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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개 Jul 09. 2018

토 슈즈를 신는다는 것

15. 고통에 집중하지 마세요


발레에 대한 로망의 최전선에는 ‘토 슈즈’*가 있다. 발레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은 바로 분홍색 고운 발레 슈즈가 아닐까. 하늘거리는 리본이 달려 있는 새틴 소재의 토 슈즈. 빨간 구두를 신으면 저절로 춤을 추게 된다는 어린 시절의 동화처럼, 토 슈즈를 신게 되면 발레리나처럼 나풀나풀 춤을 출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이 서려있다. 광택이 흐르는 날렵한 토 슈즈를 신으면 마법처럼 내 몸도 공중으로 떠오를 수 있을까.



지난 4월부터 포인트 클래스(pointe class)에 등록한 이후, 토 슈즈를 신고 발레를 배우고 있다. 발레를 배운다면 토 슈즈도 신어봐야 되지 않겠냐는 호기로운 생각과 막연히 꿈꾸었던 로망에의 실현을 위해 큰 맘먹고 포인트 클래스에 등록한 것이다.


하지만 수업 첫날부터 나의 로망은 완전히 부서졌다. 박살이 났다고 말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로맨틱한 토 슈즈는 발레가 그러하듯, 우아한 외양 뒤에 숨기지 못할 고통이 뒤따른다.


처음 토 슈즈를 신고 섰을 때의 그 떨림, 내 몸이 공중에 떠 있는 것에 대한 경이로움을 만끽하기도 전에 발끝으로 몰리는 고통이 일순간 찾아왔다. 발이 감옥에 갇히면 이런 느낌일까? 발을 옥죄는 듯한 고통과 괴로움에 얼굴은 사색이 되고, 몸은 부들부들 떨린다.


발끝으로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발등이 충분히 나와야 한다. 발목에서 발등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곡선이 나오기 위해, 발레를 배우기 이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발등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발등도 스트레칭이 필요할 줄 누가 알았으랴. 발등을 꺾는 고통이 얼마나 처절한 지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비단 발 끝과 발등의 고통만이 문제가 아니다. 최대한 하중을 줄이기 위해서는 몸의 중심 근육을 끌어올려 팽팽한 상태를 유지시켜야 한다. 풀업과 턴아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금세 발끝의 중심이 무너지고 마니까.


때문에 토 슈즈에 적응하지 못한 내 모습은 우아한 백조보다는 뒤뚱거리는 오리에 가깝다.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내 모습은 예술이라 하기엔 부끄러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고나 할까.


지면에 닿고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의 발끝뿐인 상태에서 플리에 plié, 를르베 relevé, 파쎄 passé 등의 동작으로 이어진다. 일순간 내 표정은 일그러지고 만다.


"고통에 집중하지 마세요!"


선생님께서 거울을 통해 나를 바라보며 외친다. 발끝에 느껴지는 감각에 온통 마음이 빼앗겨 집중이 흐트러진 내 모습을 간파당한 것이다. 고통에 집중하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손가락에 가시 하나만 박혀도 하루 종일 손가락만 신경 쓰이는 것이 사람 아닌가. 어떻게 고통에 둔감해질 수 있을까? 아픔에 의연해질 수 있다면, 세상살이에도 좀 더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토 슈즈를 신는다. 고통에 눈을 감는다. 인간의 본능을 거부한다. 중력의 법칙을 거스른다. 발레는 나를 둘러싼 무겁고 암묵적인 세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이자, 이제껏 너무도 당연히 여긴 모든 법칙으로부터 의식을 깨우는 행위다.


고통에 집중하지 말라는 말은 고통에'만' 집중하지 말라는 뜻일 테다. 우리가 한걸음 발전하고 성장하는 데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고통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고통에만 집중하게 된다면 쉽게 나약해진다. 고통에 함몰되면 일어설 수 없다. 나를 아프게 하는 감각에만 눈길을 주지 말고, 고통을 딛고 서서 나를 발전시키는 데에 그 에너지를 힘써 보자.


발끝으로 서 있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토 슈즈: 정식 명칭은 포인트 슈즈(pointe shoes)다. 발끝 부분을 여러 장의 종이를 덧대어 아교로 단단히 고정시킨 발레용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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