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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tterfly Dec 19. 2016

믿어주는 어른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어릴 때, 어머니와 아버지의 불화를 겪으며 생각했다.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건가? 나만 잘하면 엄마와 아빠는 싸우지 않을까?'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으로 보자면, 전조작기에 해당했던 나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고 모든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려고 했다. 이제는 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다툼, 갈등은 당신들의 문제였고 나와는 상관이 없었다는 것을.


그러나 그 당시 이 생각은 나를 무척이나 괴롭게 했다.


'나만 잘하면 된다. 내가 잘해야 엄마와 아빠는 싸우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잘해야지만 나는 사랑받을 수 있다.'


이때부터 나는 '잘 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였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어머니에게 칭찬 받을 수 있었고 나는 이것을 통해 인정받고 사랑받는다고 느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무언가를 잘하고 성공해야지만이 나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작은 실수, 실패에 너무나도 민감했다. 무언가 작은 실수라도 하나 하게되면 극도의 불안감을 느꼈고 다른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주어 더 이상 나는 인정받을 수 없고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까지 생각했다. 소위 '멘붕' 상태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대부분 내가 저지른(?) 사소한 실수는 '괜찮은' 정도의 실수였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전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닌 정도의 실수에도 난 세상이 무너질듯한 절망감을 느꼈고 심지어 나의 존재에 대한 회의감까지 가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왜곡된 나의 사고방식을 깨버린 사건이 있었다.

대학생활을 할 때 교수님의 수업 및 연구조교로 일했었던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교수님의 수업과 연구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나의 맡은 역할을 했다. 늘 밤늦게까지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자 노력했고 교수님과 함께 오피스에서 새벽 3시 넘어까지 일하다 기숙사에서  3~4시간 남짓 자고, 다시 아침에 오피스로 나와 일을 반복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렇게 일을 해오던 중, 내가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교수님께서 향후 계속 사용하기 위해 수업 녹화를 부탁하셨고 나는 캠코더를 준비해 차질없이 녹화를 해나갔다. 그런데 아뿔사! 메모리 카드가 빠져있었던 것이 아닌가! (지금은 웃으며... 아니 사실 지금도 이불킥을 할 정도로 부끄럽게 생각한다.) 당시 나의 강박적인 사고가 극에 달해있을 시점에 벌어진 이 사건은 나를 극도의 '멘붕'상태로 몰아넣었다. '난 이제 끝이야. 내가 어떻게 이런 실수를. 교수님이 이제 나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으시겠구나.'


여러가지 부정적 생각으로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웠고 조심스럽게 교수님께 이 사실을 말씀드렸다.


- "교수님.. 제가 실수로 수업녹화를 망쳤습니다. 죄송합니다..."


- "그래?... 흠.. 어쩔 수 없지 뭐.  괜찮다. 다음에 다시 찍자. 준비하느라 고생했을텐데 수고 많았다."



괜찮다... 괜찮다...

이 말이 계속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괜찮다니...괜찮다는 말과 함께 오히려 실수한 나에게 준비하느라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네주시는 교수님께, 나는 멍해짐과 함께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따뜻함을 느꼈다.



'아... 나 괜찮구나. 실수해도 괜찮구나. 나 그래도 되는구나'



늘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시던 교수님은 내가 무언가를 잘하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나를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 자체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셨던 것이다. 이후에도 교수님은 내가 종종 하는 실수들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더 인격적으로 대해주시고 내 실수를 품어주셨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나는 조금씩 스스로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더이상 나의 존재가치를 내 실적, 결과물로 찾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나 자체에서 발견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 중에서



이후 교수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아이들이 신에 대해 묻다'라는 책에서 나는 나의 경험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조건적인 사랑을 받기 위해 무던히도 애써왔다.


'좋은 성적을 받으면 부모님이 기뻐하시겠지. 나를 사랑해주시겠지',

'이번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잘하면 교수님이 기뻐하시고 나를 인정해주시겠지'


나는 이처럼 수 없이 조건적인 사랑을 갈구해왔고, 그것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해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끊임없이 실수할 것에 대한 불안과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뿐이었다. 100번 잘해도 1번 실수하면 나는 끝이라는 생각.


그러나 교수님의 무조건적인 인정, 사랑을 통해 나는 '진정한 나'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무엇을 잘하기 때문에 사랑받는 내가 아니라 그냥 나 그 자체로 소중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실수해도 '나'고, 잘하지 못해도 '나'인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사랑을 가정에서 받고 자랐을 수 있다. 그러나 나와 같이 가정에서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 아이들이 나와 같이 주변의 믿어주는 사람, 믿어주는 어른을 통해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이를 통해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더 이상 조건적인 사랑에 얽매여 스스로를 자책하고 괴로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서로에게 그런 사람, 어른이 되어줄 수 있길.



오늘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한 마디 건네보면 어떨까?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 그것도 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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