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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화洞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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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마 Sep 01. 2015

결핍은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인가?

영화洞人_ 4. 영화 '마돈나'

최근에 이별을 했습니다. 술잔을 따라주던 친구가 뜬금없이 "너는 블랙홀 같다."고 말하더군요.

결핍을 채우기 위해 사랑을 하지만 채워지는 사랑에도 만족을 모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진짜 사랑을 하고 싶다면 내면에 가진 상처부터 보듬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술잔만 비웠던 기억이 나네요.


얼마 후에 영화 '마돈나'를 보게 됐습니다.

영화는 '마돈나'라고 불리던 신원불명의 사고 환자, 미나의 삶을 추적하면서 그녀의 상처와 결핍을 조명합니다. 감독은 극 중 재산을 갖기 위해 억지로 아버지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상우'의 부와 권력을 미나의 인생에 점철된 결핍과 대비시킵니다.

그리고 다양한 인물이 얽히면서 돈이 죽음을 낳고 결핍이 생명을 낳는 결말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죠.


부와 권력의 파괴성, 사랑과 결핍, 출산과 생명.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섬세하면서도 복합적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미나에게 상처만 주고 이용하는 주변 인물들과 그녀를 계속 강바닥으로 침전시키는 결핍과 아픔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미나는 부모의 따뜻한 사랑 대신 가난한 환경에서 할머니 손에 키워집니다.

학창시절 선생님과 학생들의 따돌림도 있었죠. 그녀는 제대로 된 자존감과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특히 미나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직장 내 선배에게 사랑을 느끼면서부터입니다.

불행한 환경에서 자란 그녀는 약간의 호의를 보여준 남자에게 빠져서 몸과 마음을 다 이용당하고 버려지게 됩니다.


 ‘만약 미나가 결핍 속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어설픈 관심에 마음을 빼앗길 만큼 사랑에
  목말라 하지 않았더라면,

  스스로를 소중히 할 수 있는
  자존감이 있었더라면,

  미나의 인생은 불행으로
  점철되지 않을 수 있었겠지.’


영화를 보는 내내 미나가 자신의 힘으로 극복해 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마치 그날 밤 친구가 술잔을 기울이며 제게 해줬던 충고처럼 말입니다.

결핍은 타인을 통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상처를 보듬고 자존감을 되찾아야 한다고,

그러고 난 후에야 진짜 사랑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미나에게 계속 말했습니다.

그건 아마 저 자신에게 하는 얘기였을 것입니다.


역설적이지만 미나의 인생에 찾아온 한 줄기 희망은 불행한 사건으로 시작됐습니다.

텔레마케팅 회사에서 쫓겨나 취업한 화장품 공장에서 사장의 조카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말죠.

최악의 상황에서 잉태된 아이를 미나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지키려고 합니다.

결국 미나의 생명이 꺼져가는 중, 그녀의 과거를 추적하던 간호사 해림을 통해 아이는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영화가 끝나고 한동안 멍하게 생각에 잠겼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나간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처음엔 막연히 타인의 영향과 도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만 천착해 답을 찾아내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영화 '마돈나'를 통해 미나의 삶을 들여다보며 조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녀에게 찾아온 마지막 희망은 성폭행이라는 최악의 타의에 의해 잉태되고, 해림이라는 또 다른 타자를 통해 완성됩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뱃속의 아이에게 사랑을 느끼고 생명을 선택한 미나의 의지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녀의 삶이 굴복 당했다고 판단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고요.     


좋은 관계든 나쁜 관계든 우리의 인생은 마주침의 연속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극복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모든 것을 홀로 이겨낸다는 뜻이 아닌 것 같습니다.

도리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우연적인 사건 속에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고 선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그녀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사람들과의 사건이 정당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점층적으로 가해지는 폭력과 아픔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었던 그녀의 의지와 선택이 주는 메시지에 초점을 맞춰보자는 것이죠.)


결핍을 스스로 완전히 극복한 후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버렸습니다.

‘스스로’, ‘완전히’ 두 가지 모두 불가능한 단어이기도 하지만 관계 속에서 바르게 선택하는 것, 의미를 발견하는 훈련이 저의 모자람을 채우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머지않아 제 삶에도 희망과 같은 진짜 사랑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연 (취미는 영화, 사는 곳이 영화동)     



-에필로그-

영화 ‘마돈나’는 칸 국제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죠.

이미 명왕성의 신수원 감독, 서영희 주연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화제가 되는데 부족함이 없던 것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영화洞人은 저의 삶을 반추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메시지를 전달해드렸네요.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게 말이죠.영화 ‘마돈나’가 주목하고, 고발하고 싶었던 것은 약자를 침전시키는 자본주의적 계층의 부조리함, 힘과 권력의 폭력성 측면이 더 클 것입니다.

저의 이야기는 각론으로 삼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어요.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올 해 한국영화의 획을 그을 수 있는 한 작품으로서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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