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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Nov 22. 2015

#31 포기 말기(3/3)

NEVER GIVE UP

인적성 프린트물들, 벌써 10년이 지났다.

수능이 다가와도 나는 여전히 인,적성검사 공부만 했다. 수능 날이 왔고, 나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수능을 보러 갔다. 하지만 난 그 어떤 긴장도 느낄 수 없었다.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적성검사로 여러 대학에 응시했었는데 인,적성검사에 붙으면 최저등급이 필요한 학교가 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응시한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수능이 끝나고 나서도 나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내가 원하던 학교의 수시 2-2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수능을 준비했던 친구들은 다들 한 시름 놓은 상태에서 자신의 입시에 필요한 논술 또는 면접에 대비하느라 바빴지만 나는 여전히 인,적성검사 공부에 전념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나는 OMR카드만 밀리지 않고, 천재지변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꼭 붙는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시험장에 입실했다. 자신감이 있었던 이유는 그 동안 공부한 인,적성검사 책과 A4 용지로 출력한 모의고사가 집의 방 한 쪽을 가득 메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수시 2-2는 수능 이후 수능을 망친 학생들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도전하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때였다. 그래도 난 자신감이 있었다. 포기하지 않고, 준비했었기 때문이다. 시험은 무난했고, 나는 내 실력을 발휘하고 나왔다. 이렇게 4~5군데의 학교에 가서 인,적성검사 시험을 보았다.


모든 인,적성검사 시험을 마치고 나니 홀가분했다. 결과만 좋게 나온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았다. 긴장의 시간들이 지나고 학교들이 하나 둘씩 결과를 발표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학교를 비롯해 총 3개의 학교에 합격했고 그 중에는 내가 수시 1학기 때부터 지원했던 가고 싶었던 학교도 있었다.


포기하지 않음의 승리였다. 대학 입시 전에는 뚜렷하게 무엇인가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어서 끝까지 이루어 본적이 없던 나에게 큰 선물이었다. 7전 8기는 아니었지만 3번째 도전에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나의 입시 공부에 탐탁지 않아하셨던 부모님도 결과를 보시고는 나보다 더 기뻐하셨다.


포기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았다. 수시 1학기 떨어졌을 때부터 유혹은 끊임없었다. IQ테스트로 무슨 대학을 가냐며 비아냥거리던 수능을 준비하던 친구들, 수능 공부 안한다고 혼내시던 선생님들 정말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어린 나이였음에도 무엇인가 확신이 있었다. 내가 준비한 만큼, 열심히 한만큼 꼭 결실을 이룰 것이라는 마음을 먹었다. 간혹 보았던 인,적성검사 전국 모의고사에서도 상위 등수가 나오는 것을 보고 더욱 마음을 굳게 먹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을 하던 여러 가지 중에 선택을 한 이후에는 다른 것들을 돌아보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종종 선택 후 주변인들의 말 때문에 자신의 선택을 번복하거나 후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나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듯, 그 사람들이 나의 선택에 대한 의무나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선택을 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큰 성공은 아니더라도 작은 성취들을 맛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큰 바위를 뚫는 것은 바가지의 물을 들이붓는 것이 아니라 낙숫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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