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洞人_ 3. 영화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2015)
‘Persona’ 본래의 자아와 다른 사회적 인격, 일종의 가면을 뜻하는 단어이죠.
내면의 약한 부분을 감추고 타인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적 역할과 위치를 감당하기 위해 우리는 종종 이 가면을 쓰곤 합니다.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한 가지는 분명하죠. 그 가면은 진짜 내가 아니라는 것 말입니다.
과도한 경쟁 속에서 생존이 중요한 키워드가 되어버린 우리는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을 위험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표출함으로써 부정적 영향력을 갖게 된다면 책임져야 하는 무게도 상당하고요.
그래서 때때로 감정 통제를 잘하는 사람을 성숙한 어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자 지혜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감정을 무작정 억제 할 때
고인물이 썩듯 어느 순간 마음과 생각이 마비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결국 가면만 남고 진짜 나는 회색빛 돌로 굳어가는 거죠. 생명력을 잃은 채...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다섯 가지 감정들이
이사 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라일리’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컨트롤 타워의 리더는 ‘기쁨(Joy)’이죠.
라일리에게 행복한 기억만 만들어주기 위해 다른 여러 감정들을 통제하며
그녀의 가족, 우정, 하키, 엉뚱, 정직 왕국을 평화롭게 잘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슬픔이가 돌발행동을 하기 전까지 말이죠.
라따뚜이, 몬스터 주식회사, 토이스토리를 만든 픽사 작품의 특징이에요.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어른 가슴에도 어떤 그림 하나씩을 새긴다는 것 말입니다.
볼 때는 무척 즐거웠는데 돌아와서는 새겨진 그림 때문에 마음이 좀 시렸습니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니 저 역시 기쁨이처럼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적이 많지 않았습니다.
직면하게 되면 눈물에 삼켜질까봐 두려웠던 거죠. 실패를 경험하거나, 실연을 당한 후에 스멀스멀 슬픔이 올라오려고 하면 최대한 밀어내어 발끝으로 보내어 버리고, 더 바쁘게 씩씩한 척 하며 지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극복이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일과 사랑을 시작하게 되면 어김없이 발끝에 내려갔던 슬픔이 두려움, 혹은 분노로 변하여 발목을 잡게 되더군요.
극복이 아니라 은폐가 된 감정들은 성장의 독이 되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느끼게 되는 각각의 감정을 직면하는 훈련이 제게 필요한 것 같아요.
‘나는 무조건 행복해야 해’, ‘나는 괜찮아야 해.’라는 강박을 버리고 슬픔은 슬픔대로, 분노는 분노 그대로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과 노력 말입니다.
도저히 이겨내기 어려워 보일 수 있지만, 그 두려움 속으로 들어가 버티다 보면 보물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기쁨이 슬픔의 가치에 대해 깨달게 된 그 순간처럼 말이죠.
성숙한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감정과 생각을 통제하는 데 능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두 가지 이면을 이해하게 된다는 의미 같습니다.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나를 치유할 수 있는 힘도 여기서부터 시작 되지 않을까요?
영화가 저에게 준 메시지를 다소 무겁게 전달했지만, ‘인사이드 아웃’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달콤한 빛깔로 채색하기에 더할 나위 없고, 어른들에게는 선 굵은 감동을 줄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인사이드 아웃’의 슬로건처럼 진짜 나를 만나고 싶은 분은 라일리의 감정 컨트롤 본부를 방문해보세요.
다섯 명의 유쾌한 친구들이 여러분의 무거웠던 가면을 벗기고,
회색빛이 되어버린 마음을 치유해주기 시작할 겁니다.
-에필로그-
평일 오후에 극장을 찾았어요.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없고, 그 많은 좌석을 어른들이 채우고 있더라고요.
재미있다는 입소문 영향도 있겠지만,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이 필요한 어른들이 많은 것 같아
한편으로는 씁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