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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개 Mar 06. 2019

인간의 탐욕만큼 견고한 성채에서

갈레(Galle)를 산책하며

 

바다거북이 보호소 울타리 / copyrightⓒ. 2017. 베개.


콜롬보에서 해안가를 따라 달리는 기차를 타고 낭만적인 해변 도시 ‘갈레(Galle)’에 도착했다. 맑고 쾌청한 하늘과 야자수 위로 떠다니는 하얀 구름은 이 곳이 2주 전만 해도 대홍수가 있었던 곳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챌 수 없게 했다.


갈레(Galle)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바다거북이 보호소였다. 보호소라고 해서 거창한 건물과 첨단 장비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이 곳은 여행자를 비롯한 사람들의 후원으로 해양 쓰레기와 오염물로 죽어가는 바다거북이를 구조하고 치료한 후 다시 생태계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인도양을 헤엄치며 지구를 지켜왔을 바다거북이는, 이제 사람이 쓰고 버린 플라스틱과 각종 쓰레기로 인해 급격히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 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보호소의 울타리만큼이나 바다거북이의 생이 위태로워 보인다. 


상처 난 거북이의 등껍질을 바라보며 생각해 본다. 단순히 보호소를 들러 약간의 후원금을 내는 것으로 도리를 다했다며 자위할 것인가? 생각 없이 소비한 플라스틱과 일회용품, 생활의 편리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던 내 일상의 조각이 바다거북이의 등과 발을 할퀴고 있었다. 





혼자서 하는 여행에서 가장 아쉬울 때는 밥 먹을 때다. 메뉴의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싶지만, 혼자서는 여러 음식을 다 해치우기 어려우니 말이다. 괜히 혼자서 너른 테이블을 차지하는 것도 때론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오늘 하루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든든한 한 끼를 기대하며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copyrightⓒ. 2017. 베개.

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발코니에 자리를 잡았다. 유럽의 골목처럼 바닥에 깔린 돌들이 이 도시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가늠케 한다. 직원이 나를 보더니 자연스럽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한국으로 가서 돈을 벌고 싶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 스리랑카에서는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해도 우리나라 돈으로 15~30만 원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그러니 한국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일해도 그 돈이 스리랑카에서는 얼마나 큰 가치가 되는지 알 수 있다. 그들에게 한국은 단기간에 스리랑카에서는 절대 축적할 수 없는 자본을 만들 수 있는 기회의 땅인지 모른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처우와 그들을 향한 우리나라 국민의 보편적인 시선을 생각하면, 이토록 초롱초롱한 눈으로 한국말을 하는 청년 앞에서 쉽게 입을 뗄 수 없었다. 스리랑카에서도, 한국에서도 삶은 쉽지 않다.






갈레 성채를 거닐며 / copyrightⓒ. 2017. 베개.


갈레 성채를 따라 걷는다. 시원한 바닷바람에 밀려 거칠게 달려드는 파도가 야생적이다. 스리랑카 남서부 지역을 차지한 포르투갈이 해적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올린 두터운 성벽을 이후 네덜란드가 확장 재건했다. 인도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갈레는 여러 열강들이 탐내는 군사적 요충지였을 것이다. 이미 3~400년 전 일이지만, 여전히 성채는 우뚝 서 있다. 인간의 탐욕만큼이나 견고한 모습으로. 


이 날 오후 바닷가에서 산책하다 만난 한 사람은 스리랑카 공무원이었는데, 바다거북이들이 먹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일과 후에도 종종 바닷가의 쓰레기를 줍는다고 했다. 다른 이들의 삶을 밀치고 차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말 못할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작은 행동을 이어가는 이들도 있다.


갈레의 역사와 상관없이 오늘날에는 나와 같은 여행자들과 휴식을 찾아 방문한 스리랑카 사람들이 뒤섞여 평화롭게 산책을 한다. 노을이 지는 바닷가에서 생각했다. 불과 몇 백 년 전에는 나라를 빼앗긴 설움이 가득했을 이 곳이 지금은 너무도 평화롭다. 땅의 주인은 바뀌고 역사는 흐르지만, 바다는 변함없이 때가 이르면 파도를 밀어 보낸다. 그렇게 아픈 역사마저 보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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