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업계를 중심으로
WTO체제로 중국에 전세계 기업들이 몰려들어 자사의 제품을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만들면서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일자리가 폭발하면서 농촌인구가 도시로 몰려들고 도시화와 함께 빠른 속도로 중산층이 성장하면서 14억 인구의 중국시장은 거대 소비시장으로 바뀌어갔다. 그러다보니 코로나 이전의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자 세계의 시장이 되어 전세계 모든 브랜드의 각축장이 되었다.
한국기업들에게도 중국시장은 가장 유혹적이고 달콤한 시장이 되었다. 지리적 이점이 있었기에 우리나라 많은 기업들에게 지금껏 누려본 적 없는 큰 성장의 기회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하지만 사드사태로 인한 한한령과 코로나 이후 급속하게 폐쇄적인 사회로 전환된 중국시장에서 그동안 호황을 누려왔던 한국기업들은 더이상 과거의 호황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사드보복조치인 한한령에 의해 K-엔터테인먼트, K-드라마,K-pop등이 어려움을 겪고, 한때 한류붐을 일으킨 K-뷰티는 코로나 폐쇄정책까지 얹어지며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많은 기업들이 사드문제가 해결되면 괜찮아지겠지, 코로나가 끝나면 다 괜찮아지겠지 라고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가 많은 영역에서 중국브랜드들이 급속도로 성장하며 한국브랜드들을 대체하는 것을 보며 이번에는 또 정치적인 무역장벽과 소비자들의 국수주의적인 소비행태의 문제라고 해석하고 있다. 중국에서 잘 나갈 때는 중국사람들은 K-SOMETHING에 열광한다고 마음대로 정의하고 지금은 궈차오(國潮)의 문제라고 임의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잘 나갈때도 어려워진 지금도 외부환경탓을 하며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이미 그 이전에 징조가 있었다. 삼성의 갤럭시폰이 한때의 영광을 뒤로 하고 1퍼센트의 점유율조차 지키기 못해 존재감조차 없는 폰이 된 것이 이미 코로나 이전이며 현대기아차의 자동차 역시 중국의 자동차회사에 밀리고 있었다. 문제의 본질은 구조적인 시장변화에 있으며 중국에서의 경쟁환경이 바뀌고 있고 소비자들의 소비행태, 소비 라이프스타일도 바뀌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깊이 이해하고 어떤 혁신을 통해 시장에서 결과를 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대신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일들이 일어났었다. 한국에서도 일제, 미제, 프랑스제를 최고라고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 시기를 거쳐 자국 생산의 제품, 브랜드들로 소비자들의 선호가 옮겨가는 경험을 했듯이 중국도 그런 시기를 거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개발도상국 시기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먼저 발전의 길을 걸어간 나라들의 브랜드와 제품을 선망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새로운 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회가 매년 성장하다보니 뉴브랜드, 뉴아이템, 뉴프로덕트들에 대한 선망을 갖게 된다. 한국 사람들도 일본에 가면 밥솥이나 전자제품을 사오고, 미국 GAP아웃렛에서 옷을 사오고 유럽 '몽쥬약국'쇼핑을 하고 해외에 나가는 이들편에 면세점 대리구매 등을 했었다. 지금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렇지 않다. 한국의 삼성전자가 소니를 제치고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일본의 자동차와 나란히 경쟁을 하거나 더 앞서가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들을 보고 자란 세대는 일본에 대해 열등감을 갖지 않는다. 심지어 이제는 K-컨텐츠가 미국이나 유럽에서 성공하게 됨으로써 미국이나 유럽에 대한 열등감도 없어지는 중이다. 가트협정으로 우리나라에 쏟아지게 된 해외농산물에 대해 방어적으로 생겨난 신토불이(국산농산물애용운동의 일환)와는 다른 것이다.
지금 중국의 궈차오는 이런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중국의 쥬링호우(90년대이후 출생한 이들을 말한다.) 이후의 세대들은 해외의 브랜드와 아이템에 대한 열등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다. 바이췌링이나 화씨즈와 같은 브랜드가 고풍스런 디자인을 하고 있다고 해서 중국소비자들이 국수주의적인 소비태도를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국산품애용운동같은 것도 아니다. 젋은 세대들에겐 레트로적인 새로운 이미지 제품일 뿐이다. 우리나라 카페나 술집에서 구한말이나 일본풍의 인테리어 디자인들이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끈다고 해서 국수주의적이나 일본을 추앙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한국술이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끄는 것 또한 그들 세대에게 새롭기 때문인 것과 같다. 중국도 자신의 로컬 기업의 상품이나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생겼고 그 브랜드의 됨됨이에 따라 스타일에 따라 선망할 수도 좋아할 수도 가성비 있는 상품으로 유용하게 선택할 수도 있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중국로컬브랜드 제품도 해외제품보다 싸지 않으며 다채로운 가격대와 스타일로 전개되고 있다. 중국의 로컬 브랜드와 상품만으로 모든 세그먼트가 충족될 수 있도록 시장이 바뀌고 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양질전화도 일어난다.
