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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변호사 Jul 26. 2021

쓸모를 입증하지 않아도 괜찮아.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로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좀처럼 돈문제에 둔하고 영민하지 못한 내가 '경제활동이란 가치를 입증하고 그렇게 입증된 가치를 연봉이라는 숫자로 평가받는 것'임을 깨닫기까지는 조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첫 회사에 입사를 할 때, 누구나라도 채용공지를 볼 때 가장 먼저 확인할 '연봉'란을 자세히 보지 않았다. 오랜 수험생활과 학자금 대출, 마이너스통장이 유일한 피난처였던 나에게 스스로 일을 해서 돈을 받는다는 그 자체로 신기하고 기뻤으니까.


연초 연봉협상 시즌이 되고서도 내가 다니는 회사의 연봉이 낮은 편인지 높은 편인지, 연봉협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연봉이 매년 상승한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로, 갑자기 듣게 된 연봉 인상 소식에 "인상"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저 기뻐했다. 그 인상된 금액이 주위 동기들이 받고 있는 급여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첫 회사에서 퇴사를 하고 공공기관으로 이직을 했다. 아무리 첫 회사가 놀랄만한 연봉을 받아 드는 대형 로펌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공공기관으로 이직을 한다는 것은 월급의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었다. 대형 로펌에서 일을 하다가 공공기관으로 오신 선배님은 자신이 이직 전에 세금으로 내던 금액을 지금은 월급으로 받고 있다고 우스갯소리로 진담을 말하셨고, 나조차도 첫 월급이 통장에 찍힌 날 동기에게 다급히 카톡을 보내어 "급여가 아무래도 잘못 들어온 것 같아!"라고 진지하게 따져 물었으니까.


이처럼 나는 나의 가치를 증명하고 그 가치를 사회에서는 "연봉"이라는 성적표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 점점 더 이상 주위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에 귀를 닫을 수만은 없게 되었을 때, 그리고 돈문제에 둔한 것이 결코 자랑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을 때, (더 솔직히 말하면 '아 내가 이번 생애 결혼을 못 할 수도 있겠구나. 내 한 몸은 내가 책임지고 먹여 살려야 하는구나.'라는 구리지만 미묘한 확신이 들기 시작했을 때) "급여"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곳이지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다니는 곳이 아니라고 말한다. (일정 부분) 맞다. 목표를 이루고, 자아를 실현하고, 원하는 꿈을 이루고. 모두 좋지만 기본적으로 회사는 내가 노동력을 제공하고, 내가 제공한 노동의 가치를 평가받아 그에 상응하는 인정을 "연봉"이라는 숫자로 돌려받는 곳이다.


그렇게 급여와 연봉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하면서, 나의 가치를 입증해야 하고, 내가 제공하는 노동의 가치이자 내 실력의 가치가 끊임없이 평가되고 있다는데 생각이 이르렀다. 그렇지 않아도 늘 평가와 인정에 예민한 나였다. 굳이 급여와 연관 짓지 않더라도, 늘 어디에서든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뒤쳐지기 싫었다. 이런 인정 욕구가 나의 약한 체력과 (뛰어나게는) 좋지 못한 머리를 멱살 잡아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을 안다.


그런데 이제는 그 평가가 내가 받는 급여라는 숫자로 돌아온다는 것, 나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이들이 얼마의 급여를 지급받고 있는지,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더라도 연봉의 편차가 얼마나 클 수 있는지에 생각이 미치자 조금은 무서워졌다. 매 순간 내가 이 정도의 급여를 지급할 가치가 없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내야 될 것 같은 압박감. 조금 지치고, 대충 하고 싶고, 여기서 그만을 외치고 싶은 순간에도 '내가 이 정도의 급여를 받을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지 않겠어?'라는 질문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렇게 내가 깨달아간 사회는 참 무섭고 냉정한 곳이었다.




회사에서 나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한껏 노력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넌) 우리 집 막둥이 단비가 나를 맞았다. 작고 하얀 몸뚱이로 제 시간의 속도로는 3일도 넘게 사라졌다 돌아온 나를 꼬리가 헬리콥터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를 만큼 반기는 작고 하얀 존재.


힘들고 지친 몸으로도 그 하얗고 작은 생명체와 몇 분을 껴안고 뒹굴고 나면 그 누구보다 마음이 충만해진다. 그러다 문득 검은콩 세 개가 콩콩콩 박힌 하얀 생명체를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떠오른 생각은 "이 작은 생명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렇게나 사랑스럽구나."


이 작은 생명체는 그저 백설기 같은 하얀 몸뚱이에 검은콩만 한 눈코 입이 박혀있어 그 까만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는구나. 어쩌면 나도 우리 가족에게 부모님에게는 그런 존재였고, 그런 존재이겠다. 그래, 내가 꼭 나의 가치를 입증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도 있구나. 내가 그냥 존재하는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고 행복을 주는 그런 세상도 있어.


한껏 긴장하고 힘들여 나의 가치가 이러하다고 소리쳐 일하고 돌아온 어느 날 밤. 문득 그 까만 점 세 개가 나를 바라보는 그 순간 이 모든 생각이 들려오자 갑갑하던 마음에 숨구멍이 조금씩 생겨났다. 나의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해내야 하고 인정을 받아야 하는 세상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세상도 분명 있다고.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는 관계도 분명 있다고.



쓸모를 입증해야 하는 세상에서 "꼭 그렇게 쓸모를 입증하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나에게 이 말을 깨닫게 해 준 단비는 세상을 떠났지만, 이 말은 마음에 남아 일을 하며 지칠 때마다, 참 사는 게 쉽지 않구나 라고 느낄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른다. 그러니 오늘도 나의 쓸모를 증명해 내느라 고생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누군가에게 적어도 나 자신에게 사랑받는 존재라고 말을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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