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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니크 Nov 14. 2021

결국은 신뢰의 문제

  언니가 구형 프라이드를 팔고 새 차를 산다고 선언했을 때, 고민도 없이 나에게 팔라고 말했다. 사실 언니의 프라이드는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내가 늘 탐내던 차였다. 운전을 시작하고 싶었다. 무엇이든 빨리 실력이 늘려면 자주 해봐야 한다. 그 말은, 운전 실력이 늘려면 자주 운전을 해야되는데 그러면 내 차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마음 속 체크리스트를 떠올렸다. 주차가 쉽도록 작을 것, 어딘가에 긁히거나 박아도 마음 아프지 않을 정도로 낡았을 것, 무난한 색상일 것. 언니의 진회색 구형 프라이드는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나만의 드림카였다. 특히, 말기 의심병 환자인 나에게 가족만큼 차 판매자로서 믿을만한 사람이 또 없었다.

  얼떨결에 차를 구매해버렸다. 이제 선생님이 필요했다. 몇년 전 어디선가 보고 가입했던 인터넷 카페를 떠올렸다. 언제 가입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수많은 카페 목록을 내려보니 아직도 망하지 않고 영업중이다. 휴대폰 번호와 함께 간단한 메시지를 남기니 곧 연락이 왔다. 2주 뒤,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 주차장에서 만난 강사의 첫인상은 옛날 애니메이션 <개구리 왕눈이>에 나오는 여주인공 아롬이의 아빠 ‘투투’를 닮았다. 무서웠다. 운전면허를 딴 후 10년이 넘게 운전을 해본 적이 없어 시동거는 법 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들키면 혼쭐이 날 것 같았다.


​  무서운 인상과는 달리 투투는 친절했다. 익숙하다는 듯이 시동거는 법부터 차근차근 알려줬다. 내 발을 브레이크에서 떼면 이 차가 곧 어딘가로 움직일 거라는 사실은 공포였지만 투투는 괜찮다며 일단 출발하라고 말했다. 도로로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때가 왔다. 차선 변경을 해야하는 순간이. 투투는 깜빡이를 켜고 천천히 핸들을 돌리라고 말했다. 다행히 사이드 미러로 보이는 옆 차선에서는 차가 저 멀리 보였고, 나는 첫 차선 변경에 성공했다. 말기 의심병 환자답게, 만약 깜빡이를 켜고 차선 변경을 시도해도 옆 차선의 차가 껴주지 않을 땐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나에게 투투는 다 껴준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설사 껴주지 않는 차가 있으면 먼저 보내고 그 다음에 끼면 된다고, 믿으라고 했다.

  그렇다. 믿어야 했다. 도로 위의 운전자들이 등딱지에 ‘초보운전’이라고 크게 써 붙인 차에게 그리 야박하게 굴지는 않으리라. “‘초보운전’이라고 써 붙이면 더 무시하고 안 껴준다는데요?”라고 하는 나에게 투투는 누가 그렇게 말하냐며 화를 냈다. 지킬 걸 잘 지키면 문제 없이 운전할 수 있다고, 안 끼워주는 데 끼어들고 그냥 끼워주면 되는데 안 끼워주려다 사고가 난다고. 신호등과 차선, 규정속도를 잘 지키면 된다고 했다. 이 밖에도 투투가 전수해준 수 많은 팁과 초보운전 좌우명들을 마음에 새기며, 나는 드디어 연수에서 조기졸업하고 혼(자)운(전)을 하게 되었다. (조기졸업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투투는 나에게 골목길 운전이 힘들 것이라며 10시간 추가 연수를 권했지만, 나는 이미 받은 20시간 연수로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  혼자 야심차게 간 곳은 이마트 하월곡점. 그 당시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대형마트다. 비록 주차장 입구로 향하는 차선으로 제 때 들어가지 못해 마트 건물을 2바퀴 더 돌아야 했지만 어쨌든 무사히 장을 다 보고 집에 돌아왔다. 짐을 풀고 있는데, 집에 계시던 아버지가 마트에 간다고 했다. “마트? 아까 갈때 같이 가지”하고 묻는 나에게 미아점에만 있는 물건을 사러 가야 하는데, 나는 초보운전이니 미아점까지 가기는 힘들거라며 택시를 탄다고 했다. 하월곡점에서 미아점까지 직선거리 700m. 동생은 아직 생명보험을 들지 않아 내가 모는 차를 탈 수 없다고 했다. ‘둘 다 나를 못 믿는 건가? 왜죠?’하고 묻고 싶었다.


​  아버지와 동생이 나를 믿지 못하듯이, 나 또한 도로위의 운전자들을 한동안 믿지 못했다. 내 옆을 아무렇지 않게 쌩쌩 달리는 그들이 여전히 무서웠고, 텃세를 부릴 것만 같았다. 그들을 믿게 된건, 몇 번의 사고날 위기를 거치고 나서다. 내 차에게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을 만들법한 순간을 베테랑 운전자들의 순발력으로 여러번 모면하고 나니, 나는 그들을 신뢰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운전을 못해도 다른 운전자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 차선 변경에 자신감이 붙고, 좁은 도로에서 맞은편에 오는 차도 피하지 않게 되었다.

  운전은 신뢰의 문제였다. 내가 같은 도로위의 다른 운전자들을 믿지 않으면 절대 운전을    없었다. 다른 운전자들이 신호와 규칙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 내가 서툴러도 베테랑 운전자들이 방어 운전을  것이라는 믿음, 차선을 변경하기 위해 깜빡이를 켜며  앞머리를 들이 밀어도 나에게 양보를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운전을   있었다.




​  물론 도로 위가 믿음으로만 가득찬 곳은 아니다. 어느 주말 20분째 거의 움직이지 않는 한남대교 위에서 얌체처럼 한가한 차선으로 차를 몰고 오다가, 차선 변경 최후의 순간이 오자 무작정 차 앞머리를 들이미는 아우디를 발견했다. 운전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도로 위에서 경적을 누를 수 밖에 없었다. 경적 소리를 들으면서도 계속 앞머리를 들이 밀다가 끝내 내 앞으로 끼어들기에 성공한 아우디를 뒤에서 시원하게 박아버리고 보험 처리를 할까 잠시 고민했다. 그래도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상식적이다. 때로 (의도치 않게) 비상식적인 운전을 하는 초보 운전자인 내가 아직까지 무사고로 운전하는 걸 보면 그렇다.​


  몇달 전 해외에 살고 있는 어머니가 한국으로 휴가를 왔다 다시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기 바로 전 날, 원래 공항에 데려다주기로 했던 어머니 친구분에게서 사정이 생겨 못 올 것 같다고 전화가 왔다. 통화 내용을 들으며 “이제 내가 나설 땐가”하고 자신있게 쳐다보는 나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웃던 어머니는 1초의 고민도 없이 콜밴을 부르셨다. 결국은 신뢰의 문제다.


2018년 쓰고 2021년 옮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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