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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hea Sep 03. 2015

에피소드 1.2 - 코피와 자전거

에피소드 1. 첫 만남은 코피로    




"달혜씨, 입회 원서 작성하시면 됩니다. 이 외에 다른  운동해보신 적 있으세요?"    



"네, 헬스 조금 했었어요.. 그리고 그 외에도 조금씩 했었구요."    



남자 냄새 가득한 체육관, 내 몸무게 보다 더 무거워 보이는 묵직한 샌드백들과 서랍 한 켠에 놓여있는 각종 미트와 글러브들.    

밴딩 하는  법부터 글러브 착용하는 것까지 상세히 설명을 들은 후 대 여섯 명 정도 되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처럼 보이는 남자 두 명, 그리고 복싱 선수인 혜선 언니와 첫 번째 복싱 수업을 시작했다.    



선수인 혜선 언니가 관장님의 조교로 수업을 진행했고 스트레칭으로 시작하여 가벼운 기초 운동, 케틀벨을 하고 난 뒤 일대일 타격 수업을 진행했다. 거울로 비친 내 모습을 잠깐 봤는데 그래도 각종 운동이라면 비슷하게 흉내 낼 정도였는데 너무 우습기 그지 없었다.    





'아.. 뭐야, 모양새가 전혀 안 나와. 너무 웃긴다 내 모습.. 그래도 처음부터 배워 가는 거니 언젠간 어색하지 않겠지'    



내 미트 상대는 혜선 언니였다. 처음부터 눈 여겨 보고 있던 상대가 하필이면..    




초보 주제에 언니를 신경 쓴다며 최대한 힘이 들어가지 않게 타격을 시작했다. 그렇게 3 라운드를 치고 나니 온 몸에 힘이 다 빠져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약 10여 분 뒤, 스파링이 시작되었다.    




'왠 스파링.. 난 링 위에 올라가 본 적도 없고 사람을 때려본 적도 없는데 이게 뭐지..'  


  

복싱은커녕 사람을 쳐 본 적도 없던 내가 링 위에 올라가서 스파링을 하라니.. 그것도 싫어하는 남자랑..  

  

그래도 호기심이 내 혐오감을 누르며 어설프게 링 위로 올라섰다.    



여자는 타격, 남자는 방어.    




어제 보았던 키 큰 남자와 하게 되었는데 나랑 키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타격은 둘째 치고 스치지도 못할 것 같았다.    





'에잇, 모르겠다. 재미로 하는 건데 뭐 어때, 일단 해보지 뭐'    





1 라운드를 알리는 시작종이 울리고 마치 결전에 선 선수처럼 마음이 간질간질 해오는 것을 느끼며 상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 키 큰 남자는 팔 다리가 길어 리치 범위가 나의 두 배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젠장, 파고들 틈이 없어. 어디서 어떻게 쳐야 되는 거야, 그냥 막무가내로 치면 되는 건가.'    



전혀  움직여지지 않는 몸과는 다르게 머리는 계속해서 굴러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어설프게 스텝을 밟으며 조금 씩 상대 품으로 파고 들면서 오른손으로 잽을 시도했다.    



 

'오.. 잽이 먹혔어! 맞았다'    





그러나 꽤 오래 동안 운동을 해온 것처럼 보이는 그 남자는 가드를 풀지 않고 나의 어설픈 오른손 잽에 꼼짝도 하지 않자 나는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다, 그냥 날려보자!'    





그리고는 내 오른 손에 여태껏 쌓였던 남자 혐오감을 가득 담아 어깨를 쭉 뻗으며 날린 스트레이트   


 

"퍽!"      



'마.. 맞은 건가, 손에는 느낌이 왔는데..'      





키 큰 남자가 우두커니 서있다 가드를 풀더니 얼굴을 드러냈다.      






"어,,? 엄마야!!!!!!!!!!!"    






너무 제대로 들어간 거지.    



남자  코에서 새빨간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 어떻게 해요! 죄송합니다!!"    



안절부절 하는 나를 등 뒤로 쏟아지는 웃음소리와 조금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남자.    




휴지를 한 움큼 뜯어다 가져다 주면서 괜찮 냐며 물었더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나를 오히려 안심시켜 주는 게 아닌가    



이건 뭔 여유야..    




사적인 감정이 들어간 펀치를 날리고 그 펀치에 맞아 누군가가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 너무 수치스러웠고 나는 운동할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무겁게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체육관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였고 항상 터널을 지나 신호등 두 개를 건너고 음악을 들으면서 다녔는데 그 날 만큼은 기분이 좋지 않았고 이어폰도 뺀 채로 멍하니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호등을 건너 터널로 걸어가고 있는데 자꾸 뒤에서 누군가가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도 간격을 조금 씩 두고 약 올리듯이 살살..      