이렇게 성장한 중국시장에 한국기업과 브랜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그저 포기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전세계를 떠돌아 다녀야 하는 걸까. 미국과 유럽 시장은 한국 브랜드와 아이템을 선망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곳엔 따이공(보따리장사)도 없다. 법규도 까다롭고 언어, 문화적인 장벽도 강하며 글로벌 브랜드들의 홈그라운드이다. 우리 기업과 브랜드가 플레이하기엔 어려움이 많은 시장이다. 대부분의 한국 브랜드는 한국에서 성공한 브랜드나 기업이라 할지라도 미국이나 유럽시장에는 신생브랜드나 다름없다. 속된 말로 그 나라 소비자들에겐 듣보잡이다. 그렇다면 동남아 시장으로 갈 것인가. 발전정도의 격차도 있고 한국에 대한 선망도 이용할 수 있다.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아시아에선 인구가 큰 인도네시아나 제 2의 중국이라 불리는 베트남이나 태국, 말레이지아 등을 공략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장들은 개발도상국에 머물러 있고 중산층이 충분치 않은 시장이므로 선제적인 투자와 인내심이 필요한 시장이다. 매스한 시장에서 현지에 로컬라이징된 마케팅을 통해 성공한 아주 드문 사례가 있긴 하다. 이는 한국에 대한 선망을 이용해 성공한 것이라기 보다는 현지 문화와 유통환경, 소비자들의 취향을 철저하게 반영한 로컬전략에 기반한 성공이었다.
중국에서 한참 주가를 올릴 때의 한국브랜드 포지셔닝은 해외 수입브랜드 중 접근가능한 엔트리프리미엄 브랜드의 역할이었다. 이 포지셔닝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지점이 있다. 중국인들도 다양한 국가로 여행을 다니고, 정치적인 영향에 따라 선호하는 국가도 바뀌게 되었다. 태국 호주 일본 대만 등을 자주 다니면서 중국인들의 생각도 바뀌게 된다. 뉴질랜드나 호주 등의 청정함이 한국의 깨끗함을 앞서게 되었고, 동남아시아의 먹거리나 향, 기후적인 특성 등은 한국에 비해 더 친숙하다. 그러다보니 태국의 브랜드 등을 더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중국의 남쪽지역과 동남아시아에는 지리적, 문화적 연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현재 럭셔리와 가성비 시장으로 양분된다고 흔히들 얘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층위의 소비자가 존재하며 다양한 세그의 시장에 충분한 규모의 소비자가 있다고 봐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10배 아니 100배의 브랜드들이 그 시장들을 놓고 각축전을 벌이는 무한대 경쟁시장이기도 하다. 지금은 럭셔리를 제외한 모든 세그에서 중국브랜드가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거기서 한국브랜드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유행처럼 탈중국을 얘기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은 매력적인 시장이다. 서구시장에 비하면 지리적, 문화적 동질성이 강한 시장이고 한국의 화장품에 대해 우호적인 소비자가 많은 시장이다. 중국시장을 50조 규모라고 생각했을때 1퍼센트만 놓고 보아도 5천억시장이다.
우리는 이제 규모, 스피드, 시장에 대한 우위 모든 면에서 열세인 상태에서 더욱 뾰족하게 시장을 공략해야만 한다. 중국의 인디브랜드는 자본의 투자를 받아 시작하는 뷰티스타트업이 많아 투자여력이 많다. 한국브랜드가 감당할 수 없는 마케팅 비용을 쓴다. 한국처럼 한두명이 소규모, 소자본으로 개인의 감각에 기대 시작하는 인디브랜드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래서 한국브랜드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이제 우스갯소리로 말해왔던 1퍼센트 소비자를 잡기위한 니치전략뿐일 것 같다. 한때의 묻지마 소비는 없어졌지만 메이드인코리아에 대한 가치,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 브랜드에 대한 중국 소비자들의 소비코드를 그려보는 일이 매우 유용하다. 과거와는 다른 생각의 지도가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유효한 기회코드를 찾아 매력적인 컨셉을 가진 상품을 만들 수 있는 브랜드를 기획한다면 규모의 경제 측면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더 본격적으로 중국시장에서 경쟁하고자 한다면 중국소비자들의 아름다움, 화장품 등에 대한 생각의 지도를 그려서 거기서 발견한 기회코드로 중국시장에 진출하게 되면 더 좋은 성과를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