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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Oct 26. 2024

인류세의 동학공부.1

야뢰 이돈화, <새말>을 읽으며 

* 앞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네이버카페에만 올린 글들을 이곳에 재수록 합니다.  


[개벽통문24-42] 

이 책을 강독하며 토론합니다

1. 어제(7.26)는 "개벽하는사람들: 인류세의 동학공부" 첫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야뢰 이돈화의 1934년작 <새말>을 강독하였습니다. '새 말'은 '새로운 말(철학, 교리)' '새롭게 말함'의 의미를 띱니다. 크게는 동학사상(철학)이 금불문고불문금불비고불비(今不聞古不聞今不比古不比)의 '새 말'(다시개벽의 말)이라는 뜻이요, 작게는 (이돈화 자신을 포함하여) 지난('1934년기준)' 30년간의 동학(천도교)의 담론과는 결(문체)를 달리 하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새말>은 전체 5편으로 구성됩니다. 제1편 운수문, 제2편 감응문, 제3편 화복문, 제4편 수련문 제5편 성도문(成道門)입니다. '범례'(일러두기)에서 이돈화는 "우리 교에서 연래(年來, 그동안)의 저술 가운데 나타난 것과 본서의 차이 되는 점은 전자는 '지(知)'의 교리임에 대하여, 후자, 즉 본서는 정(情)과 의(意)를 표준한 교리인 점에서 특색이 있다"고 밝힙니다. 강독을 하면서, 참가자들은 모두 이 점을 절감하며, 상쾌, 유쾌, 통쾌함으로 만끽하였습니다. 


2. 개벽하는사람들은 2010년 10월 3일 창립한, 동학 공부와 운동을 위한 천도교인과 동학인들의 결사입니다. 그동안 '개벽신문' 창간을 성사시켰고, 천도교단 내의 여러 부문단체와 연대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한동안 휴면 상태로 있었으나, 이번 공부모임을 시작으로 새 걸음을 다시 시작합니다. 어쩌면, '처음마음'을 다시 헤아리며, '인류세의 동학 읽기'를 표방하였고, 그 첫 교재를 이돈화의 <새말>로 정한 것은 '개벽하는' 사람들로서는 '필연적인' 경로를 걸어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3. 이돈화는 어제 읽은 운수문에서 '개벽운수' '후천운수'를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그 의미를 정의합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시대를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되 '과도(過度) 시대'라고 한다. 과도 시대라는 뜻은 즉 지나가는 시대이며 건너는 시대라는 말이니 이 시대는 이미 안정을 얻은 시대가 아니요, 장차 보다 좋은 안정을 얻기 위하여 그 목적지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중에 있는 시대라는 말이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해석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과도시대라는 뜻을 일층 더 큰 의미를 가지고 해석한다. 무엇이냐 하면 선천이 가고 후천이 오는 중간 시대라는 말로 믿는다. 선천 오만년의 꼬리와 후천 오만년의 머리가 서로 맞닿인 중간 시대로 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과도 시대 중에도 가장 큰 과도 시대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후천오만년 대도대덕인 무극대도가 탄생되는 개벽적 과도시대로 본다. 원래 과도기라는 것은 운수 속에 한 계단을 차지한 시간이다. (중략) 이 시대는 선천과 후천이 바뀌는 공전의 큰 과도기이다. 우리는 공교히도 이 큰 과도시대에 처하게 되었다. 선천의 늙은이가 짐을 싸고 역사속으로 들어가는 꼴을 보는 동시에 후천의 새 주인이 연(輦)을 타고 지경에 들어섰다는 소문을 듣는 시이다." 


4. 이 말은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이 그대로 '인류세'라는 말에 대응합니다. 이돈화가 지금부터 90년 전에 한 말이, 90년 이후 오늘에 부합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말이 수운 최제우 선생의 '다시개벽'의 말을 그 시대(1930년대)에 (시대적인 언어로서) 되풀이한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이 시대의 '인류세' 담론도 '다시개벽'론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새말>의 운수문에서 '운수'라는 말 자체가 그러한 변화, (대)전환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운수론이 '생명론'과 연결되는 자연은 더 장쾌합니다. 다음에 소개)


5. 그리하여 어제 공부 모임에서는 "개벽하는사람은 운수있는사람이요, 운수있는사람은 마음을비우는사람이요, 마음을비우는사람을 절잘하는사람입니다."라는 시(詩)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인류세의 동학읽기에서 동학(천도교)은 가장 절망의 때, 암흑의 때에 좌절과 종말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희망과 새날(운수와 개벽)을 말하였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 인류세는 절망의 언어로서, 즉 생물대멸종과 인간(삶)위기(기후위기가 아니라)라는 죽음의 언어로 밀어닥치지만, 우리(동학-천도교)는 거기에서 다시 희망과 새날, 즉 마음비움(운수관계-변화)과 절(拜)잘하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6. 야뢰 이돈화는 일찍이 1910년에 창간되는 <천도교회월보>에서부터 천도교 글쓰기를 시작하여, 10년이 지난 1920년 <개벽>이 창간될 당시에는 이미 뚜렷한 경지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10여년이 지난 1931년 <신인철학>은 불세출의 대작으로, 여전히 후학들의 손길(공부와 해석)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이돈화 연구자들은 주로 이 <신인철학>에만 집중하여 이돈화 연구, 이돈화의 동학철학, 혹은 의암성사 시대의 동학(천도교)철학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신인철학으로부터 불과 3년 후의 이 <새말>은 비록 그 분량은 <신인철학>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 문체는 사뭇 다른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범례'에서 이돈화가 스스로 밝힌 '지'와 '정+의'의 역할 분담에 따른 결과인 것으로 보입니다. 전언에 따르면 이돈화는 <신인철학>과 <새말>을 맞대어 보아야만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그 출처를 찾는 중) 그렇게 하여 이돈화의 동학철학, 천도교시대의 동학사상이 제 빛을 발하는 날에, 오늘 사회적으로 크게 일고 있는 '동학 공부 열풍'은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7. 어제 모임에는 온다는 기별도 없었건만, 뜻밖에도 원처근처에서 어진 선비들이 여럿 참여해 주셨습니다. 불역열호! 불역열호! 고맙습니다. 


* 이 글을 올리는 시점(24.10.26)을 기준으로 다음번 "인류세의 동학공부"는 24년 11월 22일(금) 오후 2시, 줌..입니다. / 문의 010-5207-6487(카톡문의 환영) / sichunj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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