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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마 Sep 23. 2015

당신이 나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었더라면...

영화洞人_ 5. 영화 '사도'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두 개의 방이 있습니다. 

이곳은 엄마와 아빠의 사랑으로만 채울 수 있습니다.  한 쪽의 사랑이 크다고 해서 부족한 방을 대신 채워줄 수는 없어요. 비워져있는 방안은 이따금씩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얼음가시가 생기기도 하고, 내리쬐는 태양 볕에 가물어 메말라버리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성인이 되어서 발현되는 자아의 문제들은 어린 시절, 비어있는 마음 속 방이 원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 ‘사도’는 역사 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었던 영조와 사도세자의 임오화변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이미 여러 편의 드라마와 영화로 재구성되었지만 이준익 감독의 ‘사도’가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정쟁이 배제되고,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서사의 중심에 두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재의 부모 자식이 겪고 있는 갈등과 오버랩이 될 만큼 감정적 거리감이 좁아 극 중 인물들에게 더 몰입할 수 있었던 전개였습니다. 


세자 나이 4세부터 14세까지 총 다섯 번 일어난 영조의 양위소동.
왕세자에 대한 높은 기준과 기대감, 그로 인해 도를 넘어선 경책.
손과 발이 묶인 채 왕의 자격을 평가 받아야 했던 대리청정.


세자가 겪어야 할 정신적인 충격과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요?

어긋난 부자의 시각과 사랑이 세자의 죽음으로 치닫을 즈음엔 영조에 대한 분노로 마음이 매우 불편해졌습니다. 제게도 있는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감정이입이 컸기 때문이겠죠. 



사춘기 소녀들이 그러하듯 저도 초등학교 6학년 때 H.O.T의 열성적인 팬이었습니다. 

저금통을 다 털어 포스터, 엽서, 그들의 기사가 담긴 잡지로 제 방 도배를 새로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얼큰하게 취해 들어오셔서는 토니안 사진이 떡 하니 붙어있는 다이어리 하나를 주셨어요. 선물이라고요. 난생처음 아버지에게 받아 본 선물에 머뭇거리고 있는 저를 꼬옥 안아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방으로 돌아와서 조금 울었던 것 같아요. 그와 같은 일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던 기억은 안타깝게도 정말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부정(父情)은 제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보다 아버지의 사랑을 모른다는 것이 때로는 더 큰 걸림돌이 된 적도 있습니다.

뒤주에 갇혀 숨을 거두기 직전 영조와 사도세자의 들리지 않는 대화가 무척 이질적이게 느껴진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   


아이에게는 사랑이 필요하다. 부모가 필요하다.  
자기를 안아주는 사람,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 그 품에서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의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 -


영화洞人을 위해 몇 가지 자료를 찾아보다가 사도세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있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임오화변은 당쟁에 의해 사도세자가 희생된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사랑을 못 받은 아들이 분풀이로 사람을 죽이고, 부왕을 살해하려다 죽음을 당한 사건 일 뿐이라고요. 

판단은 충분한 고증이 필요한 것이겠지만 그 글을 읽으며 더욱 분명해진 것은 아이에게는 부모의 건강하고 바른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와 의미 없지만, 어린 시절 저의 방에 아버지의 사랑이 가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아마도 많은 것들이 달라졌겠죠. 이를 테면, 이성을 대하는 태도, 연애의 습성, 결혼관 등 말입니다. 

지금보다 훨씬 관대하지 않았을까요.


영화 ‘사도’는 세상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부모’님들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여전히 사랑보다는 욕심이, 용납보다는 강요가 더 많은 우리의 양육방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거에요. 


에필로그
유아인이라는 배우는 정말 보석 같습니다.
켜켜이 쌓인 사도세자의 슬픔과 울분이 목소리와 표정, 눈에 가득 담겨있었어요.
베테랑에 이어 사도까지 올해 한국 영화계는 유아인이라는 큰 보석을 수확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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