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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세현 Sep 30. 2022

시험이 내게 가져다준 것들

이 세상 모든 고시생들에게 

오랜만에 글을 쓴다.


지난 2년간 나름 어려운 시험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이렇게 한 가지일을 오랫동안 해본건 정말 처음인것 같다. 강제성이 없는 일을 자진해서 거의 천일 가까운 시간을 보낸 것이다. 방금 저 문장을 쓰고 나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스스로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험합격이 아니라 시험준비에 칭찬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과정을 오롯히 알고 있는 나 자신만이 진심어린 칭찬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나 혼자 내 자신에게 참 잘했다고 칭찬해준다. 시험 결과가 안나온 지금이 정말 순수한 칭찬을 할 수 있는 시기기도 하다.


2년이 넘는 시간을 준비했음에도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 

이제는 초시생의 천진난만함도 벗겨졌고, 어떤 질문을 던질때 참 창피하기도 하다. 이 시간을 투입해 놓고 겨우 이 정도도 모르나 싶어서. 


그래도 서점에 가서 내 분야 책 코너를 가보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책이 거의 없다. 이 사실을 얼마전에 알았는데, 그동안 내가 쌓아온것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되는 순간이었다. 처음 이 공부를 시작했을 때, 용어 하나를 이해하지 못해서 같은 페이지를 수십번 들춰 보던 때를 생각해보면 말이다. 


내가 쌓아온 것이 눈에 보이지 않아 아쉽다. 난 지난 2년간 정말 많이 성장했는데 정작 눈에 보이는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겉모습은 많이 초라해졌다. 그래서 이 글을 써서 미약하게나마 흔적을 남기려고 한다. 내가 지난 2년간 얼마나 찬란한 시간을 보냈는가 말이다. 


이런걸 보면 왜 고시생들이 블로그를 운영하며 기록을 하는지도 이해가 된다. 나 이만큼 해내고 있다는 일종의 발악일 것이다. 고시생활은 참으로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매일 매일 보이지 않는 벽을 깨부수고, 공중에서 싹을 틔워내는 일이다. 당장 아무런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 일을 계속 반복하는게 옆에서 보기에는 저런 후진(R)도 없다 싶을 것 같다. 


회계에는 "발생주의"라는 개념이 있다. 이랬다 저랬다 정신 없이 살아온 나에게 합격은 발생주의라는 어떤 스타강사님의 한 마디는 매우 큰 울림을 주었다. 아직 나에겐 합격이 실현되지 않았지만 내 안에는 합격이 조금씩 조금씩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비단 합격 뿐 아니라 모든 일이 그렇지 않겠는가?


가볍고, 짧고, 얕은 것이 대세인 세상에서 진지하고 우직한게 얼마나 구식인지 생각해본다. 당연히 이런 자문에 대한 답을 내릴 수준은 못된다. 언젠가 이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남은 삶의 방향성을 갖고 있는 자와 아닌 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소결정도는 내려본다. 


아무것도 모르겠던 애가 방향성 정도는 알겠는 애가 되었다. "발생주의"말이다. 참으로 멋진 개념이다. 만일 무언가를 섬겨야 한다면 신이 아니라 이 원칙을 섬기겠다.  


에너지를 모으는 것도 고시생활동안 내가 해온 일이다. 그 동안 에너지를 사방에 분출하며 얼마나 내 에너지를 낭비했나 싶다. 고거하나 집중해서 고거하나 해내기도 정말 어려운일인데. 이걸 이제야 알았다. 쉽게 하고 싶었다가 금방 좌절하고 돌아선 일이 얼마인지 떠올려본다. 벌려놨다 수습하지 못한 일도 떠올려본다. 


죽을 때 마무리 해논일 하나 없이 죽지 않으려면 하나에 집중해서 에너지를 쏟는 연습이 필요 할 것 같다. 특히 나처럼 하고 싶은게 많은 사람한텐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뭘 시작했었는지 조차도 기억하지 못할 거다. 하나라도 해낸 사람이 하나도 못해낸 사람보다 훨씬 더 나으니깐 말이다. 정말이지 삶의 물살에 휩쓸려 이리저리 살다가 죽고 싶진않다.


천천히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 하는 일이 얼마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하는지도 가늠하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가? 그 시간동안 스스로를 기다려주지 못하는건 또 얼마나 멍청한가? 그동안 내가 한 일의 대부분은 이런 과정의 반복이었다. 총량과 일일 한도를 아는 것. 이것도 인생 현명하게 사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 까 싶다. 


여전히 혼란한 인생이지만 그래도 중간 정리정돈 정도는 해본다. 이 글의 제목이 "시험으로 잃은 것들" 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이 단편의 글이 일종의 자기위로 내지 합리화로 비춰질지라도 그다지 상관없다. 고시생활동안 나는 중요한 것 외의 것은 전부 무시하는 법도 배웠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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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좋은 나이는 스물여덟살이죠.

골치 아픈 문제에 휩쓸리지 않을 만큼 요령이 생기고,

젊음의 에너지가 있어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는 나이잖아요.


비비안 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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