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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가 Jan 07. 2016

#38 내가되기(3/3) 완결

나침반이 돌 때는 참고 기다리자

4학년 졸업학기가 되었다. 나는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이대로 취직이 될 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운좋게 취직한다 하더라도 후회될 것 같았다. 나는 해외를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여러 방법이 있었는데 일단 영어를 배우자는 생각으로 필리핀 어학원 매니저를 신청했다. 학교 동기 중 어학원 매니저를 하는 친구가 있어 그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필리핀 어학원 매니저는 하루에 4시간 공부하고, 4시간 일하면서 학비와 기숙사비를 면제받는 일이다.


운이 좋게 매니저에 뽑힌 나는 4개월 간 필리핀에서 지내게 된다. 이 때 나는 나를 더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해외여행도 그렇지만 해외에서 장기 체류하게 되면 한국이라는 나라를 숲으로 보게 된다. 한국에 있을 때는 가까이 있는 여러 그루의 나무만 봤을 뿐인데 밖으로 나오니 나무가 모인 숲 전체가 보였다. 그리고 나는 나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갖게 되었다. 다른 사람과 달라도 된다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때까지 선택해온 모든 것들이 내가 원한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하니까, 대학생들은 다들 하니까, 취업을 하려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니까 라는 생각이 먼저였던 것이다. 제일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은 내 속에 있는 나의 마음의 소리인데도 말이다.


필리핀 매니저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서 나는 취업준비를 할 수 없었다. 다시 나가고 싶었다. 나는 이젠 생각만 하지 않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었고, 한 달 만에 다시 호주로 갔다. 내가 이렇게 부모님과 상의 없이 내 생각과 결정만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큰 이유는 경제적 지원을 부모님으로부터 받지 않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해결했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 경비를 지원해주셨다면 아마 부모님의 뜻을 반영한 선택을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1년만 있다가 돌아와서 취업을 해라 등의 선택 말이다.) 돈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돈의 힘을 어렴풋이 알았고, 내가 벌어서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한국을 떠나 온 호주는 힘들었다. A부터 Z까지 모두 내가 알아서 해야 했고, 당장 먹고 사는 것 자체도 일이었다. 처음 2달 간 고생을 하다가 나는 정착을 하게 되고 1년 8개월 동안의 호주 생활을 만끽하게 된다.


호주에 있는 동안 한 공장에서 1년간 일하고 2달간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 무엇이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더니 글쓰기와 말하기가 있었다. 나는 내가 경험하거나 느낀 일들을 풀어내는 일에 재미를 느꼈다. 그 때부터 쓰기 시작한 글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스물일곱의 여름 즈음 나는 취업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그 때 다니던 소공장에서 하루 12시간에서 13시간 일했다. 일은 무척 힘들었지만 시급이 27불이었고, 초과근무 시급은 30불이었다. 돈을 벌어보니 내가 비록 공장에 있지만 회사와 무엇이 다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공장에서 고기 박스를 포장하는 일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다. 높은 시급에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꾸준히 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내가 취직하려던 이유도 별 다른 생각 없이 대학 졸업했으니 당연히 취직해서 월급을 받고 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지 자아실현이 가능한 취업을 생각하진 않았다. 요즘처럼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는 어디든 취업하면 성공한 것이라 말한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직무는커녕 회사에 입사할지 안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일을 고른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어진다.


나는 내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되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아쉽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지금이나마 나를 알게 되고, 내가 되려고 노력하려는 것이 좋다.


브루클린 브릿지와 맨하튼의 밤

나는 나용민으로 27년을 살면서 27년 동안 진정한 나를 몰랐다. 남들이 선택하는 좋아 보이는 것들로 나를 채웠다. 그 때의 나는 좋아 보이는 것들을 선택하는 나용민이었다. 내 안의 나를 꺼내어 보여주는 나용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제는 나용민 그 자체를 보여줄 수 있다.


내가 된다는 것은 내 삶의 주인이 된다는 의미다. 남들의 시선과 선택에 신경쓰지 않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에 대한 확신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커지고, 무엇을 이루지 못한 조급함과 남들과 비교하는 일들은 줄어든다. 나는 나를 알고, 더 알아가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나침반이 빙그르 오랜 시간 돌아도 참고 기다리자. 오랜 방황 끝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은 낯선 길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걸어가지 않을 길이라 울퉁불퉁하고 험난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길 끝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오직 그 길을 걸어가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찬란함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자.


걸어가는 길에 만나는 들꽃의 향기에 취해도 보고, 산짐승들과 싸워도 보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내가 내가되는 경험을 하고 행복이란 단어를 가슴으로 끌어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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