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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티스 Mar 25. 2024

이별하는 중입니다.

익숙했던 공간과 헤어지는 법


2024.3.25 월


2022년 8월, 졸업식에 가지 않았다. 그 후로 오랫동안, 아직도 학교에 다니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마침 입구에서 후배와 마주쳤다.

“아니, 졸업한 거 맞아요? 여기서 만날 거라 생각 못했어요.”

 졸업하고 입학한 23학번이라서, 학교에서 만난 내가 어색했나 보다.

나도 수련하는 타학교 상담센터에서 만나다가 정작 ‘우리’ 학교에서 만나게 되니 놀랐다.


사실은 서류 때문에 방문했다. 임상심리사 필기시험을 쳤는데, 교육학과 출신인 나는 세부전공 확인서가 필요했다. 원본을 산업인력공단으로 제출해야 했기에, 학과사무실에 방문한 것이다. 주차는 다른 쪽으로 했는데, 내가 좋아했던 이 공간을 거닐고 싶어서 왔던 것이다.

그 순간에 마침 후배님을 만났다.


반가웠지만, 학교에 다니고 있는 후배를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이 공간을 만나고 싶었다.

코로나 학번이라 학교에 이렇게 사람이 많을 걸 보지 못했다. 3월 월요일 오전 10시 길에도, 건물에도 사람이 가득했다. 도대체 나는 어떤 학교를 다녔던 걸까.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 자리에서 100년은 더 넘게 있었을 거 같은 나무밑동이다. 옆에서 새로운 잎이 자라고 있다. 가시나무인가. 상록초록잎이다. 사계절 내내 같은 모습으로 서있었겠지.

교육학과라서 별로 갈 일이 없었던 인문관이다. 근대 건축물이라는데, 자세히 본 건 이번이 두 번째이다.

운 좋게 두 번째 스무 살에 대학 캠퍼스에 다닐 기회가 있었지만, 푸릇한 스무 살에 이 학교를 다녔다면 어땠을까.

스무 살 청춘들이 캠퍼스를 활기차게 다니는 모습을 보니, 아쉬웠다. 고등학교 때 대학캠퍼스를 미리 구경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조금 더 공부에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을까. 나는 이 학교에 다니지 못해 아쉬웠던 걸까. 이 공간에서 사람을 만나지 못해 안타까웠던 걸까.


 이 공간을 참 좋아했더랬다. 코로나 기간이었어도, 자주 들렀던 학교 안 카페 운죽정이다. 누군가 떨어진 동백꽃으로 사랑을 표현했나 보다. 스무 살 그 언저리 무렵에 동백꽃만큼 빨갛고 짙은 추억을 쌓지 못해 아쉬운가 보다. 이건가 보다.

 상처인지도 몰랐던 논문심사 기억, 상담 덕분에 그때가 스몰트라우마 상황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온몸이 얼어붙어서 해리상태였다는 걸, 그래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었다는 걸 현장에 있었던 졸업동기 덕분에 알게 되었다. 작년에 학회에 포스터 발표를 하며, 내 논문을 다시 읽게 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이 학교와 이별할 마음을 먹게 되었다. 상처를 제대로 만나고 난 후부터.


아쉬움이 가득히 이 공간과 오늘 제대로 이별하고 왔다.


2022년 8월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 이후

그 후로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지냈는데,

이제야 이 공간을 보내줄 수 있게 되었다.


오늘 뒤돌아서던 그 후배 한마디가 떠오른다.

”다음에 꼭 밥 사주세요! “


그때는 졸업생의 마음으로 이곳을 와야지 다짐하고 왔다.


사람보다 공간과 이별이 더 힘들다고 느꼈는데,

그건 공간보다 더 깊게 애정한 사람과 이별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오늘 나는 이 공간과 헤어지기 위해

자주 갔던 곳에 들러서 머무르다 왔다.


마음속으로 과거 내 기억 속이 이 공간들을 떠올리고, 혼잣말을 했다.

‘이 공간에 나를 머무르게 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어쩌면, 경험하지 못했던 어떤 기억들에 대한 아쉬움도 달래고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스무 살에 대학원에 다닐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다.’





사진출처 : Pixabay로부터 입수된 moonykim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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