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은 법보다 가깝고, 법은 보이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해가 지고, 등대의 빛이 막 비추기 시작하는 그 시간.
등대 밑에는 어떤 한 남자가 앉아 출렁이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다.
차가운 바닷바람의 그의 얼굴에 난 상처를 한번 더 할퀴고 지나간다. 얼얼해지는 얼굴을 감싸쥐며 그는 고개를 숙인다.
...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라는 존재는 등대랑 비슷한 것 같아."
"등대..? 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주먹질, 패싸움은 어린 아이들이나 하는 짓으로 생각하잖아? 그런 일을 벌이면 고소당하고, 벌금도 물어야하니 이것저것 귀찮아지니까 말이야..."
그는 좌우로 빛을 밝히는 등대의 불빛에 시선을 놓았다.
"그런데 신고를 하지 않는다면, 가해자와 피해자 이외에 그 누구도 이 일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지금 세상에서 그게 가능할리가 없잖아."
옆에 있던 친구녀석이 말했다.
"아니, 그건 우리가 불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거지. 보여지는 것들만 우리들에게 전달되거든."
친구의 입이 더이상 열리지 않았다. 내 말에 갑자기 생각에 잠긴 것 같다.
"신고를 하지 않으면 그건 세상에 없는 일이 되어버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 되는거지. 신고를 하지 않으면 그 가해자는 어떠한 처벌도 사회적 비판도 받을 수 없어.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은 평소의 가해자의 모습대로 대하고 어떠한 도덕적 책임도 묻지 않겠지. 그 뒷모습을 절대 모르는 채 말이야."
그는 친구를 바라보며 등대를 가리켰다. 친구의 시선도 그의 시선도 등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으로 향했다.
"어쩌면 이 사회라는 것도 저 등대와 같을지 몰라. 저 빛에 보여지지 않은 어둠 속에서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보지도 듣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거지."
친구의 시선이 등대의 빛을 천천히 따라가다 그것이 비추지 않고 출렁이는 파도의 움직임에 시선이 멈추었다. 그들도 빛 속에 보여지는 파도와 같이 소용돌이치기도 하고, 출렁이기도 하지만 어둠에 있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보여지지도 않았다. 그 안에서 벌어질 어떠한 일들도 우리의 관심을 살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든 순간.
"그럴 수도 있겠다."
친구는 손에 있던 약봉지를 그에게 넘기며 옆자리에 앉아 어둠을 응시한다.
약간 스산한 파도의 소리와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들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어둠 속의 파도들의 움직임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