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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톰 Dec 02. 2023

굽이굽이 외줄기

21일간의 자전거 여행

한 시절 자전거를 타고 우리나라를 여행한 적이 있다.

서초동을 출발, 천안, 공주, 군산을 경유하여 부산에 입성하였다.


7일째, 피로가 조금씩 누적되는 시점에서 '부산 10KM'라는 이정표를 본 순간 아톰의 에너지가 폭발급 충전 모드로 전환되는 기분이었다.


브레이크 패드의 마모로 내리막길에서 제동이 되지 않아 지유낙하의 속도로 고개를 내려와야 했던 위험한 고비가 있었고,

밀양에선 타이어가 펑크나 반나절 가까이 자전거를 끌고 수리점을 찾아 헤매기도 했었다.

맘심좋은 읍내 자전거포 주인을 만나 펑크수리와 간단한 정비를 받고(이 모든 게 무료)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자전거 포 주인과 나, 각각 3 병식의 막걸리를 마신 탓에 이슥한 시각, 음습한 곳에 텐트를 칠 때까지 내내 음주운전을 했었다.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서 두 분의 선배를 만나 해변의 모래사장에서 폭죽을 터트리고 조니워커를 마시며 호화로운 이틀을 보냈었다.

게다가 여비까지 적선해 주신 큰 형님들.

같이 자전거를 타고 경주까지 배웅해 준 선배와 그를 추종하는 2명의 무리가 있었고, 7번 국도를 따라 북상 중 임원항에서 같은 행색의 친구들을 만났는데, 자전거란 공유항을 가진 우리는 곧 의기투합되었다.

하여 모두는 내일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안주에 소주잔을 들이키며 밤새도록 열띤 토론을 했었다. 새벽까지 이어지던 녹색 빈병의 행렬.

밤 무수한 말들이 밤하늘의 별만큼 초롱 되었는지... 그대들은 그때의 유희를 기억하는지!


다시 동해안을 끼고 페달을 밟으며 속초에서 내 가슴속의 고래를 방류하였고, 엄청난 급경사의 한계령에서 자전거를 끌며 끌며 후퇴하는 패잔병의 모습으로 한계령을 넘었다.

굽이굽이 숨을 헐떡이며 운무에 둘러싸인 고갯마루에 섰지만 굽어 보는 한계령은 무한대 액자 속의 동양화같이 멋지더라.

"저산은 네게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그리고 21일 만에 다시 인 서울.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직선코스를 택하지 않고 공주, 군산을 경유한 까닭은 본래 서해를 끼고 목포를 거쳐 부산에 이르럴 생각이었지만, 공주에서 장마를 만나 비를 쫓아가는 형국이 되어버려 군산에서 부산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금강,갈길은 요원한데 날은 저물고

어느 페친님이 "흐리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우리"라고 하였던 가.

사진, '찰나의 화석'

책갈피 속에서 쏟아져 내린 몇 개의 찰나가 나를 미소 짓게 한다.


다시 지도를 펼치며 서해안 그리고 구석구석을  기약해 본다. 안식년, 아마도 내년의 내년 봄쯤이 되지 않을까.

그 봄이, 꽃피는 봄이 오면 나는 또다시 그립고 그리운 한반도의 지도 속으로 나를 내던질 것이다.

하여 시간을 차곡차곡 모으고 발로 꾹꾹 눌러 밟는다.

꽃피는 봄이

꽃피는 봄이 두 번 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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