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소심해지고 있다.
곰처럼 크고 털이 새하얀 거대 토끼를 품에 안은 꿈을 나의 태몽을 꾸고 토끼띠 해에 나를 낳았다고 아빠는 틈틈히 말씀해 주셨다. 그날의 흥분을 아빠의 목소리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였을까? 스스로 미친 토끼띠가 아닐까 고민하곤 했었다. 힘센 토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고 다시 한번 마음을 확인하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전투력과 추진력을 가진 토끼띠!
아담한 체구인 나는 유독 나보다 훨씬 큰 친구들이 많았다. 별스럽게 선생님들과 아주 가깝게 지냈던 것 같다. 방송반 활동을 하며 더욱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고, 젊은 새내기 선생님께서 방송부 담당이셨기에 더욱 재미난 행사도 많았던 것 같다. 남들이 대학에서 하게 되는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고,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많아지면서 얻어졌던 정보와 응원을 힘입어 여고시절 뭐든 척척해내고 완벽한 학교 행사를 준비하며 자신감 충만해진 나는 정말 미친 토끼가 되어 다양한 분야를 탐색하고 일을 키워갔다.
좋았다. 새로운 일들을 맡아 진행하고 완성시키는 크고 작은 일들이. 두렵기도 했고 많이 떨어야 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일단 선택하는 순간의 쾌감! 그것은 참 맛있었다. 그 어떤 최고의 음식 보다도~ 모든 일을 만족스럽게 해결해 온건 아니지만 대부분 시작한 일에 대한 결과와 책임을 졌고 대부분 만족해 왔다.
결혼을 하고 아이의 키우는 과정에서도 나의 열정과 에너지는 충분했었다.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선택하기 조심스러운 순간에는 "나는 미친 토끼띠다! "를 주문처럼 외치며 준비해왔다.
그런 내가 멋있었던 것 같다.
바쁜 일상 속에서 여러 가지를 해내야 하는 워킹맘으로 지내던 나는 언제부터인지 "미친 토끼"를 잊어버리고, 지치고 예민한 작고 소심한 토끼가 되어버린 것 같다. 꽤 긴 시간 그렇게 지냈다. 곰처럼 커다란 덩치에 하얀 털을 가진 거대토끼의 모습으로 "미친 토끼"의 힘을 다시 꺼내어야 할 때인 것 같다.
조금 더 용감해진 중년의 "미친 토끼"는 어떤 힘을 보여 줄지 ~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