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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 Lee Aug 09. 2020

쓰고, 보고, 성장하고

사무실 요정 도비는 왜 글을 쓰는가


  아침 일찍 눈을 뜬다. 출근을 한다. 정신없이 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퇴근한다. 온몸에 피곤이 넘쳐 흐느적거린다. 별 일이 없다면 저녁을 먹고 한동안 쉰다. 하지만 그대로 잠이 드는 건 곤란하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힘겹게 자세를 곧추세우고, 노트북을 켠다. 눈앞에 백지가 펼쳐져 있다. 어렵게 첫 문장을, 쓴다. 하루 일과 중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시간은 이렇게 시작된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나 홀로 글을 쓰는 순간, 그 대체 불가능한 경험.


 실은 어려서부터 책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애독자였다. 잘 쓰인 글을 읽고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나에게 이런 행복을 주는 글을 쓴 사람들을 마음 속 깊이 동경했다. 그러나 그런 ‘읽고자 하는’ 열망이 ‘쓰기’로 곧장 이어지진 않았다. 자유로운 글쓰기를 열망하기엔 의무적으로 써야 할 글이 너무 많았던 탓일까. 백일장과 독후감과 일기로 이런 저런 상도 많이 받았지만 그건 내 글이 아니었다. 아니, 내 글인 건 맞지만 전혀 내 글 같지 않았다. 써야 하는 걸, 써야 하는 양식에 맞게 썼을 뿐이니까. 딱딱한 주장이나 교훈이 담긴 글을 잔뜩 굳은 마음으로 작성해 제출하곤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나의 글’을 쓰기 시작한 건 20대에 접어들면서부터다. 생각과 고민이 깊어질수록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 흔히 젊음을 화산 폭발에 비유하곤 하는데, 나의 경우 그 폭발은 주로 외면이 아닌 내면에서 일어났다. 이걸 어떻게든 표현해야 진정이 될 것만 같은데 말솜씨는 그다지 좋은 편이 못 되었으므로, 차선책인 글을 집어 들었던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생각과 감정을 에세이의 형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간 읽었던 글들이 내 서툰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글쓰기는 예상대로 탁월한 진정 효과를 발휘했고, 나는 그렇게 서서히 스스로를 쓰는 사람으로 정의하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형식과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런저런 글을 썼다. 적은 원고료가 궁핍한 백수 생활의 한 줄기 빛이던 때도 있었고, 잡지에 실린 나의 에세이를 읽으며 신기함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던 순간이 있었으며, 내가 쓴 가사가 누군가의 혹은 나의 목소리로 불리는 기쁨도 맛봤다. (공동저자이긴 했지만) 내 글이 책으로 만들어졌을 때의 각별한 마음도 잊을 수 없다. 모두 글쓰기를 통해 마주한 마법 같은 사건들이다.


 직장인이 된 지금, 꾸준히 글을 쓰는 건 이전만큼 쉽지 않다. 출근 이후 내내 밀도 높은 긴장감에 시달리고, 몸과 머리는 기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오늘 뭘 해야 하지, 누구에게 어떤 연락을 해야 하지, 잊지 말고 결재 올려야지…’ 누군가가 부과한 과제를 착실히 이행하며, 24시간 중 많은 시간 동안 주어를 지운 채 살아가는 삶. 반대로, 글쓰기에는 주어가 필요하다. 뒷전으로 밀려났던 나의 생각과 자아를 다시금 찾아내고 앞세워야 한다. 이 과정만으로도 굉장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솔직히 이쯤 되면 그냥 침대에 눕고 싶어진다. 글을 꾸준히 쓰겠다는 게 어쩌면 과욕일지 모른다.


 하지만 계속 써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글쓰기에 대한 욕구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조회수나 출간에의 욕심 때문이 아니다. 다른 그 어떤 행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뒷전으로 밀려난 생각과 자아를 찾아내고 앞세우는’ 과정만이 줄 수 있는 기쁨과 배움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이다. 글을 쓸 때 나는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오롯한 자신이 된다. 그렇게 완성된 원고에는 사회적 얼굴이라는 가면 뒤에 조심스럽게 숨어 있던 ‘보다 솔직한 나 자신’이 담겨 있다. 그 모습은 때때로 당혹스럽고, 웃기고, 슬프기도 하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잘 알지 못했던 스스로의 내면을 똑바로 마주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말은 곧 성장의 기회를 얻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직면은 성장의 지름길이므로. 이러니 포기할 수가 없다. 매일 ‘나다움’을 경험하며, 하루하루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돕는 벗. 글쓰기는 어느새 내게 그런 존재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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