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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Feb 06. 2017

별안간 어머님

D+63, 싱크대 선반으로부터의 위로

오늘은 오전부터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갑자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창고가 되버린 방과 너저분한 부엌 청소를 했다.

이사오기 전만해도 창밖으로 보이는 마.운.틴 뷰의 이 방을 내 의식을 정화하는 공간으로 쓰고자 마음먹었었다. 근데 출산과 겹쳐 신경못썼고 내가 세상에서 젤 싫어하는 별로 쓸모없는 작은 물건들이 쌓이기 시작해서 그냥 뷰 좋은 창고가 되버렸다.

이제 춘이가 기어다니기 시작하면 한동안 더는 공간에 신경쓰지 못할까봐 오늘은 맘먹고 치웠다. 봄이 오면 이 공간에서 춘이랑 책도 보고 명상도 하고 컬러테라피도.....할 수 있겠지?!


다음은 싱크대 선반.

집의 특이한 구조상 부엌과 거실이 너무 가까워 항상 싱크대 선반위에 있는 칙칙한 색깔의 그릇들이 거슬렸다. 아니 몇년전엔 이쁘다고 산건데 그릇한테도 권태기가 왔다고 해야할까.

부리나케 몇시간을 치우고 쇼핑몰에 새로 생긴 북유럽의 다이소 플라잉 타이거에 가서 천원 단위의 물건 몇개를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골라담아왔다.

맘같아서는 내가 좋아하는 밝은 나무 톤에 갖가지 알록달록한 컬러들로 포인트를 준 내추럴하면서도 감각적인..ㅋㅋㅋㅋㅋ인테리어로 집안을 싹 바꾸고 싶지만, 여러가지로 무리다. 그냥 오랜만에 다채로운 컬러들로 눈요기를 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이럴수가...단지 그릇 몇개 샀을 뿐인데 선반 위에 가지런히 노여있는 컬러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렸다.

참 살다보니 이런 싱크대 선반에 위안을 받다니..별일이다.


오늘은 주말인데 좀 울적하다. 쇼핑몰에서 같이 이것저것 골라주고 카페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나눠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내 눈에 자꾸 들어와서인가, 울적해서 그 풍경들이 오늘따라 눈에 밟혔던건가..

우리 춘이,  젤 귀여운 시기지만 또 한편으로는 얼른 커서 나랑 제발 조잘조잘 일상적인 대화들을 하며 하하호호 돌아다니고 티비보고 밥먹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우리 춘이를 애인같이 아들같이 친구같이 잘 키워보고 싶다. 사춘기 오기 전까지만이라도!


오늘도 감사하게 춘이는 잘 자주고 있고, 나만의 공간, 수유의자에서 새빨간 딸기랑 찐득한 모유촉진차를 먹으며 도깨비와 함께 긴 하루를 마무리해야겠다.

컬러테라피에서 배운 '공간'의 중요성을 점점 더 느껴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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