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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는인간이기억하는그것

독서일지 ㆍ숨은문장찾기

by 김선하

- 저녁 먹고 자고 내일 집에 가라아.

김정아,『선이언니』


"선이야, 낼 아침 맛있는 거 묵으러 가자" 『선이, 389, 9』


그녀와 나의 선이.


그럴 거 같았다. 그래서 책상 위에 올려두고 표지 선이 언니를 손가락으로 더듬을 뿐, 첫 장은 넘기지 않았다.


마침내, 소설공모 마감날,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고 밀쳐두었던 선이, 선이 언니를 손가락으로 당겼다.

눈물이 날듯 한 순간에 나는 울지않았다.


그러나, 결국, 나는 울고 말았다. 선이 언니가 길러낸 막내가 애처로워.


해내야 할 의무를 수행 하지 못한 죄스러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나락, 버리고 던져내고 싶은 고된 삶, 아무리 아둥바둥 해봐야 좀처럼 나아질 것 같지 않은 현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숙명. 그것이 막내였다. 그것이 막내 수아의 업보, 카르마였다.


카르마.

인간이 만든, 그려낸 상상想, 기억이라고 한다.


막내의 기억 속에는.

아들을 잘 키워내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못한 죄로 목숨을 대신 한 엄마, 엄마가 죽은 날 도망 친 오빠. 생사 소식을 알 수 없는 옥이 언니, 아내를 잃고 무정체로 살아가는 아버지, 그 안에서 동생의 엄마와 아버지의 아내가 되어 매번 허덕이는 삶을 살았던 언니. 결국 지난날이 서러워 억울해 울고 있는 선이 언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기억하며 정작 나를 지키지 못했던 막내 수아.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다. 그리고 다시 집게 손가락을 치켜 세워 책 표지 선이언니 등에 대고 몇 글자 적어낸다.


웃는다. 웃고 있을 막내를 바라보는 선이언니가 그곳에 있다.

나는 막내에게 50년 뒤 기억할 새로운 카르마를 그린다.


❝이젠 당신은 행복해도 됩니다. 당신이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을 위해❞


...............................................

해내야 할 의무를 마땅히 해내지 못한 마음은 막내의 핏줄을 타고 흐르며 시시때때로 괴롭혔었다. 이것밖에 안 되는 존재라니 나란 존재는 아버지와 선이 언니가 기대했던 사람이 되었는가 말이다. ... 한 계절 푸르게 뻗치다. 풀썩 주저앉아 뒤엉켜 더 이상 날아갈 수 없는 마른 덤불 같은 자신을 보았다.


그날 이후 막내는 온갖 상념에 시달렸다. 39살이 되던 해였다. 막내는 일찍 엄마를 잃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현모양처가 꿈이었다. 제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아둥바둥 살아내느라 자신은 온데 간 데 없었다. 지난 세월 아버지와 선희 언니가 자신을 위해 희생한 시간이 갚아야 할 빚은 눈덩이처럼 쌓여 있었다. 263

#김정아, 『#선이언니』



표지사진 문장 중에서

빛을 빚으로 수정합니다

나는 선이 언니의 지난 시간을 빛으로 밝히고 싶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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