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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Nov 21. 2015

#30 포기 말기(2/3)

인적성검사

원래 단순 암기, 반복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학창시절 공부는 왜 가야 하는지 모르는 대학교를 위한 기능 같은 것이었다. 나는 내신 공부는 곧잘 하는 편이었으나 수능 공부는 기초가 없어서 그런지 모의고사 점수로는 수도권 대학도 가기 힘들었다. 그런 나를 위해 담임선생님은 나에 맞는 입시 전형을 추천해 주셨고, 그 입시전형은 인,적성검사다.


인,적성검사는 IQ 테스트와 흡사하다. 언어논리와 수리사고 두 영역이 있다. 언어 논리에는 영어 단어 문제도 있고, 논리력 문제도 있다. 수리 사고는 공간지각, 도형, 백분율 등의 문제가 있다. 처음에 문제집을 보면 당황스럽지만 각 문제마다 유형이 있고, 유형만 파악하면  그다음부터는 어렵지 않았다. 누가 얼마나 많이 풀고, 연습하느냐에 따라 인,적성검사 모의고사 점수가 차이 났다.


그 당시 나는 주변 친구들이 대학을 위해 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위기감이 들었다. 대학은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다행히 인,적성검사는 나와 잘 맞았다.  그때 처음으로 포기 말기에 대해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수능 공부를 하지 않고, 인,적성검사 공부만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부터는 수능 공부를 일절 하지 않았다.


일종의 선택이자 도박이었다. 나보다 내신이 좋거나 나와 비슷한 점수대였던 친구들 중 몇 명은 수능 공부만 했고, 몇 명은 같이 인,적성검사 공부를 했다. 인,적성검사로 갈 수 있는 대학은 몇 군데 없었지만 내 수능 모의고사 점수로는 갈 수 없었던 대학이기 때문에 나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했다.


목표가 생기니 나머지는 일사천리였다. 인,적성검사 책을 수십 권을 샀고, 인터넷에 있는 사설 모의고사도 반복해서 풀었다.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이었지만 나는 나 자신을 믿었다. 인,적성검사로 대학교를 꼭 가겠다고 말이다.


인⦁적성검사는 수시 전형이다. 수시는 1학기 1번, 2학기에 2번 지원할 수 있었다. 수시 1학기는 많이 뽑지도 않기에 경쟁률이 세다는 이야기를 들어 내 점수에 맞춰 쓰기 보단 내 점수보다 상향지원인 과에 지원했다.  그때 나와 같은 반이었던 내신 좋은 친구도 지원했다. 그 친구는 인,적성검사 공부를 거의 하지 않고, 수능 공부만 하던 친구였는데 그래도 기회라고 생각하고 시험을 보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낙방했고, 그 친구는 합격했다. 낙심했다. 마치 내가 한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기분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와 내가 같은 과에 지원했고, 그 과는 경쟁률이 세 인,적성검사도 검사지만 내신 점수가 높아야 기본적으로 경쟁이 되는 과였다.


수시 1학기가 끝나면 대학교에 붙은 친구들은 학교에 와 책을 읽거나 잠을 잤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낙심하기도 했지만 전의를 불태웠다. 수시 1학기가 끝나고 나서부터는 더 열심히 인,적성 공부에 매진했다.


수시 2학기는 2차례가 있었다. 수시 2-1이라 불리는 첫 번째 2학기 수시는 수능 전, 수시 2-2라 불리는 두 번째 2학기 수시는 수능 후였다. 나는 수능을 보지 않아도 될 요량으로 수시 2-1에 총력을 다했다.


수시 2-1 시험날이 왔고, 나는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었다. 연습한 만큼 문제는 크게 어렵지 않다고 느꼈고, 문제를 잘 풀었다. 정답을 마킹한 OMR카드를 제출하기 전 다시 한 번 문제지와 OMR카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큰 실수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인,적성검사에는 여러 영역이 있는데 촉박한 시간에 비해 문제수가 많기 때문에 첫 장부터 푸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쉬운 영역부터 풀었다. 중간부터 풀었으면 중간 번호대에 마킹을 해야 하는데 나는 중간부터 풀면서 OMR카드에는 처음부터 마킹한 것이다.


수시 2-2가 있었지만 2-1에서 끝내야 된다는 부담감이 날 흥분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수시를 마치고 교실을 나오는데 밖에는 예보에도 없던 비가 내렸다. 너무나 힘들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능 다음 마지막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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