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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허튼 상념

떠들고 써 볼까 한다

by OTXP

이제 글을 좀 써야겠다 생각 중이다. 나름 글에 관해 일가견이 있다 생각했던 조무래기 시절이 있었다. 멋모르던 시절이라 아는 것은 아는 대로, 안다 싶은 것은 딱 안다 싶은 그 수준으로 글을 썼다.


글이란 게 근본 말의 연장이라, 떠들 줄 아는 인간은 작정하기만 하면 그걸 글로 잡아놓을 수 있다. 쓰는 재미로 쓰는 사람에게 읽는 사람이 재미를 느끼느냐는 차선적인 일이다. 떠드는 사람은 떠드는 재미가 있기에 떠든다.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쓰는 재미가 있으니 쓰는 것이다. 허공에 대고 떠드는 인간은 정신 나간 인간 취급받기 십상이듯,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갈겨쓰는 인간도 딱히 다르지 않다. 시차가 존재할 뿐 어느 순간에는 누군가 그 글을 읽을 것이고, 그리 읽힐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쓰는 인간은 쓴다.


한참 잘 떠들던 인간이 떠들기를 중단하는 이유 중 가장 즉각적인 것은 듣던 사람이 듣기를 중단하는 것이다. 떠들던 사람에겐 대략 난감한 상황이다. 결국 저 하고 싶은 소리를 해선 안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그 이야기를 해야, 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생긴다. 글도 마찬가지다. 읽는 사람이 그 글을 읽고 자잔한 재미라도 느껴야 글이 소용이 있고, 글 쓰는 사람이 그 쓰는 재미를 계속 가져간다.


들을만한 이야기, 읽을만한 이야기. 그게 중요하다. 이게 청중과 독자를 의식하는 것에서도 비롯되지만, 떠들고 쓰는 사람의 자기의식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떠들고 있나? 이렇게 쓰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할 때가 있는데, 그때 입을 닫고, 펜을 꺾게 된다. 떠드는 것이 지치고, 글 쓰는 것이 무의미해진다.


한참 그런 시간을 보낸 것 같다. 한참을 입 닫고, 펜 꺾고 살아보니... 이것도 딱히 할 짓은 아니다 싶다. 할 수 있는 그 많은 일 중에 내 업이라고 택한 것이 떠드는 일이고, 써야 하는 일인데... 이 일을 마다하고, 적당히 업을 유지할 수준에서만 하고 살았다 싶으니... 이건 딱히 잘 산 게 아니다. 그래서 다시 좀 떠들어야 할 것 같고, 써야 할 것 같다. 잘 산다는 게 남을 위해 그런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그래야 한다. 떠들다 보면 내 영혼에 제대로 된 숨이라도 들어갈 것 같다.


딱히 무슨 글을 써야 하나 정할 일도 없다.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대로 해야겠고, 써야겠다 싶은 것은 그냥 떠드는 기분으로 써두고 보여야겠다. 산문이랍시고 글 쓰는 이들이 다 그리 쓰더라. 무슨 거룩한 주제도 필요하랴. 사는 이야기 한 줄 남겼더니, 어떤 이가 보고 입가에 미소 짓더라 싶으면 써놓기를 잘한 글이 된다.


고민은 플랫폼이다. 어디서 떠들고, 어디다 쓰랴? 이건 조금 더 고민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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