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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이순 Aug 08. 2024

어설픈 시작은 많은 물음을 낳았다

몰경계 생활 #0 | 몰경계(언리밋북스)라는 이름

어설픈 시작은 많은 물음을 낳았다. "경계? 경계예요? 몰?"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었고, "몰경계가 뭐예요?"라고 묻는 이도 있는 반면, 다짜고짜 "여기가 뭐하는 데예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의 시작은 궁금증만 남겼고 우리에겐 풀지 못할 숙제만 남았다. 지난한 시절이 시작되었다는 걸 그때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많은 곳을 누볐다. 다양한 공간을 접했다. 커리어를 접는 대신 다른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간절해야 했다. 바쁘게 움직여서 많은 걸 담아야 했다. 주머니가 핼쓱하므로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걸 해내야 했다. 쫓기는 만큼 큰 도약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다. 정신만 다잡으면 몸만 버텨주면 해결되리라 믿었다. 그것이 오산이었다는 건 오래지 않아 밝혀졌다.


올해 4월 처음 열었던 부산대 북카페는 여러 문제로 두 달 만에 다른 공간을 알아보았다. 바닥 에폭시 작업과 전체 공간의 청소, 주방 정리와 폐기물 처리, 블라인드 제거 및 기초 인테리어 작업으로 오랜 시간 공들인 것에 비해 결과는 초라했다. 고통은 깊었고 결과는 얄팍했으니 초기의 열정은 사그라들기 충분했다.


우여곡절 끝에 부산대 매장을 정리하고 해운대에 자리를 잡았다. 부산대 공간은 카페거리 주변을 지나다가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면 해운대 공간은 미리 알지 않는 이상 볼 수 없는 곳에 있었다. 홍보가 절실했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기초 작업을 탄탄하게 하는 것이었다. 큰 도약은 바른 방향으로 발을 떼는 데 있다는 걸 지난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공간은 해운대 해수욕장의 메인 광장인 구남로 끝 이벤트광장에서 2분 거리에 있었지만, 오피스텔 내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있어서 쉽게 찾기 어려웠다.
지금과는 달랐던 초기의 모습. 시작은 언제나 초라했지만 그것을 가꿔가는 건 사람의 몫에 있음을 안다.


바닥 청소를 비롯해 기초 작업을 끝내고 텅 빈 공간에 앉았다. 도대체 이 공간을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꾸며야 사람들이 찾고, 방문한 공간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을까. 그런 물음은 며칠 간 계속되었다. 해답은 없었다. 해답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 더듬거리면서라도 스스로 찾아야 했다. 나와 동생은 짧은 명상을 뒤로 하고 애타게 답을 찾았다. 부단하게 움직였고, 치수를 재고 그에 맞는 물건들을 들이며 공간을 조금씩 바꿔나갔다. 결과가 어떻게 되더라도 상관없었다. 당도한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중요했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컸던 언리밋북스의 초기 모습. 공간은 공간을 채우는 자의 몫에 달렸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서점 등록을 위한 행정 처리와 네이버 예약 서비스를 세팅하기 위한 지난한 과정, 여러 집기를 들이고 책을 들여놓고 조명과 플랜트로 인테리어를 하는 시간, 안내문과 공유 익명 노트를 준비하며 디테일을 잡아갔던 순간들이 길었다. 2주 만에 준비를 마치고 오픈하자고 한 것이 무색하게도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렸다.


공간 구획을 짜고 그에 맞는 물건을 들이는 일은 우리 같은 DIY 초급자에겐 무리였지만, 과정은 고되더라도 결실은 달콤할 거란 믿음을 버리지는 않았다.
조금씩 모습을 찾아가는 공간들. 그러나 과정 속에 빠져 있을 때는 그것의 끝을 보지 못하니 답답하기만 했다.
밤은 길었다. "사장님 도대체 언제 오픈해요?" 그런 말을 수없이 들었다. 한여름이 되어서야 마무리가 되어갔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여름의 중반을 넘겼다. 처음 하는 일은 부침이 잦았다. 다툼이 깊을수록 모든 걸 내팽겨치고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기로 했다. 정면돌파. 그것은 자가면역질환과 아버지의 그늘 같은 오랜 숙명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처럼 보였다. 나는 참았다. 그리고 달렸다. 달리는 자는 자신의 발밑만 보고 달리므로 다른 것에 신경쓸 겨를은 없었다. 모든 건 시간이 증명해줄 거라 믿었다.


조금씩 공간은 제 모습을 찾아갔다. 하나하나 손수 만드는 재미는 여전히 내게 소중했다.
선과 악의 경계가 없다는 뜻으로 시작한 몰경계, 이제는 언리밋북스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우리 정신의 근본은 바뀌지 않았다. 이것은 보는 사람에 따라 불쾌/호쾌로 나뉠 것이다.
공간은 사적이면서도 공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휴양지에서 색다른 쉼터를 찾는 사람이라면 썩 괜찮은 선택일 수 있다고 자부한다.
다양한 책을 구비하고 싶었다. 이전 매장에서 실패가 아니었다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이만큼이 한계다. 그러나 삶은 계속 이어지듯 언리밋북스도 계속 자라날 것이다


두 달 간 고통의 시간이 지나갔다. 행정처리를 비롯해 예약 서비스 세팅도 마무리되었고, 주방 공사와 디테일한 작업들이 정리되어갔다. 공간을 이용하는 손님들의 선택지를 다양하게 넓히기 위한 셀프바 내 음료와 제조 음료, 주류 판매를 위한 준비를 비롯해 소모임이나 독서모임 등을 위한 공간 세팅 등을 마치면 얼추 마무리가 된다. 이제부터는 디테일을 강화해나가고 조금씩 더 우리만의 색깔을 입히기만 하면 된다. 


몰경계의 시작에서 언리밋북스로의 이동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오랜 시간 고통을 받았고, 몸이 좋지 않은 나는 여러 치료와 병행해야 해서 더 고되었다. 그럼에도 고통의 시간이 고통으로만 끝나지 않고 밑거름이 되어 더 큰 나무가 될 자양분이었음을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IT 회사의 기획자이자 운영자로 일을 하다가 또 다른 길을 선택한 지 반 년이 훌쩍 넘었다. 이제는 외부의 선택을 받아야할 때다. 방문자들이 평안한 경험과 다양한 책들로 시야를 넓히고 자기만의 시간을 온전하게 가지고 가는 시간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앞으로 공간을 만들어가는 우리들의 작지만 알찬 이야기들도 쌓아나가 보겠다. 작은 발걸음이 큰 도약이 되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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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리밋북스는 예약으로 이용하는 공유 서재입니다. 개인 작업과 책 읽기, 글쓰기, 휴양 등 색다른 공간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를 원하는 탐험자들의 방문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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