'에이씨, 기분도 안 좋은데 어떤 새끼야..'      




인상을 힘껏 쓰며 뒤를 돌아보는 찰나      




노란색 얇은 프레임의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탄 남자가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에피소드 2. 제발 따라오지 말아줘.






"어디 가세요? 집이 이쪽 인가.."      




"네~ 우리 집도 이쪽으로 가요, 같이 가요"      




"네.. 뭐.."      





비록 같은 공간 안에서  운동하는 사이라고 할지라도 난 여전히 남자가 싫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앞으로 계속 봐야 할 사람이었기에 가면을 벗어 던져버릴 만큼 무모한 감행을 하고 싶진 않았다   


   

'아! 어색하다.. 이 분위기.. 난 그냥 조용히 집에 가고 싶었는데.. 왜 따라 오고 그러니, 너는 니 집에나 갈 것이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 새 자전거에서 내려 나와 나란히 발을 맞춰 걷고 있는 그 남자.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섰고 집이 어딘지 알려주기가 싫어 괜히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면서 최대한 빨리 떨궈버리려 얼른 인사를 청했다    



"전 이제 이 쪽으로 가면 돼요, 조심해서 가세요, 그럼!"      



"그래요~ 달혜씨도 조심히 들어가요~"      


      

23살 때 나를 지독히도 괴롭히던 연하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입대를 했고 나는 휴학하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나에 대한 집착이 점점 커져 나중에는 나를 천하의 못된 년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집까지 찾아와 방화 소동을 벌인 적이 있어서 절대로 남자에게는 집을 알려주지 않는 것이 우리 집의 철칙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은 엄마랑 나 뿐이었고 우리는 스스로를 방어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남자가 멀리 간 것을 확인하고 그제야 나는 단지 내로 들어섰다. 내가 왜 몇 분의 시간을 버려 가면서 이 고생을 해야 하는지 살짝 짜증이 났고 애써 기분을 추스 리며 샤워를 하고 잠에 들었다   








         

체육관에서 운동한지 어느덧 2 주가 되어 간다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도 몇 있었다. 혜선 언니는 분명 나보다 나이가 많다 그랬으니 언니가 분명하지만 그래도 서른 초반일 것 같고 사실 성인 남자 두 명은 많아 봐야 스물 대 여섯 살일 것 같았다. 딱 봐도 어려 보이는데 괜히 또 친해져서 말 섞거나 어떤 이벤트도 만들고 싶지 않았던 나는 정말 닥치고 운동만 했다.       



"달혜씨, 이거 와서 좀 드세요~"     


   

탁탁탁 -         




'운동하러 왔으면서 왜 이렇게 밤 늦게 야식을 먹는 거야.. 나는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고요, 얼른 운동 하고 갑시다!!'        




성인 수업이 끝나고 다 같이 빙 둘러 앉아 족발을 먹는데 나는 딱히 좋아하지도 않았고 줄넘기만 다 하면 준비해서 나갈 생각으로 열심히 뛰고 있었다.      




"와..달혜씨는 원래 뭐 하는 사람이에요? 왜 이렇게 혼자 체력이 남아돌아.. 운동 선수예요?"       


 

"아니요. 그냥 운동 좋아해서요."        



난 단지 빨리 운동을 끝내고 집에 가고 싶어서 남는 시간에도 계속 몸을 움직이고 있었던  것뿐인데 이 사람들 눈에는 내가 체력 괴물로 보였나 보다        



"저 먼저 들어갈게요, 수고하셨습니다."        



' 아.. 오늘은 그래도 많이 움직였다. 이제 타격 연습도 조금씩 해봐야 할 것 같아'     


     

운동이 조금 씩 가속도가 붙는 것 같아 내심 즐거웠고 또 다 같이 하는 운동은 처음이어서 낯설기도 했지만 분위기가 싫진 않았다. 다만 아무와도 깊이 친해지고 싶진 않을 뿐..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가기 위해 마지막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 순간     



   

"띠롱"          



  

뒤에서 자전거 벨소리가 들렸고 나는 굳이 알고 싶지 않고 또 알아차리고 싶지 않은 무언의 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얼른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       



   

'제발 빨리 집에 가자. 벨 누르지 마라. 부탁이다'        





  

한밤 중의 서스펜스를 찍는 사람처럼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고 엄습하던 불안감이 이내 현실로 바뀌는 순간.






           

"띠롱 - 달혜씨, 같이 갑시다!"     







         

'이런..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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