싫어요.. 그리고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다시 누구랑 시작할 마음의 준비도 안 되어 있고요.. 저 성격도 안 좋고 겉보기와 달라서 감당하시기 힘드실 거예요”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마음을 못 열어요..? 말해줄 수 있어요?”


“그냥.. 번번이 실패했고 상처를 많이  주고받았어요, 그리고 다시 관계를  시작하는 데에 드는 에너지 낭비, 시간, 돈 낭비도 싫구요..”


“아.. 그렇구나.. 그래요. 사람의 마음은 잘 바뀌지 않는 거니까요, 그래도 전 기다릴 거예요”


어색한 분위기에 음료수처럼 벌컥벌컥 칵테일을 목으로 넘기다 보니 살짝 취기가 올라오고 있다


“이만 나가죠”


“좀 걸을래요? 달혜씨, 오늘 운동가지 말고 조금 걸어요”


“그래요.. 근데 조금 춥네요”


한적해진  밤거리를 나란히 걷고 있었다


한참 걷다가 그가 갑자기 돌아선다


“달혜씨..잠깐 이리로 좀 서봐요”



약간 굽이 높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도 내 키가 워낙 작기도 해서 까치발을 하고도 닿지 않을 만큼 그는 큰 키였다


그래서 인도 진입을 막기 위한 보도블록 위로 올라서며 눈을 치켜떴다


“왜 그래요?”


그도 살짝 취했는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눈빛이 이상했다. 그리고 한참 나를 바라본다. 이윽고 다가오는 입술


난 남자를 싫어할 뿐만 아니라 스킨십 조차 싫어해서 예전 애인들과도 많은 트러블이 있었다.


그냥 징그럽고 그런 행위가 죄스러운 거 같아 절대 즐기지 못했다


근데 지금 이 남자는 거부할 수가 없다


입 안으로 휘감겨 오는 혀를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긴 키스를 했다


정신이 아찔해지면서 눈빛이 몽롱해진다


긴 키스를 끝낸 후 우리는 지하철로 한 정거장 정도를 걸었고 우리 집 아파트 산책로에 도착했다


“늦었네요, 잘 들어가요, 저는 오늘 운동 쉬어야겠어요. 다리가 좀 아파서요…”


“그래요, 달혜씨 오늘같이 있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달혜씨 눈이 까만 게 참 예뻐요”


작업 멘트고 뻔한 대사임을 알고 있어도 괜히 가슴이 두근 거린다



그런 마음을 감추기라도 하듯 나는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 거울을 쳐다보니 두 볼이 발갛게 돼있다..


취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더 이상은 안돼, 서달혜.. 이이상 넘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


관계를 시작하기도 전 이미 결론을 내버리고 시작과 동시에 끝을 향해 달려가는 나의 못된 습관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내면 깊은 곳에서 꿈틀 거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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