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하려들지 마라
혼독함공_독서일지
#혼독함공_독서일지_15475
#양분화말고단일성 #이해말고믿음 #싯타르타
#헤르만헤세 #더스토리
“나는 이 우주의 점 하나야. 티끌보다 못해. 이 세상 태어났으니 점 하나 찍고 있는 듯 없는 듯 살다가 사라지는 거야.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 아웅다웅할 필요가 없어. 사랑하기도 부족한 시간이잖아. 사랑해 선하야. 우리 사랑하자.”
1997년, 6월 25일.
(이유는 모르겠고 날짜를 정확히 기억한다).
룸메이트이자 목사님 딸인데 술을 엄청 좋아하는 내 친구는 생일날 술에 잔뜩 취해 이렇게 말했다. 누가 목사님 딸 아니랄까 봐 맨날 나를 사랑한단다. 이웃을 사랑하란다. 그때 그녀의 맹목적인 사랑이 질렸는지 나는 사랑을 좋아하지 않았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대신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거야. 나에게 이 책은 성경이야.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 언제나 싯다르타가 생각나. 우리는 두 권의 책을 함께 읽게 될 거야.”
2015년, 6월 22일.
(진짜 신기하게 거짓말 안 하고 날짜를 정확히 기억한다)
안경원에서 안경을 맞추고 기다리는 동안 책꽂이에 있던 <연금술사>를 읽었다. 순간 책에 매료되어 처음 책을 가방에 넣고 나왔다. 아직 돌려주지 못했다.
마음이 산만할 때, 심연에 들고자 할 때, 그냥 습관처럼, 혼자 때로는 같이 이 두 권의 책을 읽는다. 시작은 연금술사였는데 끝은 싯다르타다. 평균 3년에 한 번씩 읽는데, 한 번도 순서를 바꾸지 않는다.
올해 유독 올해는 두 책 모두 시작이 어려웠고, 끝에서 전율했다.
나는 책에 밑줄을 긋고 분석하고 비교하고 이해하려 했다. 하루 반나절이면 감동했을 이 책들이 이주 동안 나를 힘들게 했다. 그리고 나는 전율했다.
“이해하지 마라. 믿어라. 믿고 따르라.”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눈 앞에 펼쳐진다. 무수히 많이. 그러니 때로는 이해하려 들지 말고 그냥 믿어라. 그리고 그 믿음을 따라라.
나는 의심이 많다. 잘 믿지 않는다. 한 번 믿기까지 수없이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그러다 의심에 지쳐 믿어야겠다 싶으면 그때부터는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는다. 내가 믿기로 했다면 세상이 두 쪽 나도 믿는다. 믿어버린다.
신의 말을 따른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신은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의심하지 말고, 이해하려 들지 말고, 그냥 믿기로 했다.
싯다르타는 완전자인 붓다와 고빈다가 머무르는 기원정사를 떠날 때, 지금까지의 자기 삶도 이 기원정사에 남겨 둔 채 이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싯다르타는 천천히 걸어가면서 자신을 완전히 가득 채우고 있는 감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마치 깊은 물 속에 잠기듯이 그는 감정의 바닥까지, 원인이 깃들어 있는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원인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곧 사고思考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감정은 인식으로 변하며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이 되어 그 속에 내재한 것을 발산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깊이 생각했다. 그는 자기가 더이상 청년이 아니라, 한 남자가 되었음을 확인했다. p.57
마치 뱀이 눈은 허물을 벗듯이 무언가가 자신을 떠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젊은 시절 내내 그를 따라다녔던 그의 일부, 즉 스승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겠다는 소망이 더이상 자기 마음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수행 중에 그에게 나타났던 마지막 스승, 가장 높고 가장 현명한 스승, 성자, 붓다로부터 그는 떠났다. 그는 붓다와 헤어져야만 했고, 그의 가르침에 귀의할 수 없었다. 사색하며 천천히 걷던 싯다르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도대체 내가 가르침에서, 스승들에게서 배우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가?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던 그분들이 나에게 가르칠 수 없었던 것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그는 답을 찾아냈다. 그것은 자아다. 나는 그 의미와 본질을 배우려고 했다. 내가 벗어나려고 했고. 내가 극복하고자 했던 그것은 바로 자아였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극복할 수 없었다. 단지 속일 수 있었을 뿐이고, 도망칠 수 있었을 뿐이며, 다만 그것 앞에 숨을 수 있었을 뿐이다. 참으로 세상에 이 자아만큼 나를 몰두하게 만든 것은 없었다. 내가 살아 있다는 이 수수께끼, 내가 하나의 개체이며 다른 모든 사람과 구별되고, 내가 싯다르타라는 이 수수께끼만큼 깊은 고뇌를 안겨 준 것은 없었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사색하던 싯다르타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p.58
내가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 싯다르타라는 존재가 내게 아주 낯선 미지의 존재라는 것, 그것은 한 가지 원인, 하나의 유일한 원인에서 유래한다. 나는 나를 두려워했고, 나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트만을 추구했다. 니는 브라만을 추구했다. 나는 내 자아를 부수고 껍질을 벗겨, 그 미지의 가장 깊은 곳에서 모든 핵심을, 아트만을, 생명을 신성한 것을, 궁극적인 것을 찾아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가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p.59
세존 고타마께서 가르치시면서 세상에 대해 말씀하실 때, 세상을 윤회와 열반, 미혹과 진리, 번뇌와 해탈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네.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이 없네.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길이 없네. 하지만 세계 자체, 우리를 에워싸고 있고, 우리 마음에 내재하고 있는 존재 자체는 결코 일면적이지 않다네. 한 인간이나 한 행위가 완전한 윤회이거나 완 전한 열반이 결코 아니며, 한 인간이 완전히 신성하거나 완전히 죄를 짓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네. 우리가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에, 시간이 실제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네. 시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네. 고빈다, 나는 그것을 몇 번이나 경험했네. 그리고 시간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세계와 영원 사이 번뇌와 행복 사이, 선과 악 사이에 놓인 것처럼 보이는 간격 또 한 착각이라네. p.194
고빈다여, 이 세상은 불완전하지 않고, 또는 완전성을 향하여 서서히 나아가는 도중에 있지도 않다네. 아니, 세계는 매 순간 완전하네. 모든 죄는 이미 그 자체 안에 자비를 품고 있고, 모든 어린아이는 이미 자기 안에 노인을, 모든 젖먹이는 죽음을, 모든 죽어 가는 사람들은 영원한 삶을 지니고 있네.
나에게는 존재하는 것이 선하게 보이네, 내게는 죽음이 삶처럼 죄가 신성함처럼, 지혜는 어리석음처럼 보이네. 모든 것은 그래야만 하며, 모든 것이 오직 나의 동의, 오직 나의 의향만 필요로 하고, 나는 다정한 양해를 필요로 한다네. p.196
그의 가르침이 기이하고, 비록 그의 말이 어리석게 들리기는 해도 그의 시선 그리고 그의 손, 그의 피부와 그의 머리카락, 그의 몸의 모든 부분이 순수한 빛, 평온한 빛, 명랑한 빛과 온유한 빛 그리고 신성한 빛을 내뿜고 있다. 우리의 지존하신 스승께서 입멸하신 이래로 나는 다른 어민 사람에게서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 때문에 마음 속에 갈등이 일던 고빈다는 사랑의 감정에 이끌려 싯다르타에게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는 조 용히 앉아 있는 싯다르타 앞에 깊이 허리를 굽혀 절했다.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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