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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화 Oct 10. 2023

정신 차리니 벼락거지, 이것을 보기 시작했다

요약의 시대, 그 뿌리를 찾게 된 이유

알 것 같은데
모를 것 같으면
나를 보세요(?)

요약의 시대다. 지적인 현대인이 되고 싶지만 시간이 나지 않는 이들을 위한 요약 교양서, 이른바 '있어빌리티(있어 보인다 +어빌리티(ablilty)'를 겨냥한 책들이 서점엔 쏟아진다. 비슷한 타깃을 겨냥한 블로그와 유튜브 콘텐츠도 조용한 인기다. 그 요약마저 온전히 소비할 사람들을 위한 숏폼 콘텐츠도 인기다.


문화인이 되고 싶지만 역시 시간이 여의치 않는 이들을 위한 요약 문화 콘텐츠도 일찌감치 인기였다. 유튜브에서 스테디셀러 격인 콘텐츠 형식은 영화나 애니메이션, 드라마를 짧은 시간에 요약한 콘텐츠라고 한다. 보지 않았지만 본 것 같은.


알고 싶지만 알 시간은 없는 이들을 위해 보고 나면 알게 된 것 같지만 또 제대로 알지는 못하는 것 같은 뒷맛을 남기는 이런 요약 콘텐츠들은 분초를 쫓기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승승장구할 것 같다.

사실 이런 요약은 내가 수험시절을 보낼'호랑이 전자담배 피우던 시절'부터 수험시장에서 인기를 얻었다. (TMI. 담배가 아니라 전자담배라고 굳.이. 적은 이유는...연식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말할 만큼 오래되지 않았음을 잠시 어필하고 싶어서;;) 수능에 지문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국내외 문학 작품과 대입 전형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큰 국내외 사회과학서 등을 요약한 다이제스트가 꽤 인기였다.


어려서부터 고전을 천천히 섭렵해 온 성실한 친구들도 있었겠지만, 묵직한 고전을 천천히 한 권씩 읽어 내려가다가는 수능은커녕 백발 할머니가 되어서야 수능과 대입에 지문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책들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내게 다이제스트들은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탕후루 같은 요약서의 한계를 절감한 건 운 좋게도 대학생활을 하면서다. 내가 다녔던 학부는 1학년때는 교양과목만 듣고 2학년 때 세부 전공을 선택하는 학부였는데 1학년 수업 중엔 세미나식 수업이 제법 많았다. 세미나식 수업의 대부분은 공통적으로 한 권 또는 여러 권의 책을 읽어오고 한 사람의 발제자가 발제문을 준비해서 이를 바탕으로 토론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회사생활을 하는 지금과 비교하면 말할 수 없이 여유로운 일정이었지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매일 오후부터 밤까지 목구멍에 술을 들이붓던 나는 상대적으로 얇은 책인 자본론이나 자유론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고 수업에 참여했었다. 대신 '일말의 양심은 있다'라고 자위하기 위해 A4 한 페이지 정도의 요약본을 읽고 수업에 들어가서 상대의 말을 이해하는 척하고, 고전 속 중요 표현 몇 가지를 인용해서 말하는 식으로 수업을 넘기곤 했는데 한 수업에서 교수님의 물음에 제발을 저리고 말았다.


책을 제대로 읽고 온 것 맞나?
요약본을 읽고
수업 들어온 것 같은데.

지금 같으면 배실배실 웃으면서 '교수님~ 서운하게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냐'라고 받아쳤겠지만 스무짤이던 당시에 나는 너무 순진했다. 농반진반 같은 교수님 말씀에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온몸의 피가 펄펄 끓는 느낌이 들었다. 당시 옆에 앉았던 한 친구는 '눈에서 피가 나오는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수업 직후엔 '아니 나만 책을 안 읽고 들어왔을 것 같냐'라고 펄펄 뛰면서 교수님을 욕했지만 당연히 알고 있었다. 교수님의 잘못은 1도 없다는 것을.


그렇다고 이후에 고전을 굉장히 찾아 읽는 사람이 되었냐, 하면 당연히(?) 아니오. 다만 요약본이나 해설서를 보고 '제대로 모르지만 아는 척하는 병'은 조금 호전됐다. 당시에 눈에서 피가 날 정도로 공개망신당했던 경험이 꽤나 뇌에 착실하게 새겨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원문을 보고 이게 무슨 의미인지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수고보단 이후에도 요약서나 해설서를 먼저 찾았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다만 죽을만한 고비를 넘기면 사람이 조금은 바뀐다. 내 경우에 그렇다.


그때 내가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집 샀어요?

2018년 가을. 한 겨울에 시작한 치료를 꽃이 피고 더운 바람이 불 때까지 계속했는데, 그 치료를 마치고 찬바람이 불어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니 말 그대로 '벼락거지'가 되어 있었다. 1년 전쯤 집을 사려고 한참을 알아보던 나는 운 좋게 관련 조언을 받을 인생선배님들이 몇 분 계셨는데 당시 여러 선배님들께서 내게 '용산', '수서' 등의 지역을 권했다.


'돈이 없다'는 내게 일부는 '전세를 끼고 집을 사둬라', '빚을 내서라도 사두는 것이 나쁘지 않다'라고 조언을 해주셨는데... 학자금 대출 수천만 원도 벌벌 떨면서 받았던 내게 수억 원의 빚을 지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내가 이런 지역들을 매수할 수 있을 자본이 있어서 그 지역들을 권유받았던 게 아니라 내 자산에 대해 아무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유망한 지역들이라고 권유받았지만 어떤 동네인지 구경이나 가보자는 마음으로 그곳들을 다녀온 지 1년. 직전 해에 내가 봤던 집들은 두 배 가까이가 됐다. 용산의 '용', 수서의 '수'자만 들어도 뒷골이 당겼고, 매듭지었던 우울증 치료를 다시 받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부동산블루스'였다. 들고 있던 현금이 1년 만에 반토막이 나는 기분. 벼락처럼 거지가 되었구나. 하지만 직전에 단단하게 맞은 예방주사, 우울증 치료가 확실히 내성을 만들어줬다. 잠시(물론 깊은) 우울에 빠지긴 했지만 우울해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 늦었지만 지나고 보면 늦지 않았을 돈공부를 해야 했다. 어차피 한 줌뿐인 돈, 반토박됐으면 다시 원상회복하고 또 두배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돈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융문맹. 돈의 소중함과 관리방식을 모르는 상황을 설명하는 이 용어는 당시 나의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었다. 돈공부를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그런 상황. 무작정 경제용어사전류와 경제해설서를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매일 경제신문도 스크랩하면서 읽었다. 요약서와 해설서, 신문기사를 열심히 읽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흐름은 읽게 됐지만 여러 개의 콘텐츠를 접할수록 여러 가지 의문이 생겼다.


같은 현상에 대해서 미묘하게 다른 평가와 해석. 이 찜찜한 기분, 왜 기시감이 들지? 경제기사의 근본, 해설하는 글들의 바탕은 도대체 뭐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걸 봐야 하는 거 아냐? 그래서 경제기사보다 먼저, 이것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글은 이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